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있는 사람은 2

Mar 16, 2014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님
구절: 
시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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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있는 사람과 복없는 사람의 차이 -- '복있는 사람'의 원어적 의미는 똑바로 가는 사람을 말한다. 반대로 '복없는 사람'은 비뚤어지게 가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비뚤어지게 가는 사람은 일부러 비뚤게 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은 똑바로 가는것이다. 각각 바른 길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이유는 자기 기준이 바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도중에 비뚤어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비뚤어졌기 때문에 자신은 바르게 가고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비뚤어진 기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1절의 악인과 죄인과 오만한 자는 도중에 잘못되어 타락한 사람이 아니다. 처음부터 악인이었고 죄인이었던 것이다. 악인의 길을 갔기 때문에 악인이 아니고 죄인의 길을 갔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라 악인이기 때문에 악인의 길을 가고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의 길을 가는 것이다.불변의 완전한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 뿐이다.하나님의 말씀의 기준만이 바른 기준이다.

두 가지 법 -- 의인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만을 절대 의의로 생각하지만 의인이 아닌 사람은 다른 법을 지킨다. 하나님의 법이 아닌 다른 법은 사람의 법이며 사단의 법을 말한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사람과 사람의 법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 사람의 법을 지키는 사람은 사람의 법을 절대시하여 하나님의 법을 인정하지 않거나 거부한다. 하나님의 법은 선한 법, 생명의 법, 축복의 법, 감사의 법, 사랑의 법이요, 사람의 법은 결국 악한 법, 죄의 법, 사망의 법, 저주의 법, 불평의 법, 정죄의 법이다. 오직 진리는 하나님의 법(말씀)뿐이다.영적인 기준의 삶은 의인의 삶을 말하고 육적인 기준의 삶은 악인의 삶을 말한다. 영적인 기준과 육적인 기준은 정반대의 기준이며 정반대의 삶을 말한다. 영적인 기준은 생명으로 인도하고 육적인 기준은 사망으로 인도한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삶의 원칙과 기준을 보면 그 사람의 미래를 알 수 있다.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기뻐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 하나님과의 관계는 말씀과의 관계와 일치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은 관계, 즐거운 관계인 사람은 말씀을 기뻐하고 그 말씀대로 산다. 반대로 하나님을 싫어하는 관계는 말씀을 거부하고 순종하지 않는다. 인생은 두 가지이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인생 길을 가는 사람, 싫어하는 인생 길을 가는 사람이 있다. 존재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말씀과의 관계를 결정한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동시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환경과 상황에 의해 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영적 일치, 영적 교통이 가능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 받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이 그 안에 그 안에 거하시는 자가 하나님과 교통이 이루어지는 사람이다.
주야로 묵상하는자 -- 하나님과의 관계는 일반 종교나 세상 비즈니스처럼 필요에 따라 필요하면 찾고 아니면 찾지 않는 이해관계가 아니다. 생명적 혈연적 관계이다. 생명적 관계는 이해관계를 초월하며 상황과 환경이 막지 못하는 관계이다. 주야의 묵상은 주야의 교제를 말하며 주야의 동행을 말한다. 함께사는 사람을 말한다. 하나님과의 동행이 말씀에 의해 사는 삶으로 나타나고 말씀에 의해 사는 삶에 현장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나는 삶인 것이다. 내적인 동행이 외적인 동행으로 나타나며 그에 따라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이 항상 확인되는 삶을 말한다. 24시간 말씀이 마음을 지배하고 24시간 말씀이 행동을 지배하는 삶이 진정한 묵상의 삶이다. 말씀 묵상은 단순한 종교적 명상이 아니다. 말씀의 행동화 현실화 작업이다. 말씀이 마음을 지배해야 하며 인격을 지배해야 한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가 증명되고 나의 믿음이 증명된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 -- 나무가 심겨진 장소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나무가 심겨진 장소가 나무의 미래를 결정한다. 성경은 '물가에 심긴 나무가 있고 사막에 심긴 나무'가 있다고 말한다.(렘17:5-8) 하나님을 의뢰하는 인생은 물가에 심긴 나무요 사람을 의지하는 인생은 사막에 심긴 나무라고 한다. 가뭄이 와도 전혀 해를 받지 않고 변함없이 결실하는 나무는 물가에 심긴 나무이며 가뭄이 오면 생존조차 불가능해지는 나무는 사막에 심긴 나무이다. 같은 장소(시냇가)에 있는 나무라해도 심겨진 상태에 따라 두 종류가 있다. 깊이 잘 심겨진 나무가 있고 들떠 있는 나무가 있다.들떠 있는 나무는 뿌리를 내릴 수 없다. 심겨진 것 같지만 뿌리가 들떠 있어 수분 공급이 원활치 않아 서서히 말라 죽는다. 철저히 뿌리를 내려야 잘 심겨진 나무가 된다. 비가 내리는 우기에는 시냇가에 있는 나무와 사막에 있는 나무가 차이 없지만 비가 오지 않는 계절이나 흉년이 오면 생사가 극명하게 갈린다.

다 형통하리라 -- 형통하되 어떤 장애도 돌파하는 적극적 의미의 형통이 본문의 형통이다. 인생에는 좋은 조건만 만나는 것이 아니다.나쁜 조건도 얼마든지 만난다. 하나님에 의한 형통은 불가능한 조건일때 더욱 돋보인다. 하나님의 형통은 모든 환경과 상황을 초월한다. 어떤 장애도 돌파한다. 시냇가에 심겨졌다는 것은 가뭄이 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통상적으로는 사막에도 비가 온다 전혀 비가 오지 않는 것이 아니다. 어쩌다 오는 비로는 열매를 보장 못한다. 또한 가뭄이 온다면 생존 자체가 어렵게 된다. 하나님을 기뻐하고 그의 말씀을 기뻐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전능하신 하나님이 보장하시는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형통한 일과 형통치 못한 일이 따로 있는것이 아니다. 나 자신이 형통한 존재냐 아니냐에 있다. 환경적 형통을 절대시 하지말라 환경적 형통은 상대적인 문제다. 존재적 형통이 절대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