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좇아간 사람
하나님의 부르심(떠나)과 보내심(가라) - 믿기 전과 믿은 후의 필연적이고 필수적인 변화가 있습니다. 부르심과 보내심에 의해 떠나야 하고 가야 하는 변화가 생깁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지는 영적변화와 아울러 실제적인 삶의 변화로서 사람중심의 삶의 터전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의 터전으로, 사람 중심의 공동체에서 하나님 중심의 공동체로, 육적 혈육 관계에서 영적 혈육 관계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떠나야할 곳과 가야할 곳이 있습니다. 시간적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시간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시간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장소에서 기뻐 하시는 장소로, 하나님이 기뻐 하시지 않는 인간관계에서 기뻐 하시는 인간관계로, 사람의 계획에 의한 삶에서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삶으로 옮겨져야 합니다. 떠나야 갈 수 있습니다. 과거를 떠나야 미래로 갈 수 있고, 세상을 떠나야 천국으로 갈 수 있고, 불순종을 떠나야 축복으로 갈수 있고, 절망을 떠나야 성공으로 갈수 있고, 두려움을 떠나야 승리로 갈수 있고, 열등의식을 떠나야 자신있는 삶으로 갈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연단은 몸은 광야에 나왔으나 아직 나오지 않은 마음때문입니다. 버리지 못한 애굽식 가치관, 버리지 못한 애굽식 사고방식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뿐만 아니라 가나안 땅에 들어 가서도 끊임없이 발생하는 문제의 핵심은 버리지 못한 과거 때문이었습니다.
부르신 목적 - 아브람(우리)을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브람(우리)을 위해서입니다.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도 하나님 자신이 아닌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너에게 복을 주어” 우리의 복을 뺏기 위한 것이아니라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요 우리의 성공을 뺏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성공을 주기 위함이요 우리의 형통을 뺏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에게 형통을 주기 위함이요 우리의 생명을 뺏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네 이름을 창대케”우리의 이름이 소멸되게 하려함이 아니라 창대케 되게 함이요 비천하게 되게 하려함이 아니라 존귀하게 되게 하려함이며 아래에 있게 하려함이 아니요 위에 있게 하려함입니다.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나로 인하여 내가 속한 민족과 국가의 번영과 부흥을 이루게 하려 하심 입니다. 나의 영향력이 민족을 침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부흥하게 하고, 불행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하고, 약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강하게 하는 것입니다. “너로 인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니라” 궁극적인 하나님의 목적은 개인의 구원, 개인의 축복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이 전인류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각이 근시안적인 것에 머물지 말고 원시적인 안목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부터 시작해서 전세계 땅끝까지 하나님의 복을 나누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부르심과 보내심을 받은 사람은 말씀을 좇아 간다 - 인생은 무엇을 좇아 가느냐에 따라 흥망성쇠와 생사화복이 결정됩니다. 모든 사람은 무엇인가를 좇아가고 있습니다. 좇아 가는 것에 의해 삶의 결과가 결정됩니다. 좇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그사람의 장래를 알 수 있습니다. ‘물질을 따라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질없이 살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물질만 좇아가면 물질이 그사람의 인생을 불행하게 하고 망하게 합니다. 결코 물질이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습니다. ‘사람을 따라가는 사람’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 관계를 떠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필연적인 인간관계가 내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불행일수도 있고 행복일 수도 있습니다.사람때문에 하나님을 등한히 하거나 버린다면 말할 수 없는 고통이요 불행이 되지만 하나님을 위해 인간관계를 희생 시킬수 있다면 불행이나 고통이 아니라 축복이 됩니다. ‘하나님만 따라 가는 사람’ 아브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난다는 것은 큰 결단이 요구됩니다. 지금까지 생존을 위해 의지했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과 물질, 그리고 하나님을 동시에 따라갈 수 없습니다. 한쪽을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 이외의 것을 과감히 포기할 수 있는 믿음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워지는 것이 우연이 아닌 것입니다.
말씀을 좇아간 아브람 - 하나님을 좇아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장애 요인을 극복해야 합니다. 날마다 부딪치는 환경이 말씀의 장애가 될수 있습니다. 생계 수단이 말씀의 장애가 될때 사람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생계의 어려움을 각오하고 말씀을 지킬때 비로서 말씀이 실제 삶속에 역사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말씀 준수가 생계를 어렵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보장하고 복되게 하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말씀을 좇아간다는 것은 말씀이 삶의 수단이 아니라 목표가 된 것을 말합니다. 사람의 계획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목표로 하는 것이 말씀을 좇는 것입니다. 말씀의 성취가 목표가 되는 삶이 믿음의 삶입니다. 말씀은 목표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법이요 기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법에 의해 다스려집니다. 사람이 만든 법과 질서가 훌륭해도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기준을 대신 할 수 없습니다. 완전한 의의 기준은 하나님 자신과 그의 말씀뿐 입니다.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생의 진리, 축복의 진리, 형통의 진리가 됩니다. 세상의 기준과 지식들이 참된 축복과 생명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리석은 것 같지만 참된지혜이며, 약한 것 같지만 참된 능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