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움직이는 사람
오늘의 본문은 우리 모두가 많이 들어왔던 나사로 사건입니다. 죽은 나사로를 예수님께서 살리신 이 사건은 누구든지 교회를 1년이상 다녔다면 한번 쯤은 들어봤던 말씀일것 입니다. 특별히 1절부터 5절을 보면 나사로에게 베푸신 예수님의 기적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리아, 마르다 그리고 나사로가 베다니라는 동네에 살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 나오는 마리아와 마르다는 누가복음에서도 등장했던 인물인것 같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분주히 일만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마르다와 집에 찾아오신 예수님의 말씀을 정신없이 듣고만 있는 마리아에 대해 기록하였습니다. 마르다는 그런 동생을 시기하고 못마땅해 하다 예수님께 훈계의 말씀을 들었다는 사건이 적혀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집안 사정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에게 있어서 오라비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니 많은 혼란과 걱정이 있었을것 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 셋을 사랑하셨다고 5절에 이야기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왜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이들에게 이런 어려움이 닥치게 되었냐는 것입니다. 왜 병들은것인가? 예수님이 사랑하신다면 왜 바로가서 고쳐주시지 않으시고 몇일이 지나 나사로가 죽은후에야 베다니로 가신 것인가? 마르다도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다고” 말합니다. 그말에는 원망이 담겨 있는것 입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은 남 이야기 같지가 않습니다. 때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삶에서 지치고 쓰러질때, 갑자기 어려움이 찾아올때 마르다 처럼 생각할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왜 도와주시지 않습니까? 왜 빨리 오셔서 해결해 주시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사랑하신다면서 왜 이런일이 생깁니까? 라고 따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의 말씀은 오히려 더 도전적이고 소망이 찬 계회을 선포하십니다. 4절에 보면 ‘나사로의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고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그렇지만 정작 오라비를 잃은 마르다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깨닫키는 커녕 오히려 예수님께 반항하는 말을 합니다. 38절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의 돌을치우라고 말씀하시지만 마르다는 그 즉시 오라비의 시체가 이미 썩어 냄세가 난다면 따지고 반항을 합니다. 그때 주님은 ‘네가 믿으면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하신후 나사로를 살려주십니다.
사람의 눈에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를 한번에 해결해 주신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는 이 문제는 불가능한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의 능력을 나타내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목적이 있는 사건이였습니다. 우리도 이런 사건들을 만났을때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여기보면 사건의 목적도 모른체 그저 예수님께 원망하는 마르다와 마리아와 같은 부류가 있고, 정작 아무말안하고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린 무덤속의 나사로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죽은 나사로는 말이 없는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불평한고 원망하고 하지만 무덤속에 뭍힌 나사로는 아무말 없이 주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상황을 주님은 아시고 나사로를 그 무덤에서 살아나오게 해 주신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일들이 닥쳤을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의심하기 보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준비를 하며 인내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기다려야 할것입니다. 그때 주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의 예비하신 기적의 영광을 체험하게 될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