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백오십대 일
엘리야의 도전 – 극도로 타락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3년반 동안의 극심한 기근으로 나타납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최악의 굶주림으로 왕을 비롯한 모든 백성이 아사 상태에 이르게 되었을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폭군 아합왕에게 보냅니다.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모든 백성을 모이게 하고 공개적으로 바알 과 여호와 하나님 중 어떤 신이 참신인지 가리는 영적 대결을 요구하며 도전합니다. 전쟁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최종적인 전쟁이 영적 전쟁입니다. 모든 전쟁이 그렇지만 영적 전쟁은 육신의 목숨을 잃을지라도 양보할 수도 물러설 수도 패배해서도 안되는 전쟁입니다. 물리적 목적의 전쟁은 패배해도 물리적인 것만 잃지만 영적 전쟁은 현세와 내세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악한 영과 그의 세력을 향하여 선전 포고한 엘리야는 하나님의 영광과 악한영에게 붙잡힌 모든 백성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전부를 걸고 도전 합니다. 전쟁은 패배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승리하기 위해서 합니다. 승리의 확신과 자신이 있어야 하고 보장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100% 보장된 승리를 위해 싸웁니다.
말세의 타락과 환난 –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도 타락이 극에 도달 했을 때에 있었고, 소돔 고모라의 심판도 타락이 극에 도달 했을때에 있었습니다. 아합왕 때에도 바알과 아세라 우상 숭배로 영적 윤리적 타락이 극에 도달 했을때 하나님은 하늘을 닫아 3년 6개월 동안 기근을 통해 심판 하십니다. 타락과 환난은 비례합니다. 하나님의 인간의 타락에 대하여 반드시 징계하시고 심판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계시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의 말씀과 그의 뜻대로 살때 축복을 보장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말세 시대인 지금도 하나님은 타락한 인류에게 환난으로 그들의 죄악을 심판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인 경제난과 천재지변, 전쟁과 테러와 범죄의 급증 앞에 아무 대책도 소용이 없는 인류는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하나님과 그의 경고를 무시하고 타락으로 아집과 자만에 빠진 인류에게 하나님이 누구인지 나타내고 계십니다. 불신자도 배교자도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했던 자도 모든 인간이 전능자 하신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 날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보장 – 급속도로 타락으로 환난이 심화되는 상황속에서 두가지 현상이 나타납니다. 타락의 도를 더해가는 부류에 속한 사람이 있고 더욱 신앙을 견고히 지켜가는 부류에 속한 사람이 있습니다. 여기서 심각한 환난과 재난속에서 하나님의 보호와 보장을 받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의 보호와 보장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보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는 상황이 좋을 때보다 나쁠때, 경기가 좋을 때보다 나쁠때 더 뚜렷하게 표시가 납니다. 다 잘되는 좋은 상황에서는 별로 차이가 없는 것 같으나 다 어려운 상황에서는 하나님이 보호 하시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확실해 집니다. 하나님이 절대 책임지는 사람은 하나님을 절대 의지 하고 절대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평안할 떄는 모르지만 환난을 만나보면 절대신앙 여부를 알수 있습니다. 불확실한 신앙은 하나님의 보호가 불확실하고 확실한 신앙은 하나님의 보호가 확실합니다. 시대가 악해지고 타락이 도를 넘는 마지막 종말 시대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신앙의 타락 여부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보다 영적 건강상태가 확인 되어야 합니다.
사명자와 연명자 --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과 바알을 섬기는 사람의 차이는 목적에 차이가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은 우상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목적 때문에 우상을 섬깁니다. 우상을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상을 위해 목숨을 걸고 충성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연명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삽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목숨도 희생할 수 있습니다. 사명을 위해 사는 사람은 사명을 생명보다 귀하게 여깁니다. 연명을 위해 사는 사람이 섬기는 우상은 사람의 생명을 책임져 주지 않습니다. 책임질 능력이 없습니다. 사명을 위해 사는 사람이 섬기는 하나님은 사람의 생명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삶의 목적이 궁극적으로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이 됩니다. 나를 위해 사는 것은 결과적으로 나를 위해 사는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겼던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살았으나 파멸의 길을 간 것입니다.
절대 우세, 절대 열세 – 영적 대결을 도전하는 엘리야는 혼자요 바알 선지자는 450명 으로써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적수가 되지 않는 대결입니다. 담대하게 도전하는 사람은 숫적으로 우세한 바알 선지자들이 아니요 열세에 있는 엘리야 입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는 우세한 사람이 담대하게 마련인데 열세인 사람이 담대하다는 것은 이해가 안되는 일입니다. 인생의 승부는 육신적인 조건이 우세한 것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것만으로는 절대 열세에 있는 엘리야가 승리의 확신을 갖는 것은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의 여부에 따라 절대 열세가 절대 우세로, 절대우세가 절대 열세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절대 보장하는 사람은 절대열세에 있을지라도 전혀 염려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의 절대 조건은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전부를 맡길수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생사를 맡길수 있는 믿음이 있을때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책임지십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함께하는 시람은 패배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