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 유형의 기독교인

Dec 12, 2021

네 가지 유형의 기독교인

기독교인을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 할 수 있다. 교회에 다닌다고 다 같은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에 대해 첫 번째 유형을 ‘충실한 기독교인’ 두 번째 유형을 ‘가나안 성도’ 세 번째 유형을 ‘탈기독교인’ 그리고 마지막 유형을 ‘문화적 기독교인’으로 분류할 수 있다. 유형별 특징을 설명하면 ‘가나안 성도’ 유형은 영국 기독교인들의 특징으로 이야기됐는데, ‘소속 없는 신앙’으로 불리기도 한다. 

종교 단체로서의 교회에는 소속돼 있지 않지만 여전히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영국의 사회학자인 그레이스 데이비가 영국의 종교를 설명하면서 이러한 표현을 사용했다. ‘문화적인 기독교인’은 북유럽 기독교인들의 특징인데 영국과는 반대로 ‘신앙 없는 소속’으로 불리기도 한다. 미국 사회학자인 필 주커먼이 덴마크에 살면서 관찰한 결과, 북유럽 사람들 대부분은 스스로를 기독교인 이라지만 기독교의 전통적 교리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예수가 참 하나님이자 참 사람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은 약 30%, 내세를 믿는 사람도 겨우 30%, 성경이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은 10%도 안 된다. 그런데도 인구의 80%는 국교회에 속해 교회세를 내고 있다. 믿지 않으면서도 교회에 속해 있는 것이다. 이들은 어렸을 때 성경 이야기를 듣고 찬송을 배우고 가족과 함께 기독교 축제를 즐겼고, 거의 모든 사람이 기독교 분위기의 모임에 참석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추억 이상의 의미는 부여하지 않는다.

명목적인 기독교인: 문화적인 기독교인은 문화적 관성에 따라 ‘그냥 항상 해오던 일’이기 때문에 교회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문화적 종교는 오랜 역사를 지닌 종교적 전통에 일체감을 지닌 사람들이 종교 안의 초자연적인 요소를 진심으로 믿지 않으면서도 종교 행사에 참여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유교와 불교에서도 이런 특징이 발견된다. 우리나라에서 유교는 종교로서의 생명력은 없지만 제사 등의 관습에서 여전히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적지 않은 불교 신자들도 1년 몇 번 절에 나가지 않고 불교 교리가 깊이 뿌리 내리지는 않았지만 문화적 전통으로서 불교를 받아들이고 있다. 종교가 오랜 역사를 지나면서 초기의 열정은 약해지고 문화적인 형태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결국 이름뿐인 종교인들로 ‘명목적인 종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개신교는 역사 면에서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지만, 이 땅에 들어온 지 130년 이상이 지나면서 이미 절정기를 지난 특징들을 보이고 있다. 

전래 100년쯤 무렵인 90년대 이후에 각 교단이 교세 감소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으며, 한국 교회에서 위기 담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탈교회 현상인 가나안 성도 이야기가 처음 등장한 것도 그 무렵이다. 이들은 ‘예수는 믿지만 교회는 불편하다’며 교회를 떠나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희망은 이들이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고 있고 앞으로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에서 이들을 명목적인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이런 점에서 사실이 아니다.

명목적인 기독교인은 기독교인이라고 불리지만 사실상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다. 필 주커먼은 미국의 무종교인들을 연구하면서 자신이 만난 목사들 중에는 사실상 하나님의 존재나 내세에서의 구원을 믿지 않으면서도 성도들에게 설교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국교회 안에도 신앙이 없이 교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다수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이들 중에는 여전히 진리를 찾고 있고 바른 신앙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신앙에는 관심이 없이 습관적으로 다니고 있거나 신앙 외에 다른 필요들 때문에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인이란? 그렇다면 교회 생활도 열심히 하면서 좋은 신앙을 가지고 있는 독실한 기독교인은 어떤 사람일까?

2017년에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에서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개신교 신자 중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했다’고 응답한 사람이 78%이고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66%였다. 영접 기도는 했지만 아직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이 10% 정도로 해석된다.

씨뿌리는 비유에 보면 네 종류의 밭 중에 좋은 땅(옥토)만이 결실이 있었다. 4분의 1이 진짜 그리스도인이라는 의미이다. 오늘 날의 교계를 보면 정확히 숫자적으로 파악한 것은 아니지만 4분의 1도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구원이 확실하면 구령열이 있고 복음 전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고 열매가 있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한 알의 밀이 되는 것을 당연시하고 희생적인 삶을 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