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원 품군
품군에 대한 부르심과 약속 -- 포도원의 의미는 넓게 말하면 세상이요 좁게 말하면 교회이며 품군 역시 넓게 말하면 모든 사람이요 좁게 말하면 성도이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 스스로의 계획에 의해 태어나는 사람이 없고 세상을 떠날 때도 스스로의 계획에 의해 떠나는 사람이 없다. 교회생활도 스스로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오고 가는 것이다. 천국에 가는 것도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오고 가느냐, 나의 뜻에 의해 오고 가느냐가 먼저 분명해야 한다.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반드시 약속이 전제된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약속의 관계다. 성경66권이 약속이다. 분명한 약속에 의해 결과가 분명한 것이다. 하나님과의 계약은 구원의 계약이요 축복의 계약이다. 구원의 계약은 믿음의 계약이며 축복의 계약은 순종의 계약이다. 이 약속에 의해 필연적인 구원의 결과가 있고 축복의 결과가 있게 된다.
시간의 약속 -- 정해진 약속 시간이 있다. 1절에 '이른 아침' 시간이 나오고,8절에 '저물매'저녁 시간이 나온다. 시작 시간이 정해져 있고 끝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태어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죽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창조때가 있고 종말 때가 있다. 연초가 있고 연말이 있다. 시간은 품군 마음대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 임의로 정하는 것이다. 시간에 대한 결정권이 주인에게 있다. 품군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시간이다. 지금이 무슨 시간인가? 주어진 시간의 의미를 확실히 알아야만 한다. 때에 따라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성공은 기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포착하는데 있다. 시간을 안다는것은 해야할 일과 미리 준비할 일을 안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철저히 계획에 의해 진행하시며 그 계획은 시간적인 스케줄에 의해 진행된다.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시간적 계획을 벗어날 수 없고 그 시간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장소의 약속 -- 포도원에 들어오면 주어지는 장소가 있다. 품군 임의로 가고 싶은 곳에 가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해진 장소가 있다. 일할 장소를 품군이 정하는 것이 아니다. 주인이 정한 시간에 주인이 정한 장소에서 일해야 한다. 하나님이 정하시고 보내신 장소가 있다. 주어진 장소가 마음에 들지 않고 열악할 지라도 우리의 할일은 다른 장소를 찾아보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내신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적응의 문제다. 적응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승리와 성공은 주어진 환경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인내는 믿음의 시간적 형태다. 믿음의 시간적 길이가 인내이다. 승리와 성공은 환경의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대한 적응에 있다. 인내는 그냥 참는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을 말한다. 환경의 극복은 자신의 자아부터 극복해야 가능하다. 장소의 극복은 자기 극복에 의해서 가능하게 된다.
사명의 약속 -- 하나님이 부르셨을 때는 반드시 목적이 있어 부르신 것이다.그 목적이 부름 받은 자에게는 사명이 되는 것이다.사명 역시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말한다. 같은 일도 하나님이 맡기신 일로 받아 들이느냐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냐에 따라 하나님의 일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의 일이 될 수도 있다.내가 원하는 일은 사명이 아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이 사명이다. 사명의 귀중성은 생명의 가치를 뛰어 넘는다.생존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사명이 목적인 사람은 사명이 생명보다 귀중하다. 사명때문에 생명의가치가 정해지는것이다. 생명의 가치를 초월하는 목적을 위해 사는것 자체가 축복이다. 사명만큼 귀한 가치가 없다. 생존에 사명이 달려 있는것이 아니라 사명에 생존이 달려 있는것이다.사명에 대한 기본자세는 죽도록 충성하는 것이다.죽도록 충성한다는것은 사명의 가치를 안다는 것을 말하며 또한 가장 축복된 삶을 사는것이다.
보상의 약속 -- 2절에 보면 '품군들과 한 데나리온씩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 보내고'라는 내용이 나온다. 품군들을 불러서 포도원에 들여 보낼때 정확히 약속을 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분명히 일에 대한 댓가를 약속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보수 자원 봉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원하는 봉사활동이 아니라 주인의 부르심에 의해 왔기 때문에 주인은 댓가에 대한 약속을 확실히 한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반드시 약속이 전제 되어 있다. 하나님은 반드시 보상하시는 분이시다. 반드시 갚으신다. 두 가지 보상이 약속되어 있다. 약속을 지킨 자에 대한 보상과 안 지킨 자에 대한 징계가 약속되어 있다. 믿음의 보상에는 궁원이, 순종의 보상에는 축복이, 십자가 보상에는 부활이,기도 보상에는 응답이 약속되어 있는것이다. '내가 줄 상이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 반드시 각사람이 행한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이시다.
평가의 기준 -- 주인은 시작할 때 약속한 것을 변경없이 지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온자들이 원망하고 주인을 악하게 폄하했다.주인은 당초 약속한 바대로 댓가를 지불했으나 먼저 온자들은 자신들과 나중 온자들을 비교하여 불공평하다고 불평했다. 하나님은 비교 평가하여 상벌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 기준에 의하여 결정하신다. 그 기준은 포도원에 들어 올때나 나갈때나 변함이 없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된다. 인간끼리의 비교 평가는 매우 불공평한 평가이다. 기준이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키도 자기보다 작은 사람과 비교하면 큰 사람이 되고 큰 사람과 비교하면 작은 사람이 된다. 작은 것이 맞는가 큰 것이 맞는가?절대 기준에 의해서만 바른 평가가 가능하다. 주인의 평가가 불공평한 것이 아니라 먼저 온자의 기준이 잘못된 것이다.육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느냐 영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생사화복이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