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하신 땅 4
밟으려면(밟기 위한 전제 조건) – 길을 가기 위해서, 밟기 위해서는 먼저 선행되어야 할 조건이 있다.일어서 있는 상태에 있어야 한다.누워 있는 상태로는 아무리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해도 무용지물이다. 쓰러진 상태는 모든 가능성을 불가능성으로 바꾸어 버린다. 원인이 불가피했고 불가항력적이었고 실수였고 함정이었다해도 정당화(합리화)되지 않는다. 길은 단 하나 시급히 다시 일어나는것 뿐이다.그리고 쓰러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너희 발바닥으로) 인생 길은 각자 가는 것이다. 피를 나눈 관계라 할지라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고 자식이 부모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는것이다. 내 인생 길은 내 발로, 남의 인생 길은 남의 발로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어떠한 어려움과 고통이 따른다해도 본인이 가야 하고, 모든 과정을 감내해야 한다.인생 길을 가면서 겪는 과정은 대동소이하다. 특정한 사람만 특정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니다. 나만 겪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발로 가는 연습과 훈련을 일찍한 사람일 수록 승리와 성공이 빠르게 된다.
두 가지 땅 – (너의 땅, 나의 땅) 내가 밟은 땅은 나의 땅이 되고, 네가 밟은 땅은 너의 땅이 된다. 남이 밟은 땅을 나에게 준다해도 그 땅을 경영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밟는다는 것은 소유뿐만 아니라 관리와 경영까지 포함하는 의미를 갖는다.하나님의 축복도 나의 순종에 의해 나의 복이 된다. 축복받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도움은 받을 수는 있지만 축복 자체는 아니다. 도움을 받는것은 결코 축복이 아니다. 도움을 주는 것이 축복이다. 내가 밟아 얻은 땅을 경영하여 얻는소득으로 나와 이웃을 풍요하게 하는 삶이 축복받은 삶이다. (주신 땅, 밟은 땅) 밟기만 하면 어느 땅이나 나의 땅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이어야만 밟을 때 비로서 나의 땅이 되는 것이다.허락 하시지 않은 땅은 오랜 시간을 밟고 넓은 지역을 밟았어도 헛수고 일 뿐이다. 허락하신 땅 일 때 많은 시간을 밟는데로, 넓은 지역을 밟는데로 헛수고 하지 않는 성공이 된다. 허락하신 땅이냐가 중요하고, 밟았느냐가 중요하고 밟되 얼마나 밟았느냐가 중요하다. 실패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하나님의 허락이 없는 땅에서 수고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수고해야 한다.
세 가지 걸음 -- 억지로 가는 걸음: 가는 방법에 세 가지가 있다. 기어가는 것, 걸어 가는것, 뛰어 가는 것. 억지로 가는 사람의 속도는 어느 방법에 속할까? 가장 빠른 방법일까? 가장 느린 방법일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세는 부지런한 것이지 게으른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신앙의 사람들은 부지런해야 한다. 같은 시간을 보내도 속도에 의해 많은 차이가 나게 된다. 제자리 걸음: 걷지만 전혀 전진이 안되는 걸음이 있다. 제자리 걸음이다. 알면서도 결단하지 못하면 몰라서 못하는것과 같다. 용기가 없거나 두려워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은 과거의 미련도 끊지 못하고 끌려 다니며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전진하려면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자주 넘어지는 걸음: 자주 넘어지는 것도 전진에 결정적인 장애가 된다. 넘어졌다 일어나면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자주 넘어질 수록 다시 시작하다 세월을 다 보내고 만다. 땅이 넓어지는 것은 내 발바닥이 아픈 만큼이다. 많이 밟으면 발이 아프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의 축복과 성공은 고생없이 쉽게 얻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쉽게 얻은 축복없고, 쉽게 얻은 성공없다.
밟는 두 가지 단계 -- <훈련단계> 광야과정은 가나안 정복을 위한 준비과정이요 가나안 전쟁을 위한 훈련과정이다. 광야의 훈련과정이 없이는 가나안 정복은 불가능하다. 광야의 훈련은 가나안 함락을위한 전술과 전략 개발에 있지 않다. 철저한 자아 정복을 위한 훈련이다. 상대를 이기기 위한 훈련이 아니라 나를 이기기 위한 훈련이다. 광야 통과는 상대를 이겨서가 아니라 나를 이겨야 가능하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던 1세대는 광야에서 다 죽고 그 다음 태어난 세대가 가나안에 들어간다. <실전단계> 가나안 과정은 광야에서 자신을 이기는 훈련에 합격한 세대가 주인공이 된다. 광야가 자아를 이기는 과정이었다면 가나안은 환경을 이기는 과정이다. 광야를 통과하고 나서야 비로서 가나안 정복이 시작된다. 광야 끝이 가나안의 시작(출발)이다. 훈련 끝이 승리의 시작이다. 광야에서의 훈련이 무슨 훈련인지 바로 알고 철저히 마스타한 사람만 가나안의 승리자가 된다. 원망과 불평으로 일관했던 백성들은 한 사람도 광야를 벗어나지 못했다. 광야 훈련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광야의 의미를 알고 통과한 사람만 가나안을 정복하게 된다.
말씀따라 밟아야 하는 이유 –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고 복종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나의 힘과 능력으로 정복할 수 있는 땅이 얼마나 되며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얼마나 될까? 분명히 말하건대 지극히 제한일 것이다.나보다 강한 존재가 얼마든지 있으며 문제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밟으라는 가나안 땅은 평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산 넘어 산이요, 거대한 성으로 구축된 요세이며 적군은 거인(아낙자손)이며 정예 병사이다.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이기 때문에 자동으로 밟힐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만 한다.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움직이면 하나님이 함께 움직이시는 것이다.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면 육안으로 보기에는 내(사람)가 밟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밟으시는것이다. 과연 하나님보다 큰 존재, 큰 문제가 있는가? 하나님이 밟으면 밟히지 않을 존재가 있는가? 절대 순종, 절대 복종의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