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와 이류의 차이

Jan 23, 2022

일류와 이류의 차이

전자제품 회사가 전국적인 애프터서비스(A/S) 망을 운영하고 있다는 광고는 뒤집어 보면 고장이 난다는 자백이다. A/S 자체가 없는 게 진짜 일류다. 품질에 대한 강력한 자신감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다. 이런 일화가 있다. 세계적 명품 브랜드인 롤스 로이스차가 사하라 사막에서 고장이 났다. 신고를 받은 롤스 로이스 회사는 헬리콥터로 날아가 즉시 다른 차로 바꾸어 주고 신속한 서비스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 한 적이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일류 회사에는 영업부서가 없다는 이야기와도 비슷하다. 사실 일류 기업은 쓰는 용어부터 다르다. 이류 중국집은 배달을 해주지만 일류 중국집은 가서 먹어야 한다는 말도 있다. 결국 순금은 도금할 필요가 없으며, 명품은 호객하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명품을 걸치고 다닌다는 건 본인이 명품이 아님을 광고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대인과 소인의 차이는 바로 그릇의 넓이와 깊이의 차이다.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부정적인 것은 상대를 부정하여 자신을 돋보이게 보이려는 교만에서 나온 반응 이라고 하면 긍정적인 것은 상대를 인정하고 배우려 하는 겸손의 반응이다. 이류 수준과 일류 수준을 구별하는 기준을 아는가 자신이 이류인지 일류인지 아는 방법이 있다. 나보다 못한 사람을 대할 때 경멸하는 마음이 드는가 그렇다면 나는 교만한 사람이며 그 사람보다 잘난 사람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나보다 못하다 해도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것을 찾을 수 있다면 나는 겸손한 사람이다. 교만한 사람은 이류이고 겸손한 사람은 일류이다. 

일류는 감히 따라 올 자가 없는 실력과 경쟁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 사람은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서도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음을 보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실력의 진보가 계속되는 것이다. 이류는 일류를 보고 배우려 하기 보다는 시기하고 폄하하기에 바쁘다. 배우려는 지혜보다 배울 기회를 잃어 버리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어리석움을 지혜로움으로 착각하는 한 이류를 벗어나기 어렵다.

남을 밟고 올라서야 높아지는 것으로 아는 것은 일류가 되는 방법이 아니라 이류로 전락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일류가 될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고 모르는 사람은 이류를 벗어나기 어려운 사람이다. 생존경쟁의 냉혹함은 일류와 이류의 삶에서 증명된다. 승리는 일류에게 주어지고 패배는 이류에게 주어진다. 이등을 간발의 차이로 일등을 놓친 관계라고 생각하기 쉽다. 일등만 일등이고 이등은 꼴찌와 동일하다. 단둘이 뿐이라면 이등은 꼴찌다. 이등에게 주는 메달은 반쪽짜리 금메달이 아니라 은메달이다. 

인간 관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숙명적 인간 관계는 다양한 문제의 발생을 전제로 해야만 한다. 생존경쟁 관계이면서 공생 관계에 있는 관계로 이해관계의 갈등이 상존한다. 경우에 따라 피해를 주고 손해를 당하며 이익을 보고 유익을 주는 일이 반복된다. 때로 아군이 되고 때로 적군이 되기도 한다. 유익한 관계는 누구나 환영하지만 불이익을 주고 미움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세상적 기준은 당연히 원수시 하고 멀리하거나 복수를 생각한다. 

유익한 관계는 누구나 문제 되지 않는다. 그 반대의 경우에 대한 자세와 반응이 일류와 이류를 증명한다. 문제가 되는 불이익과 피해에 대한 반응이 나 자신의 성공과 실패, 승리와 패배를 결정한다. 나 자신의 믿음의 크기와 깊이가 문제를 포용 할 수 있는가 없는가, 포용하는 크기가 일류와 이류를 증명한다. 불신앙의 사람은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반면에 신앙의 사람은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감당 할 수 있는 믿음이 일류이고 감당 못하는 믿음은 이류이다. 

주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아 오라’고 하셨다. 십자가는 나를 위해서 짊어지는 것이 아니다. 남을 위해서 짊어지는 것이다. 십자가는 타당성이 있고 이해가 되는 문제를 말하지 않는다. 부당하고 이해가 되지 않고 억울한 것이 십자가의 특징이다. 남의 칭찬과 격려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의 조롱 비난과 모욕을 아무 말 없이 받아 들이고 그들을 위하여 고난 당하는 것이다. 

부당함과 모욕을 감당하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수준이 일류 신앙이라면 부당함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십자가를 벗어 버리는 수준은 이류 신앙이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라 가는 사람이 있고 십자가 없이 빈 몸으로 예수를 따라가는 사람이 있다. 십자가 없이 예수를 따라가는 것은 예수와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멀어지는 것을 가까워지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류는 영원히 일류이고 이류는 영원히 이류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예수만이 유일무이한 구원의 길이요 구원의 진리요 영생이시다. 구원의 길에는 이류가 없다. 일류 뿐이다. 생사 화복의 길이요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 뿐이다. 생사 화복의 진리는 이류가 없다. 일류 뿐이다. 생명의 길 복의 길 의의 길은 이류의 진리도 이류의 길도 없다. 인류의 구원의 유일한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이류 예수는 없다. 구원받는 믿음은 이류가 없다. 일류 믿음과 이류 믿음은 비슷한 것 같지만 영원히 다르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