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집 머슴을 담임목사로 세운 조덕삼 장로

Jul 18, 2014

전북 김제에 가면 매우 감동적인 간증을 가지고 있는 금산교회가 있다. 금산교회는 교회 건물이'ㄱ'형태의 특이한 모양때문에 ‘ㄱ’자교회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지금도 옛적 'ㄱ'자 한옥 예배당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우리나라 선교 초기에 전라도지역은 미국의 남장로교 선교구역이었다. 1904년 봄 말을 타고 전주에서 정읍을 왕래하며 복음을 전하던 테이트(최의덕 1862-1929)선교사는 오가는 길 중간 지점인 김제 용화마을에 머물곤 했다.
선교사는 어느 날 용화마을에서 제일 큰 부자였던 조덕삼의 집 마방에 말을 맡기고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오랫동안 테이트 선교사를 지켜봐왔던 조덕삼은 그에게 "살기 좋다는 당신네 나라를 포기하고 왜 이 가난한 조선 땅에 왔는가?“고 물었다" 테이트 선교사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당시 보수적인 유교사상에 투철했던 조덕삼에게는 참으로 놀라운 말이었다. 이후 조덕삼은 자신의 집 사랑채를 내어주어 예배를 보도록 했다. 이것이 금산교회의 출발이다.

조덕삼의 집에는 머슴 겸 마부로 일하던 이자익이라는 청년이 살고 있었다. 그는 경남 남해출신으로 6세 때 부모를 여의고 굶주림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고향인 남해를 떠나 곡창지대인 이곳까지 흘러들어온 것이다. 그를 불쌍히 여긴 조덕삼이 그를 거둬 머슴 겸 마부로 고용한 것이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공부를 전혀 하지 못한 이자익은 어깨너머로 배운 천자문을 줄줄 외웠다. 그를 지켜본 조덕삼은 비록 자신의 머슴이었지만 아들(조영호)과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신앙생활도 같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조덕삼과 이자익이 함께 신앙생활을 하며 몇 년 지나 두 사람 모두 집사를 거쳐 영수가 되어 있을 때인 1907년 금산교회는 장로 장립 투표를 실시했다. 그런데 조덕삼과 이자익 두 사람이 후보에 올랐다. 당시만 해도 신분질서가 명백했던 시절이었다.

생각지 않게 주인과 머슴이 경쟁상대가 된 것이다. 투표 결과는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머슴 이자익이 주인 조덕삼을 누르고 장로로 선출된 것이다. 모든성도가 놀랐다. 그런데 조덕삼영수에게서 더욱 놀라운 인사말이 나왔다. "우리 금산교회 성도님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저희 집에서 일하는 이자익 영수는 저보다 신앙의 열의가 훨씬 높습니다. 그를 장로로 뽑아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자신을 누르고 장로로 먼저 피택된 머슴을 조금도 미워하거나 질투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리고 실제로 장로가 된 이자익이 테이트 선교사를 대신해 교회 강단에서 설교할 때면 조덕삼은 교회 바닥에 꿇어 앉아 그의 설교를 들었다. 집에서는 이자익이 조덕삼을 주인으로 깎듯이 섬겼다. 조덕삼은 자신의 머슴을 장로로 섬겼을 뿐 아니라 그가 평양에서 신학을 공부할 수 있도록 추천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조덕삼은 그로부터 3년 뒤 비로소 장로가 되었다.
조덕삼장로는 교회를 신축할 수 있도록 자신의 땅을 헌납했다. 교회는 한옥으로 ㄱ자 모양으로 지어졌다. ㄱ자 중심에 강대상이 마련되었고, 양 날개 부분에 남자와 여자 성도들을 따로 앉도록 했다. 출입문도 양쪽으로 냈다. 예배 도중 남녀가 얼굴을 서로 바라볼 수 없도록 중간에 휘장을 쳤다. 이 ㄱ자교회는 전북문화재 제136호다. 교회구조와 배치가 한국 전통사회의 남녀 구분이라는 과제를 해결한 것과 함께 지주와 머슴의 신분질서를 뛰어 넘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자익은 주인 조덕삼장로의 배려로 훗날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1915년 금산교회 2대 목사로 부임했다. 이자익을 담임목사로 적극적으로 청빙한 사람이 조덕삼장로였다. 조덕삼은 이자익을 담임목사로 깎듯이 예우했고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ㄱ자교회로 유명한 전북 김제 금산교회는 매주 순례객들로 붐빈다. 한옥 ㄱ자 형태가 그대로 보존돼 있는 모습과 함께 믿음의 선조들이 꽃피운 아름다운 신앙 이야기가 큰 감동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금산교회는 100여년 전에 남녀, 양반과 머슴으로 구분 짓던 신분질서 시대에 참된 섬김,겸손, 희생,평등, 같은 기독교적 가치와 사랑을 실천한 모범적인 역사와 사례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금산교회를 세운 조덕삼 장로는 아들과 손자까지 3대째 장로로 섬긴 가문으로 알려져 있다. 오래전에 대전신학대학교에서 ‘이자익목사기념관현판식’이 있었다.그 행사에 조덕삼장로의 손자조세형장로(국회의원)와 이자익 목사의 손자 이규완장로(고분자학 박사)가 만났다. 이규완 장로가 조세형 장로에게 허리를 굽혀 “옛날에 우리 할아버지께서 주인을 참 잘 만났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주인을 잘못 만났더라면 지금의 저희들도 없고 우리 할아버지도 안계셨을 것입니다.”라고 정중히 인사했다. 조덕삼장로와 이자익목사의 아름다운 믿음의 유산은 그들의 자손에게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된 모든 성도에게 주는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