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땅으로
하나님이 주신 땅(지금까지) -- 신앙생활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하나님이 주신 땅을 경험해 본 결과 어떤 결론을 얻었는가? 하나님이 주신 땅으로 간 결과가 있을 것이고 하나님이 주신 땅이 아닌 곳으로 간 결과를 경험했을 것이다. 과연 하나님이 주신 땅은 좋은 땅이었나 아니면 나쁜 땅이었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한 결과 말씀이 틀림없었는가? 과연 말씀대로 이루어졌는가? 경험적으로 확인된 확실한 확증이 중요하다.하나님과 그의 말씀은 가정된 이론이 아니다.실존이요 실제요 사실이다. 그의 말씀대로 실험해 봤다면 틀림없이 확인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이었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는 생각이라"(렘29:11) "하나님이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창2:16-17) 하나님을 경험해 보면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내 자신이 과연 말씀대로 했는가 안 했는가를 정직하게 점검해봐야 한다. 자신을 냉혹하게 평가하는 사람만 미래가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땅(지금부터) --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사55:11)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언약이다. 구약은 초림 예수에 대한 언약이요 신약은 구약의 언약의 실현을 증거하고 동시에 예수의 재림을 약속하고 있다.가장 어리석은 인생이 있다. 거짓을 말하는 사람과 진실을 믿지 않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없다는 사람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그 사람이다.하나님의 언약은 절대성을 가진다. 하나님 스스로 부인할 수도 무효화할 수도 없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불가항력성을 갖고 있다. 지난 날 이것을 확인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절대적인 생명의 삶, 절대적인 형통의 삶, 절대적인 축복의 삶, 절대적인 승리의 삶을 사느냐 아니냐가 결정된다. 선악과의 계약, 방주의 계약, 만나의 계약, 십자가의 계약의 결과는 생명과 사망, 축복과 저주로 극명하게 나뉘어진다. 계약은 환경과 상황의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다. 단지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에 결과가 결정될 뿐이다.
소속(정체성) -- 하나님이 주시는 땅은 어디서부터인가?시작되는 지점이 있고 시점이 있다.하나님이 주시는 땅으로 가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거쳐야할 과정이 있다. 요단강을 건너는 것이다. 요단강을 건너야 주신 땅이 시작된다. 요단강을 건넌 사람은 광야 사람이 아니라 가나안 사람이다.요단강을 경계로 가나안 땅 안과 밖이 나뉜다. 가나안 밖에 있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땅을 밟아도 아무리 오랫동안 밟아도 무효다. 하나님의 약속이 유효한 사람이 있고 무효인 사람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에 소속된 사람이냐 아니냐가 확인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나라 안에 있는 사람에게만 유효하다. 하나님의 나라의 국적을 가진 사람만 하나님의 약속이 유효하다. 광야에 있는 사람은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인지는 모르나 가나안에 있는 사람은 아니다. 조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살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가 신분 문제(국적)이다. 신앙생활에 있어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하는 사항이 영적 신분문제이다. 합법적인 모든 행위가 유효냐 무효냐를 신분의 유효성 여부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방향 -- 요단강을 건넌 후의 관건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방향이냐의 문제에 있다. 소속의 문제는 자격의 유효성을 가리는 것이라고 하면 방향의 문제는 행위의 유효성을 가리는 기준이 된다. 남보다 뛰어난 실력이 있느냐가 성공의 관건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면 남보다 실력이 못한 사람은 다 실패했느냐? 그렇지 않다. 문제는 하나님의 결정이 중요하다. 믿든지 안믿든지 결국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땅으로 가는 사람은 성공이 이미 보장된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땅이 아닌 곳으로 가는 사람은 실력에 관계없이 실패가 예정된 사람이다. 인생의 성공은 스피드에 있지 않고 방향에 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사람만 그의 행위가 유효하게 된다. 하나님 앞에서 그 행위를 옳게 하는자가 복이 있다. 땅의 상태가 성공을 보장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장하는 것이다. 땅의 상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땅의 방향이 중요한 것이다. 탁월한 조건을 가진 환경이라해도 결정적인 요건은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느냐에 있다.
면적 -- 하나님이 주신 땅의 면적이 있고 내가 누리는 땅의 면적이 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의 넓이와 내가 누리는 땅의 넓이는 다르다. 다른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가 원하는 만큼 누리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인색하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인색하기 때문이다. 심기를 인색하게 심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무한한 넓이의 땅을 주실 수 있다. 문제는 내가 얼마나 도전할 수 있으며 얼마나 노력할 수 있는가? 얼마나 희생할 수 있는가? 내가 누리는 면적은 하나님이 주신 면적에 제한받는 것이 아니라 나의 노력에 제한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누리는 땅의 넓이는 내가 구한만큼, 내가 두드린만큼, 내가 밟은만큼, 내 발이 피곤한 만큼이다. 기도한 만큼 응답받고, 순종한 만큼 축복받고, 감사한 만큼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에도 제한받지 않으나 나의 순종에 제한받는다. 나의 삶속에 하나님의 축복의 풍성과 부족은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결정한다. 네입을 넓게 열라고 하셨다. 얼마든지 채우신다는 전제가 주어져 있다. 내 입을 내가 얼마난 열 것인지 내가 결정하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