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3 (용서의 이유)

Mar 01, 2015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마6: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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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마6:9-13) 용서의 이유 --(은혜의 크기)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해야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의무이다. 아니면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해야 한다. 우리가 용서받기 전에는 선택사항이었다. 그러나 용서받은 후에는 의무사항이 되었다. 우리가 남을 용서하지 않으면 나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는 자동무효가 된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용서해야할 타인의 죄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아야 할 나의 죄는 비교가 안 된다. 나의 죄 값 이 만달란트 라면 남의 죄값은 백데나리온이다.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는 가히 가늠이 안되는 크기의 은혜이다. 남들이 나에게 잘못한 것은 아무리 큰 잘못이라해도 비교가 안되는 지극히 작은 것이다. 만달란트는 60억 달러요, 백데나리온은 만 달러다. 백데나리온을 용서하는 사람은 만달란트의 용서를 받은 사람이요, 백데나리온을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만달란트를 탕감받지 않은 사람이다.아니면 만달란트 탕감을 거부하는 사람이다. 용서의 이유 -- (죄의 크기)인간이 태생적으로 죄인이라는 증거의 하나가 남을 비판하는 것이다. 자신도 불완전하고 흠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남 비판하기를 서슴치 않는 것이 죄악 중에 태어난 증거이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7:1-3) 남을 용서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죄의 크기 때문이요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권한에 대한 월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권한을 월권하는 것보다 큰 죄가 없다. 기본적으로 나의 죄와 남의 죄를 비교할 때 성경적 기준으로 남의 죄가 티끌이라면 나의 죄는 대들보이다. 특정한 경우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비판과 판단 자격자는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하나님만이 재판자와 입법자이시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남을 비판할 자격도 권한도 주어지지 않았다. 비판하는 것 자체가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용서의 이유 --(매고 푸는 법칙)'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니' 사람이근본적으로 죄인이 라는 또 하나의 증거가 잘못된 원인이 다 남에게 있다는 책임전가에 있다. 자신의 잘못은 없고 항상 남의 잘못 때문이라고 원망하는 사람은 평생 형통치 못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형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책임전가 습관여부에 있다. 형통한 삶을사는 사람은 남을 원망하지 않는다. 원망의 치명성은 내 인생을 막고 있는 사람이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내 인생을 내가 묶어 놓고 풀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원망하는 것은 끊임없이 묶어 놓는 것이다. 내가 묶어 놓은 것을 남이 묶어 놨다고 원망하며 남이 풀지 않는다고 탓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남의 잘못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도 마찬가지다. 상대의 보상 여부와 관계없이 내가 먼저 풀어야 한다. 내가 풀어야 하나님도 나의 삶을 풀어 주신다. 남이 나에게 푸느냐 안 푸느냐를 보시는것 이 아니라 내가 남에게 푸느냐 안 푸느냐를 보신다. 용서의 이유 -- (심고 거두는 법칙)좋은 나무가 있고 나쁜나무가 있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수 있다. 좋은 열매를 맺은 나무는 좋은 나 무요 나쁜 열매를 맺은 나무는 나쁜 나무다. 열매는 씨가 되고 씨는 열매가 된다. 무엇을 심느냐가 무엇을 거두느냐를 결정한다. 심고 거두는 것은 농부에게만 해당된 것이 아니다. 만물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창조주의 법칙이다.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이 심고 거두는 법칙에서 또 한번 입증된다. 나쁜 것을 심고 좋은 것을 거두려 하기 때문이다. 나쁜 것을 심어 놓고 좋은 것을 심었다고 억지 변명을 하는 것이다. 실패를 심어 놓고 성공을 거두려 하고 재앙을 심어 놓고 복을 거두려 하는 것이다. 피해를 당했기 때문에 보복하는 것을 정당화 하지만 원인에 관계없이 악한 행위는 그 자체가 이미 악한 것을 심은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심게된 원인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심은 것이 무엇이냐이다. 마귀는 이것을 이용해 우리로 하여금 나쁜 것을 심도록 유도한다. 억울하고 분하여 심을 때 나쁜 것을 심게 된다. 여기에 속지 말아야 한다. 왜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을까? 하나님 관계와 사람 관계의 필연적 함수관계 -- 모든 인생은 필연적으로 수직적인 하나님 관계와 수평적인 사람 관계에 의해 살아간다. 두 관계는 분리가 안 된다. 나와 하나님 관계는 나와 다른 사람관계로 입증되고 표현된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야 된다. 하나님에 대한 겸손은 이웃에 대한 겸손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섬김은 이웃에 대한 섬김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지극히 작은자에게 한 것이 주님께 한 것이요 지극히 작은자에게 하지 않은 것이 주님께 하지 않은 것이다.(마25:45) 하나님에 대한 자세와 이웃에 대한 자세가 일치하지 않으면 거짓이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느냐를 보고 나에 대한 결정을 결심 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했느냐를 보시고 결심하시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경우보다 오히려 어려움을 주는 경우가 하나님께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감사와 사랑과 충성은 좋은 상황보다는 어려운 상황에서 그 진실성이 입증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