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믿음이 크도다
예수님이 나가신 곳, 들어가신 곳 -- 예수님이 게네사렛에서 나가시고 그리고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 가셨다. 예수님이 나가시는 곳이 있었고, 들어 가신 곳이 있었다. 예수님을 배척하는 곳에서 나가셨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두로, 시돈으로 들어 가셨다. 세상에는 예수님을 배척하는 무리가 있는가 하면 예수님을 환영하고 영접하는 무리가 있다. 먼 곳에서 찾아온 가나안 여자는 예수님을 <주 다윗의 자손>으로 정확히 불렀다. 예수님에 대한 바른 자세는 예수님을 '주'로 인정하느냐의 여부에 있다.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탁월한 성경 지식과 경건한 생활에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이 누군지 모르고 있었다. 주로 인정하지 않았다.이방인인 가나안 여자는 어떻게 알았는지 예수님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예수님을 주로 모시고 사는 사람과 아닌 사람은 근본적으로 삶이 다른 사람이다. 예수님을 주로 섬기는 삶만이 예수의 구원이 함께하는 삶이다.
예수님의 첫 번째 반응(무시) -- 가나안 여자가 뒤에서 끊임없이 소리 지르는 것을 알면서도 예수님은 전혀 대답하지 않으셨다. 묵묵부답, 아무 말도 없으셨다. 아무 반응 없다는 것은 관심이 없다는 의미일 수 있다. 계속 부르는 소리에 대한 무시는 인격적으로 큰 상처를 주는 시험이 될 수 있다. 상대할 가치가 없는 존재, 존재하지 않는 존재, 반응할 이유가 없는 존재라는 의미가 될 수 있다. 반응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을 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 하였다"(마11:17)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15:8) 강퍅한 인생의 특징이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묵묵부답의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모습을 보여 주시는 것이다. 인간이 손을 펴도 눈을 가리우고 많이 기도할지라도 듣지 않으시는 이유는 인간의 손에 피가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두 번째 반응(무시 + 거절) -- 대답을 촉구하는 제자들의 간청에 대하여 예수님이 대답하신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데로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고 분명한 거절의사를 밝히신다. 이 말씀에는 거절과 함께 무시하는 뜻이 담겨있다. 에수님과는 관계없는 존재요 예수님의 도움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해당 사항이 없는 존재, 관심의 대상이 아닌 존재, 무시하며 거절하는 존재라는 더 큰 상처의 시험의 반응이 두 번째 반응이다. 자격없는 존재인 이유는 "그리스도 밖, 이스라엘 나라밖, 약속과 언약의 외인, 소망의 밖, 하나님의 밖"(엡2:12)에 있는 존재이기 ㅤㄸㅒㅤ문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였던 존재였다. 우리가 어떤 존재였었는지 다시한번 확인 시켜주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앞에까지 와서 절하며 간청한다. 시험이 왔을 때 더 멀어지는 사람이 있고 더 가까이 하는 사람이 있다.
예수님의 세 번째 반응(무시 + 거절 + 모욕) -- 푸대접에도 오히려 더 가까이 와서 간청하는 여자에게 예수님은 한 술 더 떠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지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하신다. 이 말씀에는 무시와 거절에서 더 나아가 모욕하는 뜻이 담겨 있다. 무시와 거절도 참기 어려운 일인데 개라는 모욕은 참을 수 없는 인격 모독이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실 때 상상을 초월하는 단계까지 갈 때가 있다. 세상 사람이 주는 모욕이라해도 참기 쉬운 것이 아닌데 예수님으로부터의 모욕이기에 더욱 힘들수 있다.개라는 표현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사람을 사람이 아닌 짐승으로 대접하는 것은 최악의 대접이며 최악의 모욕일 것이다.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는 주님을 향한 사람들의 모욕이 이같은 모욕이었다. 주님은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 가셨다. 십자가는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것이다. 그렇게 내려가신 주님을 하나님은 가장 높은 곳에 올리셨다.
여자의 반응 --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상상못할 주님의 시험에 대하여 상상못할 여자의 반응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