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무덤의 증거
통쾌한 역전드라마 – 성경은 역전드라마이다. 영생이 주어졌지만 선악과 사건으로 인하여 생명을 상실하고,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졌던 인생이 죽음을 이기고 다시 생명이 회복되어지는 사건이 부활 사건이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패배에서 승리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역전되어 반전이 이루어지는 현상이 성경 전체에 걸쳐 일관되게 반복되고 있다.하나님의 일을 이루실 때에 쓰임받는 사람의 공통점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 미련한 사람, 강한 자가 아닌 약한 사람, 있는 자가 아닌 없는 사람이다. 역사의 주관자인 하나님은 하나님에 의해서 역사가 진행됨을 나타내기에 적합한 사람을 쓰시기 때문이다.
절대 생명의 증거 – 모든 생명체의 숙명은 수명에 제한이 있는것이다. 죽음의 필연성을 피할 수 있는 존재가 없고 죽음의 파괴성을 피할 수 없다. 죽음 앞에서 이유 불문하고 삶이 끝날 수 밖에 없고, 죽음에 의해 생애 동안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 구원받은 사람은 사람의 생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사람이다. 사람의 생명은 죽음을 이기지 못하나 하나님의 생명은 죽음을 이긴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8:11)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끝나고 모든 것이 무효화되는 숙명을 이기고 생명이 영원히 존속하는 사람이 부활하신 예수의 생명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절대 승리의 증거 – 모든 인생은 상대적 존재이다. 약자 앞에서는 강자이나 강자 앞에서는 약자일 수 밖에 없다. 나보다 약한 자도 있지만 나보다 강한 자도 얼마든지 있다. 인생이라는 게임은 일반 스포츠와 다르다. 일반 스포츠는 승률에 의해 승부를 결정하지만 인생은 마지막 승부에 의해 결정된다. 인생에는 절대 승리가 없다. 상대적인 승리가 있을 뿐이다. 승리에 대한 절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원 받은 사람은 절대 승리의 보장이 있는 사람이다. 구원 전에는 상대 능력자였으나 구원 후에는 절대 능력자이다.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자녀들아 너희가 저희를 이기었나니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요일4:4). 하나님은 패배가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사람도 패배할 수 없는 사람이다.
절대 소망의 증거 – 인생을 살면서 걱정 근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절대 절망의 상황이 있기 때문이다.절박한 상황을 아시면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막연한 위로가 아니다. 어두움을 밝히는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영원한 빛이시다. 영원한 빛이요 소망이신 하나님은 구원받은 모든 인생에게 변하지 않는 소망이 되시고 절망을 뛰어넘는 넘치는 소망이 되신다. 부활하신 사건은 영원한 소망, 불변하는 소망이 예수안에 있는 우리에게 있는 소망인 것이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 1:3).
절대 축복의 증거 – 죄로 인하여 저주와 사망 가운데 있는 인생은 이미 모든 것을 상실한 존재이다.죄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다.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는 생명으로부터의 분리요 모든 것의 상실이다. 죄인된 인생은 축복으로부터 분리된 존재다. 축복이 박탈된 인생에게 땅은 엉겅퀴를 내고 가시덤불을 내어 심는 수고와 땀이 헛수고가 되었다. 축복은 심는 수고가 헛되지 않는 것이요 그 이상의 수확이 거두어지는것이다. 인생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사람의 손에 있는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손에 있다.하나님의 손에 있는 모든 것이 허락되는 여부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 있다. 하나님의 축복의 특징은 지속적이며 확대적이며 무한적이다. 하나님의 생명이 나의 안에 회복되는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모든 것이 회복되는 것을 말한다.
절대 가능성의 증거 – 하나님의 사람의 가능성은 인간적인 가능성에 기반을 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능성에 기반을 둔 삶이다. 하나님의 가능성은 인간적인 가능성에 영향을 받지 않으며 인간의 능력, 실력, 조건등에 영향받지 않는다. 인간적으로 비교해서 열등한 입장에 있다해도 열등감을 느낄 필요가 없고 의기소침할 필요가 없으며 당당할 수 있다. 나 자신이 다른 사람에 비해 매우 불리한 자격과 환경조건에 있을지라도 얼마든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4:6-7)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내 안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해야 한다. 담대함으로 자신감으로 충만해야 한다.
예수님을 무덤이 가둘 수 없다 – 원칙적으로 예수님은 무덤에 갇힐 수 없는분이다. 하나님의 사람 역시 무덤에 갇혀 있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실제는 어떤가? 마음이 의심, 낙심, 실망, 절망,불신에 잡혀 있으면 무덤에 갇힌 것과 같다. 믿음이 죽은 상태라고 하면 무덤에 있는 사람이다. 살아 있는 사람도 무덤에서 나오지 않고 계속 무덤에 머물러 있다면 죽은 사람과 무엇이 다른가? 살았다 해도 무덤안에 있다면 죽은 사람과 같다. 마음이 부정적인 생각, 불신앙적인 생각, 육의 생각에 잡혀 있으면 무덤 속에 있는 것이다. 무덤 속에 있는 사람은 오랜 시간을 살았어도 오래 산 의미가 없다. 살아 있는것이 사실이라 해도 죽은 것과 전혀 다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무덤에서 나와야 한다. 불신앙의 무덤, 절망의 무덤, 육의 생각의 무덤에서 나와야 한다. 무덤에서 나와야 살아있는 삶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