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일어나
모세가 죽은후 여호수아에게(모세의 사명,여호수아의 사명) -- 모세의 사명은 40년 광야 생활로 끝나고 요단강 건너 가나안 정복의 사명은 여호수아에게 주어진다. 하나님께서 사명을 맡기실 때가 있고 사명을 거두실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간과 과정에 따라 사명을 맡기는 사람이 다르다. 시대마다 지역마다 사명을 감당케 하시는 사람이 다르다. 하나님의 사람은 사명과 생명이 같은 의미를 가진다. 생명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사명을 위해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이 땅에서의 생명의 목적과 가치는 사명에 있다. 모세 인생의 마감은 생명이 끝났기 때문이 아니라 사명이 끝났기 때문이다. 가나안에 들어가기를 소원하는 모세의 요청을 거절하시고 요단 동편 모압 땅에서 그를 데려 가신다.수명이 다된 것이 아니다 사명 끝난 모세를 데려 가신 것이다.신34:7에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이십세나 그눈이 흐리지 아니하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다" 사명이 있는(감당하는) 동안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보호와 공급이 보장된다. 사명자는 하나님이 철저히 책임지신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을 세상이 당할 수 없는 이유이다.
모세의 시종 여호수아 -- 여호수아는 광야 40년 동안 여호와의 종 모세의 시종으로서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과 그 종에게 충성하는 훈련을 철저히 받는다. 충실히 받은 훈련의 결과가 가나안 정탐 때 증명이 된다. 불신앙적이고 부정적인 보고를 듣고 분노하며 대적하는 수많은 무리 앞에서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이 옳은 것과 명령대로 할 것을 담대히 선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수의 부정적인 무리 앞에서 용감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할 것을 선포하는 자세야말로 진정한 믿음의 자세이다. 광야 40년은 모세에게는 사명 감당의 기간이었고 여호수아에게는 연단과 훈련의 기간이었다. 모세의 시종으로 40년간 훈련시켜서 가나안 시대를 준비 시키신 것이다. 주어진 임무에 철저했고, 주어진 명령에 철저했다. 그야말로 '죽도록 충성'했다. 광야에서 죽도록 충성 훈련을 받은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 사명을 훌륭하게 완수한다.하나님은 철저히 훈련받은 사람을 쓰시고 훈련을 충분히 시키신 후에 사명을 맡기신다. 사명은 연단과 시험을 통과한 후에 주어진다.
종의 훈련 -- 종은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주인을 위해 살아야 한다. 품군은 남의 일을 해도 자신의 생계를 위한 일이다. 종은 전적으로 주인을 위해 일한다. 종은 주인의 지시가 합당하든 부당하든 그 타당성을 평가할 권한이 없다. 그대로 할 뿐이다. 주인의 대우가 비인간적이냐 아니냐에 대하여 따질 자격도 권리도 없다. 종은 권리는 없고 의무뿐이며 책임뿐이다. 종은 아무리 잘해도 상급에 해당이 안된다. 당연한 일을 한 것 뿐이다. 잘못하면 책망과 징계를 받을 뿐이지 특별한 보상도 없다. 종은 생존하는 한 무한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종은 상급도 출세도 없다. 모든 일에 당연히 최선을 다해야 한다. 종의 모든 것이 주인의 소유다. 자신의 생명도 자신의 것이 아니다. 인격 자체도 주인의 것이다. 여호수아는 40년 동안 모세를 시종하면서 하나님의 종으로서 어떻게 순종하고 충성하는지를 철저히 배웠다. 많은 일꾼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특별히 택함을 받은 사람이다. 열두 지파 대표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게 것은 하나님의 다양한 시험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사명 감당 자세(1) -- '너는 이제 일어나' 가나안 정복 사명을 맡기신 하나님은 즉시 시작할 것을 명령하신다. 명령은 언제나 즉각적인 행동을 요구한다. 순종은 즉각적인 것을 말하며 지연되는 것은 불순종이다. 대답이 순종이 아니라 행동이 순종이다. 순종은 말이 아닌 행동을 말한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의 시간적 기준은 언제나 현재( 지금)이다. 과거도 미래도 아니다.하나님의 명령에 대하여 내 임의로 내 편의에 따라 시간을 변경하는 것은 순종의 자세가 아니다. 순종은 철저히 시간적 순종을 요구한다. 하나님의 시간에 따라야 한다. 가장 범하기 쉬운 것이 시간 문제다. 우선순위에 있어서 누구의 시간이 우선인가? 즉시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우리 자신 안에 방해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성품적 습관적(게으름, 우유부단, 소심, 두려움) 방해요소와 본능적 방해요소가 있다.(포기하고 싶은 충동,도전을 피하려는 충동,현실에 안주하려는 충동, 책임회피 충동, 복지부동 충동, 행동 기피 충동) 기본적으로 자아 속에 있는 죄의 속성들이 순종을 무의식적으로 방해한다. 나 자신을 이길 수 있는 사람만 순종이 가능한 사람이다.
사명 감당 자세(2) -- 순종하지 못하고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의 딜레마는 순종하고 싶지 않고 믿고 싶지가 않아서가 아니다. 순종한 이후, 믿음을 행동으로 옮긴 이후를 염려해서다. 요단강을 밟았으나 갈라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반석을 쳤으나 물이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여리고를 돌았으나 무너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했으나 그 말씀대로 안되면 어떻게 하나?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는 것은 내가 할 일이요,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다. 하나님이 하실 일이 되고 안되고는 내가 염려할 일이 아니다. 믿음 이후, 순종 이후를 걱정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믿음 이후, 순종 이후는 하나님이 책임지셔야 할 부분이다. 믿지 못하는 인생에게 하나님이 증거를 보여 주시며 말씀하신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 요단 물을 마르게 하사 너희로 건너게 하신 것이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수4:23-24) 하나님은 증거를 통해 그의 말씀을 확증하신다. 사건을 통해 직접 확증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보다 더 확실한 인생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