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의 사명
나귀의 사명 (막11:1-10)
멸시받는 존재 -- 본문의 주인공은 성경 전체의 주인공이 예수님이외에 나귀가 주인공이다. 모든 하나님의 역사에는 반드시 쓰임받는 존재가 있다. 오늘 예루살렘 입성을 위해서는 나귀가 쓰임받는다. 창조하신 만물을 통해 영광을 나타내시며 하나님의 존재를 스스로 증명하시는 섭리에 의해 모든 역사에 피조물을 사용하신다.귀한 존재도 천한 존재도 쓰임 받는다. 오늘 쓰임받은 나귀는 천한 존재이다. 천한 존재가 존귀한 존재를 위해 쓰임 받은 것이다. 존귀한 존재가 천한 존재를 위하여 쓰임받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멸시 천대를 받으시면서 골고다를 향하신 주님의 모습이 나귀의 모습과 흡사하다.
희생하는 존재 -- 나귀의 희생은 선택적 희생이 아닌 선천적 희생이다. 나귀는 태어날 때부터 희생하는 목적을 위해 태어났다. 나귀는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주인을 위해 산다. 일시적인 희생이 아닌 영구적인 희생의 삶을 산다.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입성하시는 예수 님은 자신을 위한 십자가가 아니라 모든 죄인을 위한 십자가를 위한 것이다. 희생하는 나귀는 특별한 보상이 없다. 그의 희생은 하나님 의 부르심이며 계획으로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것이다. 희생은 좋은 대접을 전제하지 않는다. 열악한 생존 환경을 받아들여야 한다. 온갖 고난을 각오해야 한다. 누구도 알아 주지 않는 버림 당함과 멸시와 천대가 기다리고 있다.
이기적인 삶 -- 인간이 이기적인 것은 죄인의 증거 이기도 하다. 이기적이 아니었다면 선악과를 먹지 않았을 것이다. 사단은 인간의 이기 심을 충동해서 죄를 범하도록 유혹했다. 이기심은 자신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게 했고 결과는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이기심의 끝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남을 불행하게 하고 자신을 멸망시킨다. 뛰어난 재주, 뛰어난 실력을 갖춘 사람일 수록 이기적일 때 그 폐해가 크다. 세상의 타락은 극단적 이기심으로 나타나고 결과는 최악의 고통이 된다.(딤후 3:1-5) 혼자만 성공하고 행복하고 흥하겠다는 극단적 이기심은 가장 흉악한 범죄가 되고 세상을 지옥으로 만든다.
이타적인 삶 -- 운명적으로 이타적인 삶을 사는 나귀의 삶은 예수님의 삶과 같다. 예수님은 오직 십자가의 희생을 목적으로 세상에 오셨다. 자신의 목적이 아닌 아버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오셨다. 자신을 모든 사람에게 주시기 위해 오셨다. 희생에 대한 칭송이나 감 사를 요구도 기대도 아니 하셨다. 오히려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다. 희생에 대한 칭송과 치하가 주어지면 희생의 의미가 희석될수도 있다.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군중들은 야유와 조롱을 보냈다. 대신 십자가지시는 주님을 향해 회개와 애통은 커녕 모욕과 멸시와 천대를 아끼지 않았다. 인간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으며 얼마나 악할 수 있는가를 보여 주기 위한 것 같이.
영적 목적 -- 인간은 두 가지 삶의 목적을 위해 산다.영적 목적 혹은 육적 목적을 위해 산다.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영적 목적을 위해 살아 야 하는 상황에 있는 사람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육적 목적을 위해 살게 된다.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당연히 세상보다 하나님의 나라 를 위해 살아야 한다. 사람의 목적보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는 것은 곧 나를 위해 사는 것이다. 나를 위해 살면 나의 목적도 하나님의 목적도 상실하게 되고 하나님을 위해 살면 나의 목적과 하나님이 목적을 다 이루게 된다. 육적 목적은 일시적이고 유한한 것이지만 영적인 목적은 영원하고 무한한 것이다.
육적 목적 -- 어리석은 삶은 육적 목적을 위해 사는 것이다. 썩을 것, 없어질 것, 무가치한 것을 위해 목숨 바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평생의 고생이 한 줌의 흙으로 끝나는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영적 목적의 삶이 영원하고 무한한 가치의 삶이라면 육적 목적의 삶은 순간적이고 유한하고 무가치한 삶이다. 모든 육적 가치는 한 줌의 흙의 가치다. 짐승과 사람의 동일한 운명이 있다. 죽음이 다. 죽음에 의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짐승과 사람에게 차이가 없다. 영적 목적을 위한 사명의 삶은 가치적으로 이미 성공한 삶이며 육적 목적의 삶은 연명을 위한 삶으로서 가치적으로 이미 실패한 삶이다.
자격의 무차별성 -- 두 가지 삶의 목적 중 영적 곧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살때 알아야 할 사항이 있다. 하나님의 목적과 나의 자격과 자세 와의 관계이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살고저 할때 특별히 요구하는 자격이 없다. 자격 제한이 없다는 말이다. 부르시는 대상에 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부족한 자질을 가진 사람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놀라운 은혜이다. 비교할 수 없는 지고의 가치의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살고 자하는 모든 사람에게 전혀 자격을 요구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자격을 요구하지 않는 하나님의 목적은 어떤 자격으로 도 얻을 수 없는 놀라운 축복이다.
자세의 차별성 -- 자격에는 차별이 없으나 자세에는 차별이 있다. 예수님을 모시는 것에는 자격을 요구하지 않지만 모신 후 예수님과 함 께 동행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자세가 요구된다. 절대 허리를 세우면 안 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허리를 굽힌 상태를 유지해야 한 다. 허리를 세우면 예수님은 떨어지고 더 이상 나는 쓰임 받을 수 없고 비참하게 된다. 허리를 끝까지 굽히면 예수님을 계속 모실수 있고 계속 쓰임받고, 영광스런 결과를 맞게 된다. 인간적 자격이 뛰어나도 쓰임받지 못하면 비참한 인생이요 비록 보잘 것 없어도 쓰임받으면 영광스런 인생이다. 하나님의 은혜만이 성공의 길이요 살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