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하신 땅 3
연단의 두 가지 상황 – 연단이 진행 될때 전개되는 상황은 항상 나쁜 상황, 힘든 상황, 고통스런 상황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연단은 쉬운 상황보다는 어려운 상황이 대부분이기는 하다. 그러나 연단의 과정은 상대적인 상황이 번갈아 나타난다. 실패할 때가 있는가 하면 성공할 때가 있고, 막힐 때가 있는가 하면 열릴 때도 있고, 배고플 때가 있는가 하면 배부를 때가 있고, 고통스러운 때가 있는가 하면 기쁠 때도 있다. 나쁜 상황만 연단이 아니라 좋은 상황도 연단인 것이다.연단을 받을 때 깨달으면 나쁜 상황도 복이되고 좋은 상황도 복이 되지만 깨닫지 못하면 나쁜 상황은 물론 좋은 상황도 복이 안된다.연단의 목적은 상황 돌파에 있는것이 아니라 상황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과 원하시는 바를 깨닫는 데에 있다. 연단을 받을 때는 나 자신를 위해서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에 촛점을 맞추고, 축복 받을 때는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원하시는가에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
연단의 결과(나에 대한 확인, 하나님에 대한 확인) -- 연단 과정을 통과하고 나면 하나님과 나의 존재에 대하여 확인 되는 것이 있다. 필연적으로 넘어지고 쓰러지고 무너지는 존재가 확인 된다. 모든 피조물이다. 창조주를 제외한 모든 피조물은 필연적으로 무너지는 존재라는 사실이 확인 된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진동 시키셔서 무너지는것들을 전부 무너지게 하시고 무너지지 않고 영존하는 것을 증명하신다. 영존하는것은 하나님과 그의 나라이다. 필연적으로 나(인생)는 무너지는 존재요 하나님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 존재이다. 오직 하나님만 절대 무너지지 아니하는 절대자이시다. 우리가 믿고 의지할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과거에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무엇인가?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이론적으로가 아니라 실제 경험으로 확증할 수 있다.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의 세월을 보냈다면 기본적으로 얻어진 결론이 있어야 한다.
일어나는 사람,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 – 인생 길에는 높낮이가 다른 많은 장애물이 있다.넘어지고 싶어서 넘어지는 사람은 없다. 어쩔 수 없이 넘어지는 것이다. 넘어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일어나는 것이 문제다.성공과 실패는 넘어지지 않는데에 있지 않고 일어서는 데에 있다. (잠24:16)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의인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이요, 악인이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기 때문이다.일어나는 사람과 못일어나는 사람의 차이는 개인적인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에 달려 있다. 개인적으로는 최고 수준의 능력자라 해도 일어나지 못하지만 최저 수준의 능력자라해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반드시 일어난다. 다른 사람이 넘어지느냐 안 넘어지느냐, 일어나느냐 못일어나느냐에 의해 내 인생의 승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일어나느냐 못일어나느냐에 달려 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사람,지키시는 사람 – 시127:1에 보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시지 않으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지키시지 않으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어떤 사람도 세우고 싶지 않고 지키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적당히 한 것이 아니라 사력을 다해서 세우고자 했고 지키고자 했으나 허무하게 무너지고만 것이다. 세우는 수고에 결함이 있고 지키는 수고에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결함이 있는 것이다. 언제든지 당면한 상황의 변화는 사람의 손에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하나님의 손이 상황에 부정적으로 역사하느냐 긍정적으로 역사하느냐는 하나님에 대한 나의 태도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상황을 통해 나의 상태, 하나님과의 관계 상태를 보여 주신다. 상황은 내 능력으로 조정할 수 없다. 철저히 하나님에 의해 조정된다.하나님이 보시는 나의 상태가 나와 관계된 상황의 상태를 결정하게 된다. 하나님 관계가 무너지느냐 안무너지느냐가 중요하다.
연단의 완성 – 40년 광야 연단의 목적은 그의 백성을 철저히 낮추는 데에 있었다.더 이상 낮아질 수없는 위치까지 낮아지게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다. 나 자신의 무너짐과 하나님이 높아짐과는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내가 무너진 만큼 하나님은 높아지는 것이다. 내가 높을 수록 하나님은 낮아진 것이다. 반대로 내가 낮아질수록 하나님은 높아지는 것이다. 내가 완전히 제로 수준까지 낮아지는 것이 목표다. 그래야 하나님이 100%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완전히 통치하시는 수준에 도달했을 때 비로서 하나님의 나라가 된 것이요,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삶은 어떤 상황도 능히 승리할 수 있는 삶이다. 가나안 정복은 광야에서 결정된다. 광야 연단에서 완전히 무너지고 하나님에 의해 완전히 장악될 때 가나안 정복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더불어 일어나 – 더불어 일어나 주시는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신다.일어나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까지 일어나게 할 수 있고, 넘어지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도 넘어지게 할 수 있다.도미노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넘어지는 상황에서 중간에 있던 한 사람이 넘어지지 않는다면 넘어지는 현상을 중단 시킬 수 있다. 나 한사람이 나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는것이다. 하나님은‘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데를 막아서는자’를 찾으신다.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것이다. 골짜기의 수많은 마른 뼈를 살리는 환상을 보여 주시며 택한 민족을 살리는 사명을 에스겔에게 맡기신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하여 택한 백성을 일어나게 하신다. 한사람이 다른 사람을 일어나게 할 수도 넘어지게 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