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아니하실지라도

Jun 06, 2014

우리는 축복과 은총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고난과 시험이 닥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인생이 그랬다. 인생은 OFF ROAD자동차 경주와 같다. 경주 코스는 평탄한 코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르막이 있는가 하면 내리막이 있고, 먼지가 앞을 가리는 광야가 있는가 하면 바퀴가 빠져 나오기 힘든 진흙탕도 있다. 다니엘 세 친구는 갖은 고난과 시험을 통과하고 바벨론 최고의 고위직에 올라 고생이 끝났다 싶었는데,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새로운 위기가 닥쳐왔다. 완전히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은 것 같았던 느브갓네살 왕이 시간이 흐르자 본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BC 586년 거대한 신상을 세웠다. 15년 전 다니엘의 해석을 통해 꾼 꿈의 의미를 알게 되었던 느부갓네살 왕은 역사 주관자이신 하나님 앞에 무릎 꿇었던 기억을 잊고 오히려 자신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 금신상을 세워 하나님께 다시 도전하기 시작했다. 죽을 지경을 벗어나 살만하게 되면 도로 교만해지는 것이 사람이다.

금신상 꿈은 바벨론을 포함한 세계 열강의 흥망성쇠를 예고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느부갓네살은 신상을 세우고 법으로 우상숭배를 강요하기 시작했다. 일차적으로 왕을 비롯한 최고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총망라했다. 감히 누구의 명령이라고 어기겠는가? 아니 오히려 영광스럽게 여겼을 것이다. 바벨론 제국 전체 고위직이 소집됐다. 당연히 다니엘 세 친구도 참석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다니엘은 보이지 않았다. 여러가지 추측이 있지만 느부갓네살 왕이 일부러 다니엘을 공무 출장 보냈을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왜냐하면 다니엘의 신앙과 영성을 아는 느부갓네살 왕으로서 만약의 사태를 생각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금신상 숭배를 거역하는 자는 풀무불 화형에 처한다는 법을 제정해 놓고 협박하는데 과연 거부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미 우상을 섬기고 있던 사람들은 문제가 안되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문제가 된다.

문제의 시작은 바벨론의 토박이인 "어떤 갈대아 사람들"의 고발로 시작되었다. 신상에 절하지 않을 경우 풀무불 화형에 처하는 법령을 들먹거리며 바벨론의 국교와 바벨론 왕권을 경멸하는 불순한 세력이 있음을 왕에게 공개적으로 고발했다. 왕 스스로 법령에 서명했고 공포했기 때문에 왕 자신도 법을 무시할 수 없는 입장에 있다는 사실을 고발자들은 잘알고 있었다. 그들은 다니엘과 세 친구의 정적들이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나타나기 전에는 자신들의 세상이었는데 기득권을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을 시기하여 기를쓰고 모함하고 있는 것이다. 거짓으로 꾸미는 음모가 아니라 시행되고 있는 법을 명백하게 위반했기 때문에 변명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기회만 노리고 있던 그들에겐 절호의 찬스가 온 것이다. 사적인 이해관계나 감정 문제가 아니라 국가 법질서 준수라는 확실한 명분 앞에 누구도 반박하기 어려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고발자들의 참소는 성공했다. 모든 백성들이 신상에 절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려 했던 왕의 자존심에 한순간에 금이 가버렸기 때문이다. 분노에 사로잡힌 왕은 세 사람을 끌어 오라고 했다. 수많은 수하 장관들이 있었지만 탁월하게 임무를 수행하여 국가 발전과 부흥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사람 들이기 때문에 경솔하게 처리할 문제가 아니었다. 신상 숭배문제가 자신의 권위에 관한 문제라면 이들은 자신의 권력 유지에 긴요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왕은 다시한번 기회를 주기로 생각한 것이다.겉으로는 자비를 베푸는 모양새를 갖추었지만 속으로는 통사정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진퇴양난에 빠진 왕은 물러설 자리가 없었다. 이미 다니엘 정적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진 것이다."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맹렬히 타는 불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어떤 신이 너희를 구하겠느냐?" 누구도 불 속에서 건져줄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마지막 기회를 주는 느부갓네살에게 그들은 "우리가 이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고민하고 기도할 필요도 없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대답하기 곤란하면 기도해 보겠다고 핑계를 댄다. 단호하게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리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다"라고 믿음을 선포한다. 그들은 죽음의 칼 앞에서도 하나님이 자신들을 구원하실 거라는 부활 신앙과 죽어도 좋다는 순교의 신앙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그 앞에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그들의 이같은 신앙은 이미 왕의 음식을 거절했을 때부터 확인된바다. 그 믿음은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하는지'가 분명한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도 분명하다. 우리는 항상 간증에서 해피엔딩을 기대한다. '하나님 뜻대로 살았더니 병이 낫다. 사업이 일어났다'는 기적같은 반전을 기대한다.

물론 우리 하나님은 얼마든지 반전 시킬수 있으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이상의 믿음을 원하신다. 반전과 관계없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더 소중한 것이다.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그러나 하나님의 뜻과 나의 기대가 상충될 때 갈등이 없을 수 없다.하지만 갈등을 겪더라도 결론은 순종이어야 한다. 오늘날 하나님이 반드시 내가 생각하는 대로 역사하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믿음을 경계해야 한다. 내가 기대한대로 결과를 보여주셔야 한다고 하나님을 압박하면서 그걸 믿음이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순종과 기도는 우리의 몫이다. 그러나 일의 작정은 하나님께 있다.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전혀 다른 타이밍에 하나님은 역사하실 수 있다. 물론 눈에 보이는 현실은 고통이요, 아픔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까지 받아들이는 것, 하나님이 하나님 되게 하는 것이 진짜 믿음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변함없는 삶이 진정 위대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