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일어나 II

Jan 12, 2014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님
구절: 
수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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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일어나(수1:1-6)
이제 너는 일어나(1) --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일어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과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살았느냐 죽었느냐에 있다. 모세는 죽었기 때문에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살아있는 여호수아에게 사명이 주어지는 것이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먼저 일어나야 한다.사명이 끝난 모세를 데려가시고 연단을 통과하며 준비하고 있던 여호수아에게 새로운 사명이 주어진다. 일어날 수 있는 사람만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다. 죽은 사람은 일어날 수 없다.죽은 사람은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 일어나지 못하는 원인은 세 가지다. 죽은 사람, 잠자는 사람, 마비된 사람. 마비된 사람은 두 가지 마비 상태가 있다. 정신적인 마비 상태이다. 이성이 비정상적인 상태로 정상적인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에 있는 경우, 이성이 정상적인 상태이지만 스스로 좌절하고 포기한 상태에 있는 경우가 있다. 육신적인 마비상태가 있다. 정신적으로는 정상적이지만 육체가 마비되어 통제가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이제 너는 일어나(2) -- 일어날 수 있는 경우에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즉시 일어나는 경우와 늦게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일어나는 데 있어 시간적 차이가 있는 것이다. 시간적 차이가 시간적 차이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있다. 시차가 약간의 불이익의 차이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성공과 실패, 승리와 패배를 결정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도시간의, 지역간의,국가간의 경쟁의 주요 변수는 법적 제도적 인프라가 얼마나 친기업적이냐에 있다. 어느 지역(국가)은 인허가에 소요되는 기간이 1주일 정도인 곳도 있고, 어느 곳은 1년씩 걸리는 곳도 있다. 명령을 받았을 때 신속히 착수하는 사람과 늦게 착수하는 사람의 차이는 준비상태에 있다. 이미 일어나 준비하고 있는 사람과 일어나지도 않은 사람과는 비교가 안된다. 일어나 준비하고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한 통제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며, 일어나지도 않은 사람은 자기 통제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다. 연단과 훈련의 결과는 자기통제 능력 배양에 있다.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 스스로를 지키고 남을 깨울 수 있는 사람이다.
일어나야 하는 이유? -- 일어나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구원이 필요한 이유는 멸망 상태에 빠져있기 때문이다.살려야 하는이유도 마찬가지다. 죽어있기 때문이다. 일어나 있지 않은 상태는 두 가지가 있다. 쓰러져 있는 것과 넘어져 있는 것이 있다. 상태는 같지만 원인은 다르다. 쓰러진 것은 스스로의 힘의 부족, 힘의 소진 때문이다. 넘어진 것은 다른 사람이나 다른 요인에 의해 걸려 넘어진 것을 말한다. 장애물이 있었고 방해가 있었다는 것이다. 쓰러진 직접적 원인은 자신에게 있고, 넘어진 원인은 남에게 있다. 원인은 다르지만 결과는 같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넘어진 이유가 넘어진 것을 합리화내지 정당화 시켜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어나는 책임은 언제나 남이 아닌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에덴 동산에서 뱀에게 속아서 선악과를 먹었지만 그 책임은 아담 자신이져야만 했다. 뱀은 뱀대로 정죄를 받지만 먹은 사람도 정죄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죄에 대한 책임 회피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죄의 해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책임 회피문제다. 책임회피가 가능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더불어 일어나 -- (두가지 원인 제공자) 필연적인 연대 관계에 있는 인간 관계에서 고의든지 실수든지 남을 일으켜주는 사람이 있고, 남을 넘어뜨리는 사람이 있게 된다.언제 어디서나 두 종류의 사람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아담의 자녀 중에서도 두 종류의 사람이 있었다. 그 두 종류의 사람이 세대마다 나타나 그 역할을 감당했다. 엘리야 선지자가 있었고 바알 선지자가 있었으며 모세를 도운 아론과 훌과 같은 사람이 있었고 모세를 대적한 얀네와 얌브레같은 사람이 있었다. 같은 밭에 좋은 곡식(알곡)이 있고 가라지가 있다. 좋은 곡식(알곡)은 다른 영혼을 살리는 사명을 감당하고 가라지는 다른 영혼을 파괴하는 역할을 감당한다.(원인제공자의 상태) 일으켜 주는 사람이 축복적인 이유는 좋은 일을 해서이기도 하지만 이미 자신이 일어나 있다는 사실이다. 일어나 있기 때문에 남을 일으켜 줄 수 있는 것이다. 넘어뜨리는 사람의 불행은 자신이 이미 넘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불행한 상태에 있을 뿐만 아니라 남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불행한 영향을 주는 삶과 축복의 영향을 주는 삶이 있다.
여호와의 종, 모세의 시종 -- 여호수아의 직임과 직분을 여호와의 종이라 하지 않고 모세의 시종이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을 섬기는 종의 직분을 감당할때 하나님께서 세운 위임 권위자를 섬기는 삶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고 순종하며 그를 통해 주시는 임무를 감당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하나님께 순종하는지 안하는지는 하나님이 세우신 위임권위자에게 순종하는 여부를 보면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모세를 섬기는 것을 따로 비교할 때, 어느 경우가 더 어렵고 힘들까?하나님을 섬기는것이 어렵다고 말하기 쉬우나 사람을 섬기는것이 더 힘들다. 사람은 완전하지 않고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은 도울일이 없다. 그의 말씀대로만 하면 된다. 그러나 사람은 도울 일이 많다. 부족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실수도 한다. 시험 될 일도 많다. 하나님 때문에 넘어질일은 없지만 사람 때문에는 넘어질 일은 많다. 여호수아는 그 연단을 다 이긴 사람이라는 의미다. 수없이 넘어지고 쓰러졌지만, 동시에 수없이 다시 일어났다는 의미이다. 모세의 종으로서 성공이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성공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