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8.22 주일예배 - 자기 함정(정반대)③

Sunday, September 18, 2022 - 10:30 to 12:00

 

자기 함정(정반대) (마24:37-41)

재림 직전의 시대적 특징 – 기존 기독교 신앙인의 배도, 배교가 극심해진다. “주의 날이 이르렀다는 소문에 요동하지 말라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살후2:2-3) 본문에 두 종류의 사람이 나온다. 함께 밭에 있다가 데려감을 당하는 사람, 버려둠을 당하는 사람이 있다. 지붕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 밭에서 뒤로 돌이키는 사람이 있다. 믿음에서 떠나는 배도 현상이 심화된다(딤전4:1)

노아의 때(시점) – 홍수가 있던 (노아의 나이 600세) 시점의 의미는 무엇인가 예정에 없었던 사고가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에 때를 언급하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홍수 심판은 969년 전에 계획 되었던 것을 에녹의 므두셀라의 출생을 통해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심판 계획을 알게 하시고 주신 아들이 므두셀라(창을 던지는 자, 그가 죽으면 그것(심판)을 보내리라)이다. 정확하게 므두셀라 969세때 홍수 심판이 내려진다. 

노아의 때(상황) –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아담부터 노아 때까지 1656년이 경과된 시점에 세계 인구는 10억에서 100억으로 추산한다. 어림잡아 50억으로 말해도 노아의 가족 8명만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은 당시 신앙적 상황이 어떠 했는가를 증명해주는 것이다. 100년 동안 진행되는 방주 공사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고 완성된 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노아 가족과 짐승들이 떼를 지어 방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깨닫지 못하는 강퍅한 시대였다. 

반대 방향 – 마7:13-14에 좁은 길과 넓은 길이 나온다. 생명으로 가는 길이 좁은 길과 넓은 길이 있다는 말이 아니다. 길의 넓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는 생명으로 가는 길이고 다른 길은 멸망으로 가는 길이다. 정반대의 길이라는 것이다. 인생의 방향은 하나님과 일치된 방향을 가느냐 반대의 길을 가느냐 둘 중에 하나다. 목자를 따라 가는 길과 그 반대의 길이 있다. 방향은 달라도 끝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다. 방향이 다르면 도착지도 다르다. 

반대 목적 –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 예고를 처음 듣게 된 베드로는 예수님 앞을 가로막으며 그럴 수 없다고 강하게 만류한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은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예수님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랴 사람을 기쁘게 하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다.(갈1:10)

반대 순서 – 성경은 진리이며 원리이다. 원리의 생명은 질서에 있고 질서는 순서에 있다. 생명의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은 명확한 질서와 순서를 말하고 그 결과를 밝힌다.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마6:33) 순서와 질서는 생명이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대한 순종은 질서에 대한 순종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질서는 형편과 사정을 초월하여 지켜져야 한다. 불순종은 질서의 불순종이다. 하나님이 먼저냐 내가 먼저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반대 장소 – 하나님의 계획의 필수 요소인 시간과 장소는 인생의 필수 요소이다. 하나님의 계획하시고 지시하신 시간과 장소를 지키는 것이 모든 것을 지키고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다. 장소 선택이 성공과 실패, 생명과 사망, 축복과 저주를 결정한다. 구원의 여부는 장소로 증명된다. 천국과 지옥으로 증명된다. 장소가 모든 것을 증명한다. 병원은 병자가 있는 곳 죄인이 있는 곳은 감옥이며 학생이 있는 곳은 학교이다. 성도가 있는 곳은 성전이다. 구원 받은 자가 있는 곳은 천국이다. 

반대 거리 – 두 가지 방향이 있고 두 장소가 있다. 상반된 두 방향은 두 장소와의 거리로 나타난다. 천국이 가까워지면 지옥은 멀어진다. 세상과 가까워지면 하나님과 멀어지고 하나님과 가까워지면 세상과 멀어진다. ‘여호와를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몸의 거리와 마음의 거리는 비례한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같이 있다는 말은 정직한 말이 아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교회와 가까워지느냐 멀어지느냐가 모든 것을 증명하고 결정한다. 

반대 생각 – 빙산이 움직이는 방향은 해상의 바람의 방향이 아니라 해저의 해류의 방향에 따라 움직인다. 보이는 현상이 사람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인 상태가 삶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행동이 바뀌지 않는다.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운명이 바뀌지 않는다. 육의 생각과 영의 생각은 서로 원수가 되는 대적 관계이다. 육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않고 할 수도 없다. 마음을지켜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잠4:23)

마귀의 불장난 – 마귀는 최초에 인간의 타락을 조장하는 방법이 불장난이었다. 하나님의 뜻 앞에 <불>자를 붙였다. 신앙을 불신앙으로, 순종을 불순종으로, 만족을 불만족으로, 행복을 불행으로, 확실을 불확실로, 선악과의 명령에 불자를 붙여 불신하게 만들어 먹게 하여 결국 죄를 짓고 사망과 저주를 받게 했다. 성령 불을 받아야 마귀의 불장난에 속지않고 지옥불로 가지 않는다. 다른 방법이 없다. 마귀의 불장난을 이기는 방법을 성령의 불을 받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