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기뻐하라 III
항상 기뻐하라(빌4:4-7)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책임 -- '항상 기뻐하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현실을 무시하고 하는 말씀인가? 아니면 현실에 대해 무지해서 하시는 말씀인가? 하나님 자신과 상관없다고 무책임하게 하시는 말씀인가?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을 강요하고 있으신 것이 아니다.하나님이 말씀하실 때는 이미 각오하고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말에 대해 책임질 각오가 되어 있다는 말이다. 사람은 무책임한 말 많이 한다. 하나님은 무책임한 말씀 절대 안하신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책임 지실 전제와 결의를 가지고 하시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확인 시키기 위해 하나님은 과거 사건을 기억하라고 누누히 강조하신다.과거 사건을 통해서 과연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이었는지 진실이었는지 확인 시키신다. 일방적인 자기 생각에 의한 자기 짐작으로 지나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과연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줄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13:5)
네 입을 넓게 열라 -- 염려의 원인은 영적 원인과 혼적 원인이 있다. 인생의 모든 불행은 환경 때문이 아니라 마음 때문이다. 죄로 인하여 파괴된 인격과 성품과 마음이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고 남까지 불행하게 만든다. 환경이 불행의 원인이라면 나쁜 환경에 있는 사람은 반드시 불행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반대로 환경이 좋은 사람은 반드시 행복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마음이 원래의 형태로 회복되어야 한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81:10) 우리는 하나님께 많은 것을 구한다. 구하는 것과 동시에 중요한 준비가 필요하다.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릇이 열려 있어야, 하나님이 채우실수 있다.넓게 여는것은 내가 할 일이며 채우는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다.열되 얼마나 여느냐가 얼마나 채워지느냐를 결정한다. 채우시는 하나님은 무한하시지만 받는 우리의 그릇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무한한 누림이 어려운 것이다. 순종의 크기가 축복의 크기를, 기도의 크기가 응답의 크기를, 믿음의 크기가 능력의 크기를 결정한다. 하나님은 그릇대로 채우신다.
그릇SIZE에 의한 두 가지 결과 -- 같은 상황, 같은 문제라해도 그릇이 크기에 따라 상반된 두 가지 결과가 나타난다. 그릇이 작으면 문제를 감당할 수 없어 그 문제가 염려의 원인이 되고 불행의 원인이 되고 큰 재앙이 된다. 같은 비가 내려도 댐 규모가 작으면 저수 능력 부족으로 비를 감당할 수 없어 홍수를 막을 수가 없게 된다. 그러나 댐 규모가 커서 저수능력이 충분하면 많은 강우량을 감당할 수 있고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용수를 확보할 수 있어 풍부한 수자원을 보유하게 된다. 같은 비가 홍수라는 재앙이 될 수도 있고 풍부한 수자원 확보라는 축복이 될 수도 있는 것은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이 되느냐에 달려있다. 작은 그릇은 결국 환경과 상황이 감당이 안되고 감당이 안되기 때문에 그 환경이 불평과 원망의 대상이 된다. 반대로 큰 그릇은 주어진 환경과 상황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축복이 되고 그 환경이 감사의 대상이 된다. 실패한 이유와 불행의 이유를 환경에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자기라는 그릇의 SIZE에 있음을 깨닫지 못하면 실패와 불행은 끝나지 않는 다.
그릇의 크기와 염려와 기쁨의 관계 -- 나 자신이 그릇이라고 할 때 하나님이 채우시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나의 그릇에 하나님의 능력의 채워질 때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된다. 기쁨 혹은 염려는 단순히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능력의 문제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어떤 상황에서도 성령안에 있으면 기쁨이 넘치는 삶이 가능하다는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기쁨이 단순히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능력이 문제보다 크면 기쁨이 크고 염려는 작을 것이며 능력이 문제보다 작으면 염려가 크고 기쁨은 작을 것이다. 기쁨과 염려는 반비례한다. 능력과 문제와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능력의 문제는 결국 그릇의 크기에 달려 있다. 그릇의 크기는 연단에 의해서 결정된다. 고통스런 연단을 얼마나 받았느냐에 따라 그릇이 달라진다. 그릇은 단순히 성령 체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연단을 거쳐야 한다. 그릇이 만들어질 때 여러가지 과정을 거쳐야 하는것과 같다.
그릇의 넓이(실제 용적) -- 그릇의 크기와 넓이가 같은 의미를 말하는 것 같지만 차이가 있다. 크기는 외형적인 크기만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용적은 실제 담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담을 수 있는 양이 얼마나 되느냐가 실제로 유효한 조건이 된다. 자신을 따르고자 하는 제자들을 향해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를 것을 명령하신 의미가 무엇인가?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자기 뜻, 자기 능력으로 살게 된다. 예수님를 따른다는 것은 그의 뜻과 그의 능력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나를 비워야 하나님으로 채울 수 있다. 나를 비우는 방법은 연단과 시련 밖에 없다. '너를 낮추고 시험하사'(신8:2,3,16)가 연단의 목적이었다. 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는가? 마음이 비워지지 않으면 예수로 채울 수가 없다. 예수에 의하지 않은 신앙생활은 예수와 무관한 신앙생활이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모른다고 하시는 사람들이 바로 이 사람들이다. 마음이 비워진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신다. 자신을 비워 하나님으로 채운 사람은 어떤 상황도 문제가 안되는 삶을 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