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버린자
U턴한 부자 청년 – 본문은 베드로의 질문으로 시작된다. 어느날 한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 영생 얻는 방법에 대하여 질문한다. 재산을 다 처분하여 가난 자에게 나눠주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주님의 명령에 대하여 재산이 많았던 청년은 근심하며 발길을 되돌린다. 이모습을 지켜본 베드로가 예수님께 한 말이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쫓았나이다”이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의 대답이 본문의 말씀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 예수님을 좇는다는 것은 이미 좇고 있던 다른 것을 버려야 하는 전제가 있는 것이다. 기존의 붙잡고 있는 것을 놓지 않고는 다른 것을 잡을 수가 없고, 기존의 좇던 것을 버리지 않고는 다른 것을 따를 수 없다. 집과 형제와 자매, 어미나 아비와 자식, 전토를 버리라는 말씀은 자칫 인간적으로만 생각하면 비인간적이요, 반인륜적인 의미로 이해하기 쉽다. 나의 생명과 같은 재물과 가족을 버린다는 것은 곧 나를 버리는 것이다. 나를 버린 사람만 예수를 소유할 수 있다.예수 소유는 나의 소유 중 어느 일부를 버려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나를 버려야 한다. 나를 버리는 방법은 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누구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이요 재물이다. 그것은 생존의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주를 좇았나이다 –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나에게 합당치 않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는 말씀은 주님께 고정된 삶이요 주님께 붙잡힌 삶을 말한다. 사도바울은 주께 붙잡힌바 된 것을 잡으려고 좇아 간다고 고백했다. 인생은 예수를 좇는 삶 아니면 세상을 좇는 삶이다. 예수를 좇는 삶은 영생을 향한 삶이요 천국을 향한 삶이며 축복을 향한 삶이다. 세상을 좇는 삶은 사망을 좇는 삶이요 지옥을 향한 삶이며 불행을 좇는 삶이다. 예수를 좇는 삶은 때로 실패하는것 같고 어리석은 것 같고 불행한 것 같아도 형통과 행복을 좇은 결과로 나타난다. 그러나 세상을 좇는 삶은 성공한 것 같고 행복한 것 같고 승리한 것 같아도 실패와 불행과 패배를 좇은 결과로 나타난다.
백배나 받되 – 예수을 위해 또 복음을 위해 집과 전토, 가족을 버린 사람은 금세에 있어 백배나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보장과 보증을 말한다.자신의 존재 뿌리가 되는 가족과 생존의 필수 조건인 물질은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버릴 수 없는것을 버리라는 이유는 무엇인가? 육신적 존재의 뿌리가 분명하고 육신의 생명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더 분명한 사실이 있다. 그것이 필수적이지만 그것이 결코 우리의 생존을 보장할 능력이 없다는사실이다. 가족과 물질의 창조주이며 주관자요 주인이신 하나님만이 우리의 생명과 그의 따른 필요를 책임지고 보장하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 아닌 다른 어떤 것도 어떤 존재도 우리의 삶을 책임질 수 없다. 그 첫번 사건이 선악과이다. 마귀의 말을 믿었던 결과는 참담한 것이었다.
핍박을 겸하여 받고(내가 버리는 경우) – 믿음의 대상의 변화와 사랑의 대상의 변화를 말한다. 가족(사람)과 물질을 의지하는 삶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으로의 변화, 믿는대상 의지하는 대상이 바뀐 것이다. 가족(사람)과 물질을 사랑하는 삶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으로의 변화, 사랑하는 대상 귀하게 여기는 대상이 바뀐 것이다. 사람(가족)과 물질에 대한 자세와 기준과 원칙이 달라진 것을 말한다.사람의 기준과 원칙을 버리고 하나님의 기준과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우선순위의 변화, 가치의 변화, 목적의 변화에 따른 갈등과 충돌에 대한 핍박을 각오하고 사람의 기준과 원칙을 버린 것을 사람들은 자기들을 버렸다고 생각하고 핍박하게 된다. 사람을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과 원칙과 상반된 사람의 기준과 원칙을 버린 것이다.
핍박을 겸하여 받고(내가 버림을 당하는 경우) – 단순한 의견 대립이나 반목이 아니라 심한 경우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당할 수도 있다. 초대교회 성도는 물론 믿음의 선조들은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감수했다. 모슬렘권 성도들은 남이 아닌 가족에게 직접 생명을 빼앗기는 참혹한 시련까지 당한다.그들은 기독교 신앙을 가지면 죽음이 기다린다는 것을 알고 예수를 영접한다. 믿음을 갖고 삶의 기준과 가치와 목적이 바뀐 삶을 살기 시작하면 불신 가족의 경우 강한 반발과 심한 경우 원수시하며 가족이냐 예수냐에 대한 선택을 강요 당하게 되고 모든 혜택을 박탈 당할 수도 있다.인본적인 신앙의 가족의 경우, 타협하지 않는 절대 신앙, 신본적 신앙을 고집하게 되면 믿는 가족으로부터 핍박이 온다. 세상과 영합하고 타협하는 세속주의 적당주의 형식주의가 정상적인 신앙이요 타협않는 신앙이 비정상이요, 광신적인 신앙이라고 비난과 핍박이 시작된다. 교회와 가정에서 따돌림 당하는 고난을 당하게 된다.
영적 가족, 육적 가족 – (마12:50) 하루는 예수님의 가족(동생들과 모친)이 칮아 온 일이 있었다. 제자들의 전갈을 받은 주님은 ‘누가 나의 모친이며 동생이냐?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내 모친이요 형제니라’ 고 말씀하신적이 있다. 육신적 가족을 부인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육적 가족이 있고 영적 가족이 있다. 육신적 혈육관계에 의한 가족은 이 땅에서의 시한부적인 임시적 가족이며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영원한 가족 본질적인 가족이 되는것이다. 진정한 가족은 하나님의 영을 공유한 영적 일치 상태의 가족을 말한다. 가족은 한 몸이다. 교회가 주님의 몸이 것과 같이 가족 또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