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고 담대하라
보장있는 인생, 보장없는 인생(너를 당할 자 없으리니) -- 본문 5절 말씀에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구원 받았다는 것은 구원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보장을 받았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구원은 우리에게 영생을 보장하시는 것이요, 영생은현세에서 내세까지를 포함한다. 실제적인 하나님의 보장이 절실한 현장은 내세가 아니라 현세이다. 가나안 정복은 전쟁을 말한다. 전쟁은 가나안 정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인생 자체가 전쟁이다. 생존경쟁을 벗어나 있는 사람은 없다. 평생의 생존이 평생의 경쟁을 전제로 하고 있다.전쟁의 속성은 냉혹하다. 승리 아니면 패배다. 상대를 위해서 승리를 포기하고 패배를 자초하는 사람은 없다. 패배는 생존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에 있어 최대의 적은 사망이다.사망과의 싸움을 이길수 있는 사람은 없다. 구원은 사망을 이기는 것이다. 사망과의 싸움은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싸움이며 이 싸움에서의 승리가 구원이다. 여기에 대한 보장을 받은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이다. 사망이냐 영생이냐의 싸움에서 마귀와 결사적으로 싸워야 한다.
영적 무장(마음을 강하게 담대하게) -- 전쟁에서의 승리는 강한 자의 몫이다. 약한 자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 무장은 두 가지가 있다. 물리적 무장과 정신적(영적 무장)이 있다.하나님의 승리 보장이 실제화 되는 과정이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영적 무장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철저히 나 자신의 순종과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내가 움직일 때 하나님도 움직이신다.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마음이 지배될 때 마음의 상태가 강하고 담대해진다.하나님의 지배가 이루어면 담대함과 평강이 있게 되며 하나님의 지배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두려움과 불안이 지배하게 된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다. 철저히 영적 싸움이다. 성도들의 패배는 육의 싸움으로 알고 육적으로 싸우기 때문이다. 육적인 싸움은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다. 영적으로 패배했다면 최종적이고 궁극적으로 패배한 것이다. 육신적인 것 물리적인 것 모든 것을 잃어도 영적으로 담대함을 잃지 않았다면 반드시 영육간의 총체적인 승리를 얻게 된다. (히10:35)그러므로 담대함을 잃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정복 가능자, 정복 불가능자(맹세한 땅을 얻게 하리라) --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는자는 마음을 정복한 자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정복한 자만이 보이는 영토를 정복할 수 있는 자이다. 하나님이 맹세한 땅을 얻느냐 얻지 못하느냐는 약속하신 땅을 밟느냐 못밟느냐에 달려 있다. 밟느냐 못 밟느냐는 마음이 강하고 담대한 상태냐 두렵고 떨리는 상태냐에 달려 있다. 가나안에 대한 확고한 하나님의 보장이 있어도 나 자신이 밟아야만 내 땅이 된다.(사43:20)'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하며 불이 너를 사르지 못하리라'는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물 가운데로 불 가운데로 서슴없이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물 앞에 섰을 때, 불 앞에 섰을 때 두려움이 엄습하여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서 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가 아니다. 두려움이 나의 마음을 붙잡고 있는한 내발은 움직이지 않게 되어 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불구덩이를 무서워하지 않았고, 사자굴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무섭지 않아야 한다.
말씀을 다 지켜 행하는 자 -- 6절에서 마음의 강하고 담대함과 정복할 땅과의 함수관계를 말했다면 7절에서는 마음의 강하고 담대함이 말씀을 지키는 일과 행하는 일과 연관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오직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라고 강조하는 이유가 말씀을 다 지키게 하기 위해서다.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지리라고 말씀 하셨고 천지가 없어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성경 66권의 말씀 중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이 있는가? 그 말씀 중에 틀린 말씀이 있는가? 그 말씀 중에 실현 불가능한 말씀이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편식 대상도 취사선택 대상도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처음부터 끝까지 진리이며 생명이다. 말씀은 일부가 아닌 전부를 진리로 받아야 하며 일부가 아닌 전부를 지켜야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하나님의 일부 아닌 전 인격적인 관계이다. 부분적인 하나님은 없다. 부분적인 구원도 부분적인 천국도 없다.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은 하나님의 생명 전부와 천국 전부를 주신 것이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 말씀을 방해하는 세력이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방해세력이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부에도 있다. 외부의 방해세력을 이기는 사람은 내부의 방해를 이긴 사람이다. 내부의 방해 세력은 나 자신의 고정 관념(육의 생각)과 자아이다. 자아와의 싸움을 이기지 못하면 외부 세력과의 싸움을 이길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굴복치 아니하는 나의 고정 관념(육적인 사고방식)을 극복해야만 외부의 방해 세력을 이길 수 있다. 자기 생각, 자기 실력을 신뢰하는 자기 중심적인 신앙으로는 환경과 상황을 이길 수 없다. 이길 수없는 상황에 부딪히면 결국 피하게 되고 타협하게 된다. 치우친다는 말의 원래 뜻은 돌아선다는 뜻이다. 나를 이기지 못한 것이 환경을 이기지 못한 근본 원인이 된다. 방해와 장애를 돌파하지 못하면 돌아서는 길 밖에는 없다. 돌아서지 않으면 방해 세력에게 무릎을 꿇어야 한다. 후퇴 아니면 항복이다. 나를 버려야만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지 않는다. 나를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을 버려야 한다. 날마다 자신을 쳐 복종시키고, 날마다 죽는다는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