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마지노선
세상 속의 크리스천에게는 물러설 수 없는 신앙의 마지노선을 분명히 그어야 할 시점이 반드시 온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이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가 영어 성경에서는 "But Daniel resolved"라고 되어 있다. 아주 단호하고 강한 결심을 뜻한다. 이때까지 다니엘의 삶은 마치 세상의 모진 폭풍에 떠밀려온 것 같았다. 조국은 망했고, 그와 친구들은 타국에 포로로 끌려왔다. 끌려와서는 바벨론 식의 이름으로 바뀌고 그곳의 학문까지 배웠다. 그리고 이번엔 왕의 식탁에 올라가는 최상품의 음식과 포도주를 먹으라고 한다.사실 세상의 시각으로 보면 엄청난 특권이다. 비록 그의 나라는 망했지만 다니엘에게는 출세의 길이 활짝 열린 셈이었다.바벨론 식의 이름을 받아 명실상부한 바벨론 시민권자가 되었고, 왕의 음식을 먹는 특권과 아울러 높은 관직이 보장되어 있었다.
보통사람 같았으면 엄청나게 흥분할 상황을 하나님의 사람인 다니엘은 그런 시각으로 보지 않았다. 기도의 사람인 다니엘이게는 축복이 아니라 타락의 함정이었다. 바벨론의 학문을 배우고 바벨론의 이름을 받는것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사명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상의 제물로 바쳤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다니엘은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고 했다. 그렇게 말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하나님의 율법에 피가 섞인 고기를 먹는것을 금하고 있었다. 바벨론 왕이 주는 음식은 모두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이었기 때문에 우상의 음식에 동참하는 것은 우상숭배를 뜻하는 것이다. 바벨론 왕은 우상에게 바친 음식을 자기와 바벨론 지도층이 먹음으로써 우상의 보호를 받는다고 믿었다. 다니엘이 그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우상의 보호를 믿는다는 고백을 하는것이 된다.
배가 항해 중일 때, 물이 배 안에 들어오게 되면 배는 침몰하고 만다. 바벨론에 사는 것은 물위에 떠있는 것이지만 우상의 음식을 먹어 우상을 받아 들이면 물이 배 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우리는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나 사탄이 우리를 침몰시키지 못하는것은 사탄을 우리 안에 받아 들이지 않기 때문이다.세상이 크리스천을 압박하고 시험을 줄 때는 양극단이 있다. 첫째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아픔을 줘서 성도들이 분노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게 만든다.다니엘에게도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끌려가는 고난이 있었다.그러나 그는 최악의 상황에도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며 적응했다. 둘째는 세상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출세와 화려함으로 유혹하는 것이다. 바벨론 왕은 화려한 감투와 재물과 향락을 제공하여 사람의 혼을 쏙 빼놓은 뒤, 결국은 바벨론의 노예로 만들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두 번째 시험이 첫 번째 시험보다 더 이겨내기 어렵다. 달콤한 시험이 쓰디쓴 고난보다 훨씬 이기기 힘들다.
그러나 다니엘은 단호하게 그 유혹을 떨쳐버렸다. 비록 십대의 어린나이였지만 그 끝이 무엇인지 알았다. 하나님의 사람이 가야 할 길이 아님을 안 순간 그는 벌떡 일어섰다. 몸은 노예로 끌려왔지만 영혼까지 노예가 될 수는 없었다. 왕이 주는 음식을 거절하는것은 왕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다.이는 죽음을 각오한 선택이다.우리는 살면서 때때로 이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작은 대가를 치르는 일도 두려워한다.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그로 인해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거나 핍박을 받으면 싫어한다. 작은 결단을 내리는 일에 있어서조차 너무나 많이 주저하고 타협한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어 자신의 독생자를 기꺼이 내어주신 하나님을 위해 어떤 상황에서도 양보할 수 없고 타협할 수 없는 신앙의 마지노선을 분명히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대가를 지불할 각오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돈일 수도 있고 직장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다.
뜻을 정한 인생은 믿음의 대가를 지불할 각오를 하고 사는 것이다. 그렇게 살 때 오히려 자유함이 있고 담대함과 평안함이 있다. 뉴욕의 꽤 큰 투자회사에 다니는 믿음 좋은 청년의 감동되는 간증이 있다. 그는 회사 동료들과의 술자리에 참석은 했지만 술은 마시지 않았고, 그들의 불순한 언동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항상 사람들을 겸손하고 진실하게 대했고,기회가 되면 조용히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신앙인의 면모를 잃지 않았다. 그는 어느 날 미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영상물 제작 회사로부터 거액의 투자 요청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고민 끝에 요청을 거절했다. 자신의 몫으로 돌아오는 20만불의 수수료도 포기했다. 그는 회사 대표에게 설명을 했다. "우리는 많은 돈을 벌 수 있겠지만 미국 사회의 타락을 조장하게 될 것입니다.저를 믿어주신다면 다른 회사들로부터 더 많은 투자 유치를 얻어내겠습니다."
얼마 후 대표가 바뀌어 새로운 대표가 취임했고 이익에 눈이 어두운 대표는 이 청년을 압박했다. 기도하는 중에 따로 나와 새로운 벤처투자 회사를 차렸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하나님이 놀라운 축복을 부어주기 시작하셨다.바벨론에 끌려간 다니엘이 하나님을 위해 살기로 결심한 나이는 겨우 15세였다. 당시 조국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면서 나라가 망했는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진노가 목전에 있음에도 정신 차리지 못하기는 이 시대도 마찬가지다. 양보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의 목숨과 바꿀 각오가 되어 있었다. 결코 넘지 말아야 할 영적 마지노선이 분명하고 확고했다. 하나님은 당시 세계를 호령하던 바벨론 왕을 쓰신 것이 아니라 소년 다니엘을 사용하셔서 그 시대를 섭리하셨다. 우리 자신이 또 우리 자녀들이 이 시대에 다니엘처럼 쓰임받는것이 진정 하나님과 이 땅을 위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