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를 지으라

Nov 25, 2012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님
구절: 
창6: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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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를 지으라(창 6:13-16)
그 끝날이 이르렀으니(역사의 끝) – 역사의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역사는 둥근 원이 아니고 일직선이기 때문에 시작 시점과 지점이 있고 끝나는 시점과 지점이 있습니다. 반복과 U턴이 불가능합니다. 안되는 이유는 역사의 특성이 일회적이며 일방적이기 때문입니다. 시작은 같으나 끝은 다릅니다. 모든 선수가 같은 시간 같은 출발선에서 출발하지만 종착지점에 도착은 각각 다릅니다. 신앙생활로 말하면 같은 교회에서 같은 예수를 믿기 시작했지만 끝에 가보면 구원 받아 천국 간사람, 구원 못받고 지옥 간사람으로 달라지고, 다같이 맨주먹으로 시작했지만, 성공으로 끝난 사람, 실패로 끝난 사람으로 달라지고, 같은 말씀을 들었지만 축복으로 끝난 사람, 저주로 끝난 사람으로 달라집니다. 태어났기 때문에 반드시 죽는 것이 정해져 있고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죽음을 피할수 없듯이 심판을 피할수 없습니다.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지으라(하나님의 계획과 예비) – 역사의 끝, 인생의 끝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홍수 심판을 계획하시고 구원을 계획하시고 그사실을 알려 주시고 준비하게 하십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제외하면 역사는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할 의미도 없습니다. 역사의 계획은 구원의 계획입니다. 사람들은 역사의 의미를 다양하게 이야기하지만 근본적인 목적은 구원입니다. 홍수 심판앞에서 방주에 의해 홍수 위의 인생과 홍수 아래 인생으로 달라지고 운명이 갈라집니다. 심판 앞에서 십자가에 의해 천국 인생과 지옥 인생으로 갈라집니다. 인간의 어떤 지식(과학),재물,권세가 아닌 예수 믿는 믿음에 의해 홍수에 의한 멸망 위의 인생과 멸망 아래 인생으로 갈라집니다. 인간의 어떤 수단과 방법도 심판의 결과를 바꿀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방주를 준비하지 않는 사람은 방주가 내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위하여 필요한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입니다.
너는 잣나무로 방주를 지으라(방주의 재료) – 방주의 계획은 사람의 계획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획이지만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말씀)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입니다. 방주의 목적과 재료까지 언급하십니다.
지명한 나무 – 방주를 구성하는 재료인 나무는 교회의 구성원인 성도를 상징합니다.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 모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방주용 나무를 사람이 선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선택하신 것 같이 교회의 지체인 성도 역시 하나님이 택하여 부르신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택한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자신이 택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과 하나님의 택하심에 의해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전혀 다릅니다. 사람의 결정에 의한 신앙생활이냐, 하나님의 결정에 의한 신앙생활이냐에 따라 정반대의 신앙생활이 됩니다. 신앙생활하는 자세와 과정과 결과가 정반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될수도 있고 그반대의 삶이 될수도 있습니다. 상급과 축복을 쌓는 삶이 될 수도, 진노와 저주를 쌓는 삶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옮겨진 나무(잘라진) – 방주용 나무는 산에서 선택 됐지만 사용되어지기 위해서는 현장으로 옮겨져야 합니다. 산에 있는 상태로는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옮겨진 나무는 교회 중심, 하나님 중심의 삶이요, 옮겨지지 않은 나무는 세상 중심, 자기 중심의 삶입니다. 하나님이 목적이 된 삶이 있고 아직 세상이 목적인 삶이 있습니다. 옮겨지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이 있습니다. 잘라야 합니다. 잘린 나무는 죽은 나무입니다. 죽지 않고는 옮겨올 수 없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삶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입니다. 자신이 죽지 않고는 예수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개인적인 신앙생활에서, 또는 교회생활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핵심적인 근본 원인은 자신이 안 죽었기 때문입니다. 죽지 않으면 자신도 끊임없이 문제에 부딪히게 되고 끊임없이 남에게 문제가 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굵은 나무(단단한 나무, 속이 찬 나무) – 모든 부분이 다 마찬가지지만 기둥으로 쓰이는나무는 굵은 나무여야 합니다. 어떤 환난이 와도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모진 풍파 속에서도 꿋꿋이 견디는 낙낙장송처럼 마지막 때의 극심한 환난에서 교회를 끝까지 지킬수 있는 요동치 않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강한 믿음, 견고한 믿음, 큰 믿음일때 다양한 상황에서 주어지는 다양한 임무와 사명을 감당할 수 있고 많은 사람을 포용할 수 있습니다. 세상사는 것이 그렇고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때도 그릇이 커야 모든 상황에서 쓰임받을수 있습니다. 용도가 지극히 제한 된 그릇이 있고 제한 없이 쓸수 있는 그릇이 있습니다. 인간적인 실력의 여하에 관계없이 기본적으로 그릇이 커야 하나님이 마음대로 쓰실수 있고 주실수 있습니다. 그릇만큼 쓰임받고 그릇 만큼 받을 수 있습니다.
다듬어진 나무 – 산에서 옮겨온 나무를 그대로 쓸수는 없습니다. 용도에 맞게 다듬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서 연단이 필수적으로 있게 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것은 생명적으로 뿐만 아니라 혼적으로도 마찬가지 입니다. 신의 성품에 참예한 자가 된것은 실제로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했다는 의미 입니다.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것과 쓰임받는 것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구원받았으나 쓰임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도에 맞도록 다듬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연단이 끝나는 시간과 다듬어지는 시간과는 밀접한 함수관계가 있습니다. 인격과 성품이 다듬어지지 않으면 본인도 힘들게 살게 되지만 남도 힘들게 합니다. 남을 다듬으려 하지말고 나를 다듬어야 합니다. 남과 부딪힐때 흔히 남을 탓하지만 나를 점검해야 합니다. 남을 다듬는 것이 복이 되는것이 아니라 나를 다듬는 것이 복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