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도 II

Apr 06, 2014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님
구절: 
고전1: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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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부르심 -- (육체를 따라 지혜있는자가 많지 아니하며 - -)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의 특징에 대하여 지혜있는자가 많지 않고 능한 자가 많지 않으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이 부르시는사람의 기준과 사람이 부르는 사람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은 능력있는 자를 부르지만 하나님은 능력없는자를 부르신다. 사람은 자격있는 자를 부르지만 하나님은 자격없는자를 부르신다. 예수님 공생애 당시, 세리와 창기들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비난에 대해서 인자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셨다.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고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일까? 하나님을 필요로 한다면 있는자보다 없는자이며, 강한 자보다 약한 자일 것이다. 성공한 자보다 실패한 자 일 것이다.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신 이유 역시 다른 민족보다 많아서가 아니라 가장 적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쓰신 사람들은 한결같이 약함을 알고 작은 존재임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의 택하심 -- (그러나 하나님이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 -)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한 자를 택하여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자들을 택하사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없는것들을 택하사 있는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하나님의 불공평한 실수를 만회하기 위한 수단과 방편이 아니다. 또는 없는자편에 서서 있는자와 싸우는 - 부의 균등분배를 촉구하는 사회주의 운동이 아니며, 노동자 편에 서서 노동 착취하는 기업주와 싸우는 노동운동도 아니다. 하류계층을 충동하여 사회변혁을 시도하는 혁명운동도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통한 구원운동, 생명운동, 축복운동이다. 어쩔 수없는 유리한 자와 불리한 자의 불공평이 있다.하나님의 불완전한 섭리가 아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섭리 때문이다. 불리한 것이 반드시 불리한 것이 아니다. 또 유리한 것이 반드시 유리한 것이 아니다. 없는것이 반드시 나쁜 것이냐 그렇지 않다. 또 있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이냐 그렇지 않다. 없는 상황이 축복이 될수가 있고, 있는 상황이 복이 아닐수도 있다.

하나님의 실존과 인간의 실존 발견(하나님 앞에서 자랑치 못하게 하심) -- 하나님은 인간과 격리되어 존재하시지 않고, 철저히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상황 속에 계시고 섭리하신다.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치 못하게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역사하심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인간의 생사화복의 주관자가 사람 자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동시에 인간 스스로의 실존을 발견케 하려 하심이다. 인간의 불행은 스스로를 착각하고 있는데서 시작된다. 흙덩리라는 것을 모르고 전지전능한 존재로 착각하는 교만을 깨뜨리는 작업을 하시는 것이다. 교만이 깨지지 않은한 구원이 불가능하고 하나님의 적대적인 존재로 멸망을 피할 수없기 때문이다. 인간 스스로를 알아야 하고 하나님을 알아야 비로서 구원이 가능해진다. 죄인인 인간의 불가능성을 발견하고 멸망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과정이 구원의 필수과정이다. 이 과정은 단순한 설명과 설득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철저한 성령의 계시와 조명, 그리고 실제 삶의 연단과정이 수반될 때 보다 빠르고 확실한 구원이 이루어진다.

새로운 실존(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 존재의 발견에 의해 존재의 변화가 가능해진다. 구원은 스스로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에 의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전적인 불가능한 멸망의 대상인 죄인임을 깨달은 순간 전적인 자기 부인이 이루어지고 예수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을 영접하게 된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존재로 태어난다. 달라진 상태가 아닌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것이다. 없는자가 있는 자로, 지혜없는 자가 지혜있는자로, 약한 자가 강한 자로 태어나는 것이다. 예수님의 정체성이 나의 정체성으로 예수님의 생명성이 나의 생명성으로, 예수님의 능력성이 나의 능력성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죄인인 나도 함께 못박히고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나도 새로운 나로 부활하는 것이다(롬6:4-5).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너희가 내안에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예수님을 영접한 결과로 구원을 얻은 것을 다른 말로 거듭남으로 중생으로 말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새로 태어남을 말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새롭게 태어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새로운 실존의 목적(자랑하는 자는 주안에서 자랑하라) -- 주 안에서 태어난 존재는 정체성이 예수의 정체성이요 생명이 예수의 생명, 삶의 목적이 예수의 목적이 된다. 전적으로 예수에 의한 삶을 사는 것이다. 나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땅에 소망이 아닌 하늘의 소망을 위해 살며 모든 소유가 나의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소유로 사는 것이다. 그러한 삶은 하나님의 차원의 삶을 말하며 하나님의 모든 것을 누리는 삶을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에 의해 쓰임받는 삶을 살게 된다. 하나님은 철저히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신다. 하나님의 사람은 철저히 하나님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3:17) 하나님을 나타내는 삶의 결론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사하는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다. 감사는 전적인 하나님에 의해 살았다는 것이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이다. 우리는 오직 그분의 은혜로 산다. 그은혜가 아니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감사하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