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랑의 원인 (3)
1)누구로 인하여 – 모든 사건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사람이 있다. 필연적인 하나님의 섭리가 있고, 필연적으로 쓰임받은 사람이 있다. 제비를 뽑아 :누가 원인이 되는 사람인가를 찾는 일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다.하나님이 하실 일이다. 사람에 대한 판단과 심판은 하나님의 고유 권한이다.(약4:11-12) 사람에 대한 비방과 판단은 하나님의 권한을 월권하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하나님의 판단과 주목:하나님은 언제나 나와 관계된 남을 주목하시는것이 아니라 나를 주목하시고 나에게 촛점을 맞추고 계신다.(사43:1-2) ‘너를 창조하시고 조성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너를 지명하여 부르셨고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은 모든 인생을 보고 계시지만 그 자녀된 사람에게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사람이 보는것과 하나님이 보시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모든 상황에서 촛점은 항상 나 자신에게 맞추어야 한다.
2)누구로 인하여 -- 하나님이 버린 사람이 있고, 버리지 않은 사람이 있다.(롬1:28)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므로 그 상실한 마음 대로 내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신 사람이 있고, 받으시는 아들마다 징계하시고 채찍질하시는 사람이 있다. 사생자가 아니요 아들이기 때문이다.사랑하시기 떄문에 금보다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 시련과 연단을 허락하시는것이다. 하나님이 귀히 쓰는 그릇,천히 쓰는 그릇:하나님은 그 쓰시는 용도에 따라 사람을 정하신다. 귀히 쓰이기 위해 선택받은 사람이 있고, 천히 쓰이기 위해 선택받은 사람이 있다. 그릇 입장에서는 불공평할지 모르나 절대자 창조주의 고유 권한은 아무도 침해할 수 없다. 단지 선한 용도, 귀한 용도로 쓰임받기에 합당한 그릇이 되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 연단이 있는것은 쓰임받기 위한 선택이 있다는 증거이다. 연단의 크기는 믿음의 크기와 비례하고, 믿음의 크기는 사명의 크기와 비례한다.
1)무슨 연고로 – 제비로 뽑힌 요나의 구체적인 잘못이 무엇인지 사람들이 묻는다.자기 정체성:생업이 무엇이냐? 요나의 신분을 묻는다. 신분을 묻는것은 하는 일을 묻는것이다. 하나님의 종은 종으로서의 사명이 있다.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고국과 민족을 묻는다. 소속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소속의 일원은 소속이 요구하는 삶의 규범과 기준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에 속했다면 하나님 나라의 법과 규범과 기준에 의하여 살아야 한다.어디로 왔으며(어디로 가고 있느냐?):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로서 삶의 방향이 있다.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목적의식이 분명해야 한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이 밝혀졌다.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종은인생의 방향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지금가고 있는 방향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2)무슨 연고로 – 하나님이 요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는 수단과 방법(통로)이 있다. 풍랑: 환경과 상황을 통해 하나님의 의도와, 나 자신의 상태를 보여 주신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 하셨을 뿐만 아니라 배후에서 섭리하고 역사하고 계신다. 참새 한 마리의 생사까지 섭리하고 계심을 친히 말씀하셨다. 남(다른 사람): 요나는 불신자인 선장을 통해 통렬히 추궁당하고 책망 당한다. 발람은 나귀를 통해 책망 당한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면 때로 불신자로부터 변명여지 없는 비난을 받게 되고,비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맛 잃은 소금처럼 길바닥에 버려져 비참하게 밟히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나: 결국에는 나 자신이 깨달아야만 한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깨닫는것은 육신적인 감각기관이나 지성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조명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보내신 보혜사 성령에 의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심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1)어떻게 하여야 –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해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깨달음과 돌이킴: 불신자로부터 깨닫지 못함에 대하여 책망을 듣는것뿐만 아니라 깨달았다면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추궁 당한다. 먼저 깨닫는것이 중요하고 동시에 깨달은 바를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깨달은 것이 위선과 거짓이 되고 만다. 불순종한 자신(요나)을 바다에 던지라고 말한다. 자신을 추궁하고 책망하는 선장과 무리들을 바다에 던지는것이 아니라 나를 바다에 던져야 한다. 남이 회개해야 하는것이 아니라 내가 회개해야 한다. 문제가 생길 떄마다 내 잘못보다 남의 잘못이라는 경향이 많다. 설령 남의 잘못을 고친다 해도 나의 삶의 변화와는 관계가 없다.어디를 가나 항상 남 때문에 힘들다는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남 때문에 내가 힘든 것이 아니라 나 때문에 남이 힘들다는 사실이다.
2)어떻게 하여야 – 나를 바다에 던져야 바다가 잔잔해진다. 깨달았다해도 나를 바다에 던지지 않으면 풍랑은 변함없다.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나를던져야만 풍랑이 잔잔해진다. 나를던지는 방법은 나 스스로 뛰어드는 것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를 던져야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스스로 못박으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못박은 것과 같은 이치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오는 애매한 핍박을 달게 받아야 하고(벧전2:19) 악을 악으로 갚지말고 오른 뺨뿐 아니라 왼뺨까지, 속옷에서 겉옷까지, 오리뿐 아니라 십리까지 가는것이 다른 사람에 의해 던져지는 것이다. 같은 풍랑을 해결하는 방법에 있어 요나와 베드로의 경우 같은 점과 다른 점이 있다. 표면적으로 배를 떠난 것은 같으나 의미와 동기는 다르다.요나의 문제는 불순종이었다. 불순종은 하나님을 버린 것이다. 순종은 나를 버리는것이다. 요나는 나를 버린 것이다. 베드로의 문제는 불신앙이다. 하나님을 의지(믿지)않고 배를 의지했다. 하나님 대신 의지(믿었던)했던 배를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