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길, 최악의 길

Sep 21, 2014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님
구절: 
룻1:15-18

최선을 추구하지만 최악을 만날 수 있다 -- 유다 베들레헴에 심각한 흉년이 들어 생계가 막연했던 나오미 가정은 모압으로 이주하게 된다. 좋은 여건을 만나면 생활이 윤택해질수 있다는 기대는 빗나가고 만다. 경제적인 문제보다 심각한 불행한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나오미의 남편과 두 아들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시어머니와 두 며느리만 남고 가족을 책임져야할 남자는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누구나 최선을 원하고 추구하지만 최악을 만날 수 있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인생은 기대와 어긋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최선에도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어야 하고 최악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 좋은 상황만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다. 안 좋은 상황도 얼마든지 축복일 수 있다.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관건이다.
어머니를 떠나라 하지 마옵소서(위치를 아는 삶) -- 상황의 좋고 나쁨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주어진 상황과 환경에서 자기의 위치를 아는 것이다. 창조주는 만물에게 고유의 위치를 정해 주셨다. 위치가 근본적으로 존폐를 결정한다. 위치는 존재를 결정한다. 위치는 인위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위치와 자녀의 위치를 바꿀 수 없고 하나님과 피조물의 위치를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위치를 정해 주신 분이 있고 위치를 알고 지켜야 할 존재가 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임의로 지정하거나 해제되는 것이 아니다. 신앙생활의 성공이나 사회생할의 성공이 동일한 요소가 있다. 각자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지키는 것이다. 룻은 주어진 위치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지키고자 했다. 순조로운 상황보다 힘겨운 상황이 더 어렵다. 협조하는 사람없이 홀로 지켜야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욱 귀한 것이다.
어머니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방향을 아는 삶) -- 방향을 아는 삶은 목표가 있는 삶이다. 목표는 방향을 정해주는 기준이 된다. 인생은 방향이 분명해야 한다. 방향이 분명한 사람이 상황과 환경을 초월하여 극복할 수 있다. 방향이 불분명하면 상황에 따라 방향이 계속 바뀌게 된다. 방향이 끊임없이 바뀌면 방황이 된다. 방황은 아무리 많은 시간과 힘을 다해도 헛수고일 뿐이다. 일생을 탕진하고 허망한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방향이 분명하면 시간이 소요된 만큼 노력한 만큼 성과가 있고 성취가 있게 된다. 빨리 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정확한 방향이다. 룻은 방향이 확실한 사람 이었다. 방향이 잘못되면 빨리 갈수록 빨리 실패한다. 방향의 정확성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지시에 있다. 순종이 중요한 이유가 그것이다. 순종에 의해서만 내 인생의 방향을 정확히 할수 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가치를 아는 삶) -- 가치를 알고 가치를 위해 사는존재는 사람뿐이다.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만 가치를 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은 어머니를 존귀히 여기고 어머니의 삶의 목적과 어머니가 섬기시는 하나님을 존귀히 여긴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부모님을 존귀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는 것이다. 생명의 가치보다 존귀한 것은 없다. 부모님은 나에게 육신의 생명을 주신 분이요.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을 주신 분이다. 생명을 주신 분보다 귀한 것은 없다.생명의 존귀함이 부모님의 존귀함이요 하나님의 존귀함이다. 부모님을 존귀히 여기고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는 삶을 사는 사람이 존귀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어머니 죽으시는 곳에 나도 죽어(사명을 아는삶) -- 생존을 위해 사는 존재가 있고 사명을 위해 사는 존재가 있다. 비인격적인 피조물은 생존 자체가 목적이지만 인격을 가진 피조물은 생존 이상의 목적을 위해 산다. 생명보다 귀한 목적을 사명이라고 한다. 가정의 일원으로써 가정에서의 사명이 있고, 교회의 일원으로써 교회를 위한 사명이 있고, 국가의 일원으로써 국가를 위한 사명이 있다. 사명은 거창한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정에서 감당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교회에서 주어진 사명도 사회의 사명도 아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이해관계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명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어머니가 죽으시는 날까지, 죽으시는 곳에서 죽는 날까지 사명을 감당하고자 했던 룻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사명자의 모습이다.
희생시키는 삶, 희생하는 삶 -- 고의적으로 또는 실수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삶을 사는 사람이 있고, 남의 잘못으로 인한 피해를 당하고 사는 사람이 있다.남이 희생한 혜택을 입지 않은 사람이 없다. 어머니의 희생의 댓가로 자녀의 생존이 가능했고 전쟁에서 죽어간 많은 병사들의 희생으로 백성들이 평화를 누리는 것이다. 남의 희생의 은혜를 입지 않고 살수 없는 인생은 동시에 남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주님을 따르는 삶은 십자가를 지는 삶이다. 십자가를 외면하면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은 분명히 남을 위한 것이지만 십자가를 짊어졌을 때 확실히 경험하는 것이 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직접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축복된 삶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특별한 은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