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단을 건너
요단을 건너 (수1:1-4)
요단을 건너 -- 가나안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요단강을 건너야만 한다. 요단강 이편과 저편은 전혀 다른 세계다. 요단강이 가나안과 광야의 경계가 된다. 홍해의 이 편은 애굽이요 저 편은 광야이다. 건넌다는 것은 소속이 달라지는 것을 말한다. 정체성의 변화, 신분의 변화, 국적의 변화를 말한다. 소속이 달라지면 운명이 바뀐다. 미국 국경에 가보면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미국 지역은 부유한 환경임을 볼수 있고, 멕시코 지역에서는 가난한 판잣촌의 풍경을 볼 수 있다. 한반도의 경우 38선 남쪽은 천국이요 북쪽은 지옥이다.소속이 달라지면 운명이 달라지는 이유는 지배자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중요성은 단체나 국가나 마찬가지다. 악한 왕이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은 지옥같은 삶을 살고 선한 왕이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은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십자가를 기준으로 십자가 이전의 삶은 지옥이지만 십자가 이후의 삶은 천국의 삶이다. 문 하나를 가운데 두고 한 편은 천국이요 다른 한 편은 지옥인 것이다. 아브라함을 유프라테스 강 건너로,택한 백성을 홍해 건너로, 또 요단강을 건너게 하사 복된 땅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목적의 이동 -- 구원 받기 전과 받은 후의 삶은 목적에 있어서 달라진다. 구원 전에는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것이 삶의 목적이었지만 구원 후에는 천국적이며 영적인 것이 삶의 목적이 된다. 목적지가 달라지는것이다. 지옥을 향해 가던 인생이 방향을 바꿔 천국을 향해 가는 것이다. 썩어질 것, 땅에 속한 가치를 추구하던 삶에서 썩지 않는 것 하늘에 속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으로 바뀌는 것이다. 비록 땅에 거하고 있지만 땅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이다. 재물을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은 땅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늘에 쌓아 두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하늘에 쌓아 두라는 것이다. 하늘에 쌓아 두라면 하나님께 뺏기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다. 오히려 하나님이 보호해 주신다는 축복의 의도를 알아야 한다. 하늘나라를 목적지로 사는 사람은 세상 중심으로 살지 않고 교회 중심으로 산다. 하늘나라를 소망하는 삶의 현실적 특징은 교회 중심의 삶으로 나타난다.
결정기준의 이동 -- 천국이 목적지가 되고 하늘나라의 시민으로서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삶의 기준에서 차이가 난다. 한국에서 살려면 한국 법을 지켜야 하고 미국에서 살려면 미국법을 지켜야 하는 것과 같이 지키고 있는 삶의 기준을 보면 속한 나라가 어디인지 알 수 있다. 구원 받은 사람은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지만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항상 자기 자신과 자기 생각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 의도와 전혀 관계없이 - 본의 아니게 불이익을 당하는 이유는 착각을 한 경우이다. 지금 있는 곳이 미국이라는 사실을 잊고 한국 기준으로 일을 처리한 것이다. 착각한 사실을 아무리 설명해도 범법 행위가 합법적 행위로 되지 않는다. 판사가 정상을 참작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고 전제하신 주님께서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기의 뜻대로 사는 무리를 향해 결론적으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책망하신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
시간의 이동 --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사43:18-19)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 동안 연단 받은 가장 중요한 이슈는 과거 청산 문제였다. 그들은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원망하며 하는 말은 '애굽이 좋았다. 이제라도 애굽으로 가자'였다. 결국 과거를 벗어나지 못한 그들은 광야를 벗어나지 못하고 광야에 묻히고 말았다. 40년 동안 애굽이라는 과거를 버리지 못하고 갈등했던 사람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과거(애굽)와 결별한 사람과 세대만 가나안에 들어갔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과거로부터 벗어난 사람만 미래를 향해 도전할 수 있고 미래를 정복할 수 있다. 과거에 속한 것은 실패한 기억뿐 아니라 성공한 기억까지 잊어야 한다. 과거에 집착하면 미래로 나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고저 한다면 더더구나 그렇다. 잘나가던 지난 날에 붙잡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숨과 회한의 나날을 보내는 안타까운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과감히 과거라는 밧줄을 끊어 버려야 미래로 배가 출발한다.
건너는 과정은 필수적인 도전이다 -- 광야 과정의 마침표가 요단강 건너기다. 요단강 건너기는 광야 과정의 종료이며 마지막 시험이다. 연단과 훈련의 완료이며 가나안 정복의 자격을 인정받는 것이다. 실패를 극복한 사람에게 성공의 자격이 주어지며 패배를 극복한 사람에게 승리의 자격이 주어진다. 건넌다는 것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고난을 각오하고 도전하는 것을 말한다.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도전하는 사람에게만 미래가 정복되어진다. 홍해에 도전했기 때문에 애굽의 노예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고 광야를 정복할 수 있었다. 요단강에 도전했기 때문에 광야를 벗어나고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풀무불과 사자굴에 도전했기 때문에 바벨론과 메데 파사를 정복할 수 있었다. 갈렙은 헤브론 산성을 도전하여 가나안 정복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승리와 성공은 불쌍한 사람에게 주는 적선과 같은 불로소득이 아니다.비싼 댓가를 지불하고 도전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남이 아닌 내가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