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랑의 원인 (1)

Feb 17, 2013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님
구절: 
욘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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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의 원인(요나1:1-6)

풍랑의 필연성 – 본문(욘1:1-6)의 풍랑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필연적인 사건이다. 필연적인 사건은 특정된 것이 아니다.모든 사건이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원론적으로 모든 사물의 존재 자체가 우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창조주로부터 지음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존재 양태가 스스로에 의해서 아니라 창조주의 섭리에 의하기 때문이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섭리안에 모든 일들이 발생되어지고 진행되는것이다. 문제는 언제든지 원인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우연이라고 치부하는것처럼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것이 없다.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것도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다. 적어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이야말로 더 말할 나위 없는것이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삶은 철저히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있는것이다.요나가 타고 있는 배가 만난 풍랑은 하나님이 보내신 대풍으로 인한 것이다.인생 길에서 순풍을 만나든지 역풍을 만나든지 인위적인 원인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됐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타락의 시작과 진행 – 풍랑의 원인 제공자인 요나의 움직임을 보면 신앙타락의 진행 양상을 알 수 있다.요나의 타락은 요나의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지시)과 다르다는데서 출발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동의할 수 없고 따를 수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방향과 자신의 생각의 방향이 다르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의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방향은 하나님의 방향과 반대 방향이다. 하나님과의 반대 방향은 진리와 생명과 축복과 형통의 반대방향이다. 그 방향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방향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방향이다. 하나님의 생명과 축복과 형통과 멀어지는 방향이다. 욥바로 내려갔다. 욥바는 올라가는 방향이 아니라 내려가는 방향에 있는 도시이며 육지에서 가장 낮은 해변 도시다. 가장 낮은 장소인 동시에 육지를 떠나는 장소이다. 완전히 떠나기 전이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때이다.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다. 형통에는 잘된 형통이 있고, 잘못된 형통이 있다. 다시스행 배를 만난것은 잘못된 형통이다. 배를 탈것이냐 말것이냐가 돌이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요나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다.

풍랑의 시작과 진행 –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 요나의 방향은 하나님의 반대편 방향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관하다는 생각은 틀린 생각이다. 정확히 말해서 하나님의 존재와 말씀은 인정하든 안하든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고 적용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라고 한다면 기준 안에는 생명, 기준 밖에는 사망, 기준 안에는 축복, 기준 밖에는 저주인것이다. 하나님의 존재와 말씀이 부인하면 없는 것이 되고 시인하면 있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반대 방향으로 가는 길은 생명아닌 사망의 길이요 열린 길이 아니라 막힌 길이며 천국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지옥으로 가는 길이다. 순풍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역풍이 길을 막고 있는것이다. 풍랑에 막힌 배는 전진이 중단되고 방향을 상실하고 표류하기 시작한다. 거칠어지는 풍랑은 배에 실린 모든 화물을 버리게 하고 급기야는 배 자체가 완전히 산산조각나는 최악의 상황에 부딪히게 한다. 자신들의 소유와 의지하고 있던 모든 수단이 무용지물임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연단의 진행 양상의 특징 --점진성:하나님의 징계와 연단은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아니라 충분히 대처할 수 있도록 점진적으로 진행된다.하나님은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깨닫게 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미리 예고 신호가 주어지면서 단계적으로 양상이 심화되고 악화되어간다.확장성:하나님의 징계와 연단은 작은 Size에서 큰 Size로, 약한 강도에서 강한 강도로, 소규모에서 대규모로 10배, 100배, 1000배로 확대된다. 작은 규모의 징계(연단)이라고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며 연단에 담긴 하나님의 근본적인 의도를 감안 한다면 연단의 규모를 구별하거나 차별하는것은 무의미한 일이다.원근성: 태풍이 먼 바다에서 발생되어 가까이 다가오는 것처럼 하나님이 허락하신 연단의 특징은 원근성을 가지고 있다.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다가온다. 관계없는것 같은 간접적인 영역에서 시작되어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이고 직접적인 영역으로 진행된다. 경험적으로 보면 하는 일들이 막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여기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물질적 손해가 발생하기 시작하여 점점 큰 손해로 발전한다. 물질 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람문제다. 사람문제 역시 먼 관계에서 가까운 관계로 진행된다. 마지막으로는 본인에게 직접 타격이 온다. 작은 고통에서 치명적인 고통으로 발전한다.

하나님의 SIGN – 연단의 진행 양상의 특징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진다. 천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같이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모든 영혼이 다 회개하고 돌아 오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사람이 가는 길은 두 가지길 중 하나다. 생명 길 아니면 사망의 길, 축복의 길 아니면 저주의 길이다. 하나님이 길을 막으신다면 분명히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고 있는것이다. 하나님의 사자가 칼을 들고 막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발람은 길을 계속 가려 했으나 그것을 본 나귀는 주인의 채찍을 맞으면서도 가지 않고 버텼다. 답답하셨던 하나님은 나귀의 입을 열어 코 앞에 벌어진 상황을 알려 주었다. 하나님의 SIGN을 보지 못하면 나귀만도 못한 삶을 살게 된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은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계시를 깨닫는데 있다. 사람이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시편 기자는 말한다.(시49:20) 성령받은 사람만이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것을 보고 들려 주시는 것을 들을 수 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에게 오늘도 들려주시고 보여주시며 길을 인도하신다. 그것을 볼 수 있는것이 은혜요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