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3.22 주일예배 - 두가지 성공, 두가지 실패

Sunday, July 3, 2022 - 10:30 to 11:30

 

두가지 성공, 두가지 실패(창32:22-32)

인생의 목적이 성공인가 실패인가 – 성공을 싫어하고 실패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성공은 모든 사람의 소원하는 바이며 목표이다. 애굽에 노예로 팔려간 요셉을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손에 복을 주어 형통케 하셨다는 말씀이 나온다.(창39:1-5) 형통(성공)은 인간의 소원이며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다. 성공은 소유적 성공과 존재적 성공이 있다. 실패도 소유적 실패와 존재적 실패가 있다. 소유와 존재, 두 영역에서 성공과 실패가 있게 된다. 

두가지 성공, 두가지 실패 – 소유적 성공과 존재적 성공, 소유적 실패와 존재적 실패. 두가지 성공과 두가지 실패가 존재한다. 문제는 한가지는 성공했으나 한가지는 실패하는 경우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야곱이 소유적 성공 이후에 다시 소유적 실패에 부딪히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소유적 성공이 성공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며 보다 근본적 성공이 존재적 성공이라는 것이다. 존재적 성공이 소유적 성공의 원인이 되고 완성이 된다는 의미이다. 

첫번째 하나님 만남과 두번째 하나님 만남의 공통점 – 야곱이 직접 하나님을 만나는 두번의 사건의 공통점이 있다. 빈손상태였다는 점이다. 빈손으로 하나님을 만나 소유적 성공을 했으나 다시 빈손이 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시며 또한 모든 것을 가져가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이다. 욥의 고백처럼 주신 자도 하나님이시요 가져 가시는 자도 하나님이시다. 

소유적 위기에서 존재적 위기로 – 야곱이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이 창32장10-11절에 나온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하옴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 소유적 위기를 벗어났으나 존재 위기에 부딪힌것이다. 

소유 문제와 존재 문제 – 인생의 문제는 소유 문제가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다. 신앙 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가 그렇게 생각하지만 믿으면서도 그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소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어도 존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소유 문제 해결은 무의미해진다. 소유 문제 해결로 존재 문제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존재 해결에 소유 해결이 달려있다. 

빈 손에서 다시 빈 손으로 – 원점에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하신 것은 궤도수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의미이다. 원점에서 다시 출발하라는 것이다. 소유가 아닌 존재 문제는 언제라도 인생을 원점(원위치)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죄’는 화살이 빗나간 것을 말한다. 빗나간 화살은 미사일처럼 궤도 수정이 가능하지 않다. 화살을 다시 쏴야 한다. 다시 출발해야 한다. 야곱의 인생을 다시 출발하라는 신호이다.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 얍복 나루에서 야곱이 천사와 씨름할 때 천사는 야곱을 뿌리치며 붙잡은 손을 놓으라고 강력하게 말한다. 야곱으로 하여금 천사(하나님)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냉혹하게 뿌리치는 시험으로 야곱을 다루어 보는 것이다. 하나님과 야곱 단 둘이 씨름하는 상황에서 선택은 둘 중에 하나다. 끝내 자신을 포기하든지 하나님을 포기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 천사(여호와)의 이름을 묻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도리어 야곱의 이름을 묻는다. 그리고 야곱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신다. 새 이름을 주신 것은 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는 것이다. 야곱을 버리고 이스라엘을 받으라는 것이다. 야곱을 버리지 않으면 이스라엘이 될 수 없다. 옛 사람을 버리지 않으면 새 사람을 입을 수 없다. 

소유적 성공과 존재적 성공 – 소유를 상실하고 존재가 부러지는 시험이 얍복 나루의 연단이다. 부러진 사람과 부러지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많이 달라진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된 것을 말한다. 결국 옛 사람과 새사람의 차이는 완벽히 부러져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을 말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과 쓰시지 않는 사람 – 하나님은 반드시 부러진 사람을 쓰신다. 또한 부러뜨려서 쓰신다. 부러지지 않은 사람은 쓰실 수 없고 쓰시지 않는다. 힘줄을 쳤다는 것은 고집을 꺾으셨다는 것이다. 환도뼈를 부러진 사람이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된 것이다. 자기 의가 부러진 사람만이 하나님의 의를 따라 살기 대문이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써주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