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기둥 3

Jun 10, 2012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님
구절: 
수4: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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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명령(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 하나님의 말씀의 형태는 명령 형태로써 권면이나 충고 혹은 제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타협이나 협상 대상이 아닙니다. 복종(순종) 혹은 불복종의 선택이 있을 뿐입니다. 여호수아에게 주신 명령은 제사장과 백성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백성에게 전달되는 말씀은 여호수아 개인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명령)입니다. 주의 종을 통해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잘못 생각하게 되는 것은 마귀의 속임수입니다. 사람의 말로 여길때 거부와 무시와 부인과 불순종이 쉬워집니다.사람의 말로 여겼다는 변명이 불순종을 합리화 하지 못합니다. 주의 종을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면 현장에서 말씀이 역사하여 사건이 일어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우리가 그말씀에 순종(행동)할때 삶의 현장에서 보이게 나타나 하나님을 증거하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말씀에 의해서(요단에서 올라오라 하시니, 요단에서 올라오니) –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요단에 들어 갔을때 말씀처럼 요단이 갈라졌고, 말씀에 따라 요단에서 나올때 요단 물이 전에 처럼 다시 흘러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요단 물이 갈라진것도 말씀에 의해서 요단 물이 다시 흐르는 것도 말씀에 의해서 입니다. 중단되는 것도 진행되는 것도, 죽는 것도 살리는 것도, 있게 하는것도 없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역사요 뜻입니다. 마음에 들면 하나님의 뜻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것이 아닙니다. 잘 되면 하나님의 뜻이고 안되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훈련시킨 목적이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현실(정월 십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 길갈에 진치매) –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은 천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의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추상적인 존재로 알면 신앙생활을 추상적으로 하게 되고 구원을 추상적으로 알아 헛수고하는 신앙생활을 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실제 삶의 현장에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때와 장소와 사람과 사건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허락하신 현실의 요소를 알아야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때, 모든 장소, 모든 사건,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허락하심의 여부를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광야에서부터 요단을 건너 길갈에 진치기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랐습니다. 현실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이 천국까지 인도함을 받을 수 있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이정표의 장소 (요단에서 가져온 열두돌을길갈세우다) &#8211; ‘길갈’의 의미는 ‘굴리다’입니다. 굴리는 것은 전환을 말하며 지속과 연결을 말합니다.하나님의 계획은 일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환성> 길갈은 이전과 이후의 전환점이 됩니다. 광야 시대에서 가나안 시대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곳이 길갈입니다. 하나님의 진행은 단순 반복이 아니라 발전적인 진전을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사건 하나 하나, 문제 하나 하나가 반드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연결성> 모든 사건은 일회성 사건이 아닙니다. 전후와 과거와 미래와 무관한 단독, 단일 문제(사건)는 없습니다.사람과 사건과 시간과 장소의 연결없이 여기까지 온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원인을, 어떤 것의 결과를, 어떤 것의 예표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무시하는 것이 영적 무지요 영적 소경으로써 자신을 피해자로 실패자로 만듭니다.

하나님의 이정표인 돌기둥(이 돌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희는 자손에게 알게 하여마른 땅을 밟고 요단을 건넜음이라) &#8211; 하나님은 모든 상황에서 모든 길을 여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불변하고 능력은 전능합니다. 절망의 상황에서, 사망의 상황에서, 실패의 상황에서, 기근의 상황에서, 불가능의 상황에서 전혀 변함없이 역사하시고 이루어 가십니다. 돌기둥은 하나님의 불변성과 전능성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보증의 증거가 됩니다. 홍해 사건은 광야의 생존과 승리를 보증하는 증거가 되고, 요단 사건은 가나안 정복을 보증하는 사건이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절망의 강 속에서 소망의 마른 길을, 사망의 강 속에서 생명의 마른 길을, 기근의 강 속에서 풍년의 마른 길을, 실패의 강속에서 성공의 마른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고통의 상황에서 능히 기쁨의 길을 가며 불행의 상황에서도 행복의 길을 능히 가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은 죄악 가운데서 죽음의 길을 가지만 우리는 생명의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홍해와 요단의 같은 점과 다른 점(여호와께서 너희앞에 요단을 마르게 하사 너희로 건너게 하신것이,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로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8211; <같은 점> 요단 사건과 홍해 사건의 같은 점은 홍해도 요단도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에 의해 갈라져 마른 길이 열려 부모의 세대도 자녀의 세대도 건넜다는 것이며 <다른점> 홍해는 갈라진 다음에 들어 갔고, 요단은 들어간 다음에 갈라졌습니다. 홍해는 하나님이 먼저 기적을 보여 주시고 백성이 믿고 순종했고, 요단은 백성이 먼저 믿음으로 순종을 보여 하나님이 기적을 나타내셨으며, 광야 생활은 끊임없이 하나님이 기적을 보여 주셔서 따라 오게 하셨습니다. 믿음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기적을 보여 주심을 기다리는 신앙생활은 현실 문제 해결에 급급한 패배적인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운 삶이라고 하면 요단을 건너는 믿음의 삶은 가나안을 능히 정복한 승리를 누리는 담대함과 기쁨이 충만한 삶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