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전문가
어설픈 전문가
교육의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가 전문성을 가지는 것이다. 전문성이 필요한 이유는 삶의 질의 향상은 전문적 지식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다양한 문제 해결에 중요한 도움을 준다. 정규 교육 과정을 통해서도 전문적 지식을 습득할 수 있지만 미디어를 통해서 많은 정보가 제공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려되는 현상이 무책임한 정보와 비전문가의 전문가 행세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는 전공하고 연구한 분야에 관한한 책임 있는 정보를 제공해야 하고 다른 분야에 대하여는 모른다고 해야 한다.
미디어에 등장하는 패널들이 전문 분야가 아닌 토픽에 대해서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쉽게 말을 던진다. 사회 각 분야의 다양한 문제가 언급된다. 문제는 마무리 발언이다. "앞으로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식이라면 전문가 행세 못할 사람이 어디 있나? 그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게 마무리하면 지금까지 발언한 내용 전체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확실히 해야 정직한 것이고 책임 있는 것이다. 하나마나 한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것이다.
전문가의 무책임한 발언보다 더 무서운 게 민주주의를 빙자한 다수결 논리다. 민주주의는 인간이 만들어낸 불합리성과 무책임성을 합리화 내지 정당화 시킨 시스팀이다. 에너지 문제에 대한 논쟁에는 '에너지 민주주의'라는 말이 등장한다. 특정 방식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반대자들의 주장의 요지가 이렇다. "구체적 상황에서 발휘되는 주민의 지식보다 전문가의 지식이 언제나 낫다는 증거는 없다." 이건 무식한 게 아니라 무서운 거다. 그래서 시민 배심원단을 통해 에너지 정책을 결정하기로 했단다.
전문가는 '일부러' 배제하고 시민 배심원단이 짧은 시간 안에 원전 지식을 습득하고 연구해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비전문가가 공부해서 전문가 대신 결론을 내린다는 것이다. 다수결을 해결 대책으로 하되 전문성 부족을 잠시 공부한 실력으로 대신 하겠다는 발상이 얼마나 기상천외한 발상인가? 아연실색하게 만드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를 빙자한 다수결의 진짜 무서운 이야기가 있다. 정치인들은 툭하면 이렇게 말한다. "국민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번번히 국민의 뜻을 물어 결정하려면 대통령과 장관들이 왜 필요한가? 결국 책임지지 않겠다는 비겁한 핑계일 뿐이다. 지도자는 분명한 비전과 원칙과 소신을 가지고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양해야 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막바지 전투를 벌일 때다. 스파르타 해군을 격파하고 돌아온 아테네 장군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환영이 아니라 비난이 쏟아지는 법정이었다. 스파르타 해군이 도주할 때 아테네의 장군들은 스파르타군을 추격할지 아니면 아테네 해군의 생존자와 사망자를 먼저 수습할지 의견이 갈린 끝에 아무것도 못하고 귀환하고 만다.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한 병사들의 유가족은 통곡하며 외쳤다.
"장군들은 조국을 섬긴 사람들을 구하지 않았다." 몇몇 시민이 아테네가 처한 위기 상황을 내세우며 말렸지만 결국 유죄판결이 내려졌고 장군들은 처형됐다. 얼마 후 스파르타의 재침공이 시작된다. 전쟁을 지휘할 장군들이 없는 아테네 해군은 이미 최고의 해군이 아니었다. 전투에서 패한 아테네군은 산 채로 수장됐다. 그리고 아테네는 몰락했다. 아테네 '국민의 뜻'에 따른 결과였다. 책임감 있는 리더가 없고 전문가가 대접받지 못하는 나라와 공동체가 가는 길이 이렇다.
민주주의가 치명적인 함정이 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을 배제시키는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수단이 된다는 데에 있다. 다수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따르는 다수라고 하면 문제가 안될 것이다. 문제는 그 다수가 하나님을 배격하는 다수라는 데에 있다. 왕정 시대에는 왕의 영적 성향이 국가의 운명을 결정했고 민주 시대는 대중의 영적 성향이 시대의 향방을 결정한다. 어설픈 전문가가 시대를 진단하고 국가의 미래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 없다. 그 무책임한 발언이 다수의 여론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책임 있는 진단은 하나님의 진단이다. 그 진단만이 궁극적 해답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진단을 아는 지도자가 백성에게 소신 있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해야 한다. 그 뜻에 따라 정책과 대책을 강구하고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전문가를 초월하고 다수결을 초월하여 가장 정확한 방향을 제시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사람의 기본 지식과 지혜가 되고 사회의 가치관이 되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감당해야 하는 시대적 사명이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