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비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축복의 스케일과 우리가 생각하는 축복의 스케일의 차이는 얼마나 될까? 인생의 비전은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비전에 비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이유가 뭘까? 말이 비전이지 바로 목전에 있는 것 밖에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목전에 있는것에 시야가 가리워서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원대하고 장엄한 비전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바라보게 되는것을 말한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다른 것들은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게 되는것을 의미한다. 이런 과정을 C.S.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그 너머에 있는것'을 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다음과 같은 말에 모두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는 처음에는 단지 도덕과 의무와 죄책감과 덕의 종교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당신을 점점 더 인도해나가서,드디어 그러한 모든 것으로부터 빠져나가 그 너머에 있는 어떤 곳으로 들어가도록 인도해주는 종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도덕과 의무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농담이 아니라면 절대 입 밖에 꺼내지 않는 나라를 잠시 경험하기도 한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빛으로 충만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은 그것을 선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것을 아무것이라고도 부르지 않는다. 아예 그런 것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곳의 사람들은 모두 그 빛이 나오는 근원이 되시는 분을 바라보느라고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즉각적인 순종의 자세에 대해서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십자가 밑에서 제비뽑기를 하던 군사들을 비교해보면 정확히 알수 있다. 어느 날 예수님은 바닷가의 베드로를 찾아 오셨다. 바닷가에는 베드로의 배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왜 예수님은 베드로를 선택하셨을까? 이해가 되지 않아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알고 계셨을 것이다. 베드로의 반응을 보라.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베드로가 시원하게 대답했지만 반대로 거부할 수도 있었다. "밤새도록 일해서 피곤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고기잡이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말씀 하시는 것 같은데 시간낭비, 정력낭비입니다. 괜히 추가로 고생시키지 마십시요."라고. 우리는 베드로와 같은 입장에 처했을 때,베드로처럼 즉각적으로 순종하지 않고 핑계대고 늦장부리고 대답을 미루며 예수님의 부르심을 무시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불순종한 대부분은 주님의 요청이 내 생각으로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순종하지 못했기 때문에 놓쳐버린 축복들이 얼마나 많을거라고 생각하는가? 베드로의 경우를 보면 짐작이 간다. 그날 밤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가 잡혔다. 혼자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잡혔다. 친구의 배까지 가득 채우는 엄청난 축복을 경험하게 되었다. 평생 고기잡이로 뼈가 굵었지만 이런 대박은 처음이었다. 베드로는 처음이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그러한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의 결과는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는 축복의 역사가 일어났다. 순종의 결과는 일시적인 기적의 현상이 아니다. 원대한 하나님의 비전의 실현을 위해 쓰임 받는 것이다. 단순히 부요하게 되는 수준이 아니라 더 놀라운 차원의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케 되는 것이다. 베드로의 순종은 베드로의 경제적인 변화만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인생 자체에 변화를 가져오는 사건이 되었다. 하나님을 만난 사건이 경제적인 변화에만 목적을 둔다면 우상에게 복을비는 무속신앙과 다를 바가 없다. 베드로는 전문가 입장에서 예수님의 고기잡이 지식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목수이신 분의 말에 따르기 위해서 자신의 교만한 마음을 누르고 순종했다. 하나님은 교만을 깨뜨리는 사건을 통하여 전적인 순종의 단계까지 끌어 올리신후 본격적인 사명을 맡기신다. 다양한 인생의 과정을 거치게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은 계획하신 일들을 우리로 하여금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시는 것이다.
순종하면 명문화된 말씀 그대로 가시적인 축복이 나타난다. 축복이 나타날 때 조심할 일이 있다. 스스로 축복에 현혹되지 말라는 것이다. 축복에 현혹된 현상 중 치명적인 현상은 하나님을 소홀히 하거나 등한시하는 것이다. 이유는 고의적이기 보다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절실하지 않게 된 상황에 있다. 바로 이것이 축복이 함정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이유이다. 베드로를 잘 보라. 순종의 결과로 가득히 고기를 잡았다. 그러나 그날의 풍어를 자축하며 동네 잔치를 벌이지 않았다. 동시에 그 고기가 자신의 실력과 노력의 결과라는 자만에 빠지지도 않았다. 또한 막대한 수입으로 인한 사업 확충을 위해 대대적인 선박 건조와 선원 모집에 동분서주하지도 않았다.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눅5:11) 상식을 깨는 베드로와 친구들의 행동이 나온다. 엄청난 기적적인 축복을 경험한 후 예수님과 함께 사업을 확장하지 않고 다 버리는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난다.
축복의 경험 또는 그 반대의 경험이 가지는 중요한 의미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체험이다.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을 체험하고 동시에 그 분이 어떤 분인지를 체험하는 자체가 진정한 축복이다. 하나님을 발견한 사람은 보화를 발견한 사람의 삶의 변화와 같다. 하나님의 뜻과 그의 비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투자할 수 있는 목적의 변화가 일어난다. 축복 자체가 목적이라면 하나님을 이용하는 사람이지 하나님의 비전을 위해 쓰임받는 사람은 아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하나님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된다. 하나님의 비전이 자신의 비전이 된다. 하나님은 반드시 축복하시는 분이시다. 그 분이 주시는 축복에 목적을 두지 말고 축복을 주시는 그 분께 목적을 두어야 한다. 축복은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며 은혜의 무한성과 절대적인 하나님의 보장을 나타낸다. 이것이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삶이 후회없는 삶이라는 것을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