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방주 I
홍수(심판)필연성와 결과,선포와 시행 -- 인생은 어떻게 살든지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 파종 후에는 추수가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다. 인생을 시작했다면 그 결과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범죄의 만연은 결과를 망각하거나 무시하기 때문이다. 결과를 피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인생을 시작할 때 에덴에서부터 하나님은 기준과 원칙을 제시하셨다. 생사화복의 기준을 먼저 주셨다. 또한 행위에 대한 심판에 대하여 반드시 기회를 주시며 예고 하신다.홍수(심판)의 결과는 산 자와 죽은 자, 망한 자와 흥한 자, 상받은 자와 징계 받은 자를 구별한다. 하나님의 선포는 누구도 막을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불가항력성을 갖고 있다. 선포된 말씀에 대하여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각자의 결과는 달라진다. 회개하고 돌이킨 자는 멸망에서 구원받을 수 있으나 준비하지 않은 자는 멸망받게 될 뿐이다. 하나님의 선포를 무시하는 것이 종말이 가까워진 이 시대와 홍수 시대의 같은 특징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에 대하여 인정하느냐 부정하느냐,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 수용하느냐 거부하느냐의 결과를 각자 거두게 된다.
홍수와 방주의 초월성 -- 노아에게 주어진 홍수의 선포와 방주의 명령은 지식을 초월하는 믿기 어려운 사건이다. 이제까지 홍수를 본 적이 없고 들은 적이 없고 경험한 적이 없다.홍수가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 비가 얼마나 와야 홍수가 되는지 도무지 감이 안 오는 것이다. 사람이이해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상식적 기준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 범위 안에서다. 노아는 지식과 경험으로는 홍수를 가늠할 수 없는 것이다. 방주 역시 그렇다. 하나님이 주신 설계를 보고 기가 막혔을 것이다. 상상이 안 되는 규모였다.당시 상황을 여러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때 바다를 본 경험이 있을 가능성이 희박하고 배에 대한 지식과 경험도 전무했을 가능성이 높다. 방주의 규모를 볼때 평생의 재산을 다하고 평생의 시간을 다해도 감당할 수 없음은 상식적인 일이다. 지식과 경험으로 과연 구원이 가능한가? 과연 영생이 가능한가? 결론은 불가능이다. 따라서 결론은 믿음뿐이다. 단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믿을 것이냐 말 것이냐 뿐이다. 물론 선택 결과는 각자 책임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하나님에 대한 자세와 말씀에 대한 자세) -- (히11:7)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노아가 보인 반응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었다. 경외는 단순히 두려워하고 어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존경을 표시하는 것이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존귀와 영광과 찬송의 대상이시요 어떤 처사도 하나님의 처분은 옳고 선하시며 의로우시다는 뜻이며 하나님은 반드시 뜻하신일과 말씀하신 것은 시행하시며 이루시는 분이시다라는 고백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말씀이 신빙성이 있느냐 없느냐 이해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에 대한 자세 이전에 하나님에 대한 자세다.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떤 관계냐가 말씀에 대한 자세를 결정한다. 사람 관계에서도 신뢰하는 관계에서는 말의 진위보다 그 사람을 보고 믿는다.
현재까지의 결론, 미래에 대한 결단(체험의 필연성) -- 신앙생활은 나와 하나님과의 삶이다. 하나님과의 삶을 지금까지 살아 왔다면 분명히 경험과 체험이 있을 것이다. 체험이 필연적으로 있을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없다면 하나님과 관계가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아 온것이다. 관계가 있었다면 하나님의 존재가 확실한가? 그 분의 말씀이 진실한가? 말씀이 이루어지는가? 사건이 사실이었나? 하나님에 대한 평가와 그의 말씀에 대한 평가가 필연적으로 있게 되어 있다. 앞으로의 삶에서범사에 대한그분의 섭리를 인정할 것인가? 노아는 지금까지의 삶에서 분명히 확신한 바가 있었다는 것이 증명된다.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다. 그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가 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창6:9) 온 세상이 타락하여 더 이상 심판을 미룰수 없는 상황을 성경은 죄악이 관영하고 강포가 가득했다고 표현한다. 죄가 흘러 넘치고 강포가 포화 상태라는 것이다. 노아 한사람과 그의 가족뿐이었다는 사실이 심판 직전의 상태를 잘 말해 주고 있다.
방주의 목적과 설계(누구를 위한 방주냐, 누구의 설계냐) --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자세는 두 가지다. 부정적인 자세와 긍정적인 자세가 있다.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의도에 대한 해석이다. 하나님의 의도에 대한 신뢰와 불신이 존재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의 이해 관계와 연결하여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손해가 되는가 유익이 되는가를 따져 보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이지 과연 우리(인간)의 유익을 위해서이겠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 분명한 사실은 방주를 만들지 않아도 하나님의 생사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선악과를 놓고도 사람은 하나님의 의도를 의심했다. 결과는 분명히 말한다.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우리를 위한 것이지만 방주의 설계는 우리가 아닌 하나님이 하셨다. 인간을 위한 구원의 설계가 인간의 설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설계다. 인생을 인생이 보장할 수 없다. 완전하신 하나님만이 보장하신다. 생명과 축복이 보장된 인생이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복종하는 인생이다. 복종과 순종이 절대 생존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