위대한 항해(살아있는 한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
마지막 대원이 떠나고 1시간 뒤, 얼음은 결국 배의 양쪽에 구멍을 내고 말았다. 처음에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길게 금이 갔고, 그 틈새가 벌어지면서 커다란 얼음 덩어리들이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배의 중앙부가 물속에 푹 잠겨 버렸다. 갑판실의 오른쪽 뱃머리 전체가 얼음에 부딪혀 부서졌다. 갑판위에 겹겹이 쌓여 있던 빈 가솔린 통이 벽에 걸린 액자와 함께 갑판실 벽을 뚫고 밀려 나갔을 정도로 위력 있는 얼음이었다. 그런데도 액자 유리는 깨지지 않고 멀쩡했다.
캠프가 완전히 정리되자 대원들 몇몇이 한때 자신들의 보금자리였던, 그러나 지금은 처참히 버려진 배를 보러갔다. 대부분은 한동안 자신들의 처지도 잊은 채 추위와 피곤에 지쳐, 그리고 긴 악몽에서 깨어난 것에 안도하며 텐트에 모여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대원들과는 달리 절망적인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넓적한 얼굴과 뭉툭한 코, 그리고 비대한 몸집의 그는 아일랜드 사투리를 썼다. 배를 탈출하는 동안에도 그는 짐과 개와 사람들이 모두 내릴 때까지 멀찍이 서서 그 모습을 묵묵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의 이름은 어니스트 새클턴 경(Sir Ernest H. Shackleton)이었다. 그리고 그가 그토록 참담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상처 입은 배를 함께 떠나게 된 스물일곱명의 남자들은 그의 ‘남극 탐험대’대원들이었다. 때는 1915년 10월27일 배의 이름은 ‘인듀어런스(Endurance)'호. 위치는 남위69도5부, 세경51도30부. 살얼음으로 덮인 남극 웨들해의 황무지 한복판, 사람이 살고 있는 가장 가까운 전초기지에서 약1,900km 떨어진, 전초기지와 남극의 중간지점이었다.
그 순간 새클턴만큼 무거운 책임을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지금 그들이 자신들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긴 했지만 앞으로 그들에게 주어질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참고 견뎌야할 혹독함, 그리고 맞닥뜨리게 될 시련까지는 아마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얼어붙은 남극 바다에서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적인 목표였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문명사회를 접한 지도 벌써 1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바깥세상에선 그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또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들에겐 구조 요청을 할 수 있는 무선 송신기도 없었지만, 설사 sos를 띄울 수 있다 해도 그들이 있는 곳까지 달려올 구조요원이 있을리 만무했다. 당시는 1915년이었고 헬리콥터도 위젤차(눈 위를 달리는 무한궤도차)도 없었다.
그들은 이 속수무책인 상황이 그저 놀랍기만 했다. 이제 그들은 스스로 이곳을 벗어나는 수밖에 없었다. 새클턴은 가장 가까운 육지인 파머 반도의 빙붕(극지방의 육지나 큰 섬을 둘러싸고 있는 얼음벌판)이 그들이 있는 곳에서 서남서쪽으로 약300km 거리에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렇지만 육지까지는 거기서 40km나 더 떨어져 있는데다가 사람이나 동물이 전혀 살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구조나 그 밖의 안전은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식량이나 숙소를 구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은 폴렛 섬이었다. 직경이 2.5km에 불과한 그 작은 섬은 넘실대는 빙산을 가로질러 남서쪽으로 557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12년 전인 1903년 스웨덴 소속의 ‘남극’호가 웨들해의 얼음에 좌초된 후 그 배의 승무원들이 그곳에서 겨울을 지냈었다. 마침내 구조가 된 ‘남극’호의 대원들은 미래의 조난자들을 위해 배에 있던 필수품을 폴랫섬에 남겨 두었다. 당시 그 필수품을 구입해준 사람이 바로 새클턴이었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12년이 지난 지금 그 필수품들을 자신이 다시 필요로 하게 될 줄이야.......
「여호와께서 육지와 바다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너를 보호하시고 네 임무를 완수하도록 도우시리라.」 이것은 영국의 알렉산더 황태후가 탐험대에게 준 성경책 여백에 쓰여 있던 말이다. 새클턴은 이 성경책을 손에든 채 남극의 차가운 바다 속으로 침몰하는 인듀어런스호를 떠나 생사를 넘나드는 634일간의 도전을 시작하게 된다.
- 새클턴의 위대한 항해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