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의미
생존의 의미 – 살아 있는 것이 원망스러운가? 감사한가? 또는 기쁜가? 괴로운가? 행복한가? 불행한가? 불행하다면 왜 불행하고, 행복하다면 왜 행복한가? 그 이유는 다음 세 가지 중에 있을 것이다. 죽지 못해 사는가? 죽지않기 위해 사는가? 살아야 하는이유 때문에 사는가? 살아 있다는것이 행복하고 기쁘고 감사하다면 분명히 그만한 이유가 있는것이다. 왜 살아야 되는지 삶의 의미를 생존의 가치로 삼는 존재는 사람뿐이다. 다른 피조물은 삶의 의미를 중요시 하지 않는다.사람만 삶의 의미가 생명보다 귀한 가치를 지닌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 갖게 되는 가장 큰 축복은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생명의 가치보다 월등한 생존 의미를 발견하고 그 의미를 위해 살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살아 가면서 부딪히는 모든 상황과 환경속에서 삶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주어진 상황은 분명히 하나님이 부여하신 의미가 있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내 가정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내가 살아 있다는것이 아내를 향해서, 남편을 향해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내가 살아 있다는것이 속한 공동체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 의미는 내 생존의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생존과 약속 – 본문 9절에서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여호수아가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다는 것은 생명을 좇았다는 것이요 생명을 좇은 그에게 하나님은 기업을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약속은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신구약 66권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일점일획의 오차도 없이 이뤄지며 하늘과 땅이 없어져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진다. 그 절대적인 말씀의 약속이 절대 이뤄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죽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절대 성취는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한정된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만 자기 발로 그 약속된 땅을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은 하나님도 죽은 하나님이요, 그의 약속도 죽은 약속이요, 그의 말씀도 죽은 말씀이다. 죽은 사람은 모든 기회가 죽은 것이다. 오직 살아 있는 사람만 기회가 주어져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이시다.(마22:32) 하나님을 비현실적인 하나님, 추상적인 하나님으로 여기면 역시 죽은 하나님과 같다.
생존과 능력 – 본문10절에서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45년 동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광야는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못된다. 광야는 모든 것이 불가능한 절망적인 환경이다. 그러한 상황에서의 생존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생존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지난 45년간의 생존은 전적인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것이었다는 고백은 갈렙만의 고백이 아니다. 생존하고 있는 모든 존재의 고백이다. 인간의 교만은 이 고백의 여부로 확인된다. 하나님으로 부터 비롯된 생명으로 살아가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사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 불신앙이요 교만이다. 스스로 생명을 창조하여 생존하고 있는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45년의 생존 환경이 광야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절대적인 생존 동력이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4:6-7)는 말씀은 언제나 진리다. 어쩔 수 없이 절망적인 상황에 직면해서야 하나님의 능력만이 유일하게 생존을 보장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생존과 가능성 – 본문11절’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하나님에 의해 사는 존재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삶이기 때문에 그가 갖는 가능성은 하나님의 가능성이다. 인간적인 가능성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는 삶이 있고, 그 범주를 뛰어넘는 삶이 있다. 인간의 성공과 실패는 가능성의 한계에 있다. 문제의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한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오히려 문제가 클수록 절망하는것이 아니라 더 큰 희망을 갖게 된다. 큰 문제가 큰 성공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람의 가능성은 하나님의 가능성으로써 문제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모든 문제 앞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고 확신에 찬 삶이 믿음의 사람의 삶이다. 가나안을 정탐한 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가능성을 기반으로한 부류는 가나안의 정복자가 되었으나 인간의 가능성을 기반으로한 부류는 싸워 보지도 못하고 광야에 묻힌다. 상대를 정복하느냐, 상대에게 정복당하느냐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확신여부에 있다.
생존과 승리 – 본문12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 내리이다’ 인생은 전쟁이다. 갈렙을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족속과 적어도 5년이상의 전쟁을 지속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쟁은 승리를 전제로 한다. 패배를 전제로 하는 전쟁은 없다. 무엇이 승리를 보증하는가? 상대보다 우월한 힘이다. 우월한 군사력이 준비된 군대가 승리할 확률이 높은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승리의 확률은 어떤가? 하나님의 사람의 승리의 확률은 하나님의 승리의 확률이다.하나님의 승리의 확률은 100%이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사람은 승리에 대하여 절대적인 확신을 가져야 한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세상에 머무는 동안 치열한 전투를 각오해야 한다. 동시에 반드시 승리의 확신을 가져야 한다. 모든 환난은 필연적인 승리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