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줄수 있는 것
Nov 28, 2015
오프라는 오프라 쇼를 25년 동안이나 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쇼가 12년째에 들어섰을 때 그녀는 이제 그만 막을 내릴까 생각하고 있었다. 파티에 너무 늦게까지 머무는 아가씨가 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박수칠 때를 떠나지 않았다간 때를 놓칠수도 있다는 생각에 겁이 났다. 그러다가 그녀는 영화 <빌러비드>를 찍었다. 새로 찾은 자유를 맛보는 해방된 노예에 관한 영화였다. 영화에서 맡았던 역할은 일을 바라보는 그녀의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그녀의 조상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기회를 얻었는데 어떻게 감히 피곤해하며 오프라 쇼를 그만둘 생각을 하겠는가하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4년을 더 연장했다. 그리고 2년을 더 연장했다. 그리고 드디어 20주년이 다가왔고, 그녀는 그날이 오프라 쇼의 마침표를 찍을 시점이라고 거의 확신했다.
바로 그때 매티 스테파넥이라는 소년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매티는 희귀한 형태의 근육 실조증을 앓고 있는 열두 살 소년이었다. 그는 오프라 쇼에 출연해서 자신이 지은시를 읽어주었고 오프라와 친한 벗이 되었다. 자주 이메일을 주고받았고 전화 통화를 했다. 그는 오프라를 웃게 만들었고 때로는 울리기도 했다. 오프라는 그와 함께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에 보다 인간적인 기분이 들었고 현재의 순간을 자각하게 되었고, 아주 작은 것에도 감사할 수 있는 생각이 들었다. 매티는 짧은 인생 동안 병원을 들락날락하며 너무나 큰 고통을 겪으면서도 불평조차 하지 않는 아이였다. 그래서 그가 말하면 오프라는 그의 말을 따랐다. 2003년 5월, 오프라 쇼의 막을 내릴 것인가에 대해 필사적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오프라에게 매티가 편지를 보내왔다. 그 아이는 혼자의 힘만으로 그녀의 생각을 바꿔놓았다.
사랑하는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저예요, 매티.선생님의 친구 매티요. 요즘 전 메모리얼데이 즈음에 집에 가고 싶어서 기도하는 중이에요.확실한건 아니어서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직 알리진 않았어요. 제가 집에 가려고 할 때마다 일이 생기는 것 같거든요. 의사 선생님은 저를 고쳐주지는 못하지만 제가 집에 가야 한다는 데는 동의 하세요. 앗!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집에 가서 죽음을 맞이할 거라든가 그런 거 아니니까요. 제가 집에 가는 건 여기선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에요. 제가 만약 치유된다면 그건 제가 치유될 운명이었기 때문이고, 낫지 않는다 해도 제가 나누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미 다 말했으니 이제 하늘나라에 갈 시간이 오는 거겠죠. 솔직히 메시지 전송자로 조금만 더 활약했으면 하지만 그건 이제 신의 손에 달려 있어요. 아무튼 - -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수혈하게 되어서 그건 나아졌어요.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너무나 많은 분께 피와 혈소판을 나눠 받았다는 거예요. 그건 진짜 멋진 일인 것 같아요. 제가 이 세상과 연결된 느낌이라고 할까요? 자랑스러운 일이에요.
선생님이 오프라 쇼 20주년 기념일을 마지막으로 쇼를 접으실 계획이란 걸 알아요. 그런데 25주년 기념일까지 기다리셔야 한다는 게 제 의견이에요. 그 이유를 말씀드릴게요. 25주년이 훨씬 더 말이 되는 게. 제가 약간 강박장애가 있는데요 -- 25가 완벽한 숫자더라고요. 완벽한 제곱수고 무언가의 4분의 1을 뜻하기도 하죠.(1/4 = 0.25). 숫자 20처럼 그저 5분의 1에 그치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제가 25란 숫자를 생각해볼 때, 특히 은퇴라든가, 무언가의 완성이란 측면에서 그 숫자를 생각하면 무슨 이유에선지 제 머릿속이 찬란한 색채와 되살아나는 생명력으로 가득 차요.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진실이에요. 선생님은 이미 너무나 많은 측면에서 역사적인 인물이에요. 멋지고 아름다운 일을 많이 하셨어요. 이왕 그렇게 된 김에 역사에 더 큰 발자취를 남겨보는 건 어떠세요? 오프라 쇼는 대단한 존엄성이 있어요. 그런 쇼로 사반세기 동안 정말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거에요! 생각할 시간을 좀 드릴게요. 그리고 이것도 제 의견에 불과하지만, 저는 때때로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감이 올 때가 있는데 이일에 관해서도 감을 느꼈어요. 오프라 쇼를 더 오래 하신다면 세상을 위해서도 좋고, 선생님을 위해서도 좋을 거 같아요. 저는 선생님을 사랑해요. 선생님도 저를 사랑하시죠?
매티 올림
오프라는 "나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나 또한 '때때로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감이 오는' 사람임을 알 것이다. 내가 우리 시대를 위한 전령이라고 생각하는 이 천사 소년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직감이 강하게 왔다. 2003년의 나는 오프라 쇼로 대변되는 내 삶의 한 부분을 닫을 감정적이며 영적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매티는 명백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라고 회고한다. 마침내 오프라는 인생의 다음 장을 펼칠 준비가 되었을 때 후회없이 전진하게 되었다. 또한 오프라는 고백한다. "나와 함께 머문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뿐이다. 그리고 나는 확실히 안다. 천국이 어디에 있든 그곳에는 매티가 있으리라." 그 후 매티는 만 14세 생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2004년 6월에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갔다.
불치의 병으로 14년의 짧은 세월을 살고 세상을 작별한 한 소년이 한 시대의 영웅처럼 추앙받는 인물에게 결정적인 도전을 주었던 것은 무엇인가, 꺼져가면서도 끝까지 불을 밝히는 촛불처럼 한 소년은 남에게 무언가를 주고 갔다. 도움을 받아야만 살 수 있었던 소년은 오히려 너무 크고 중요한 것을 주고 갔다. 죽음보다 중요한 삶의 의미를 찾게 해주었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감사와 은혜를 깨닫게 해주고 삶의 목적을 깨닫게 해주고 갔다. 은혜와 감사를 아는 삶,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사는 삶이 이 땅에 왔다가는 인생의 목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메티는 오프라에게 희미해진 감사에 불을 밝혀주고 갔다. 그리고 오프라를 통해 수많은 영혼들에게 삶의 새로운 용기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