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대답

May 03, 2015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단3: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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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대답(단3:14-18)
답이 있는 사람, 답이 없는 사람 -- 아끼는 마음으로 바벨론 신과 신상에 대한 숭배의기회를 다시 한번 주는 왕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 는 다니엘 세친구의 대답이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이다. 상대방에 대한 무시, 분노의 폭발,선전포고, 자포자기가 아니다.냉정한 판단 기준에 의해 결정된 대답이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서가장 답답한 사람이 있다면 '답이 없는 사람', '대답이 갈팡질팡하는 사람'이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대책이 없는 암담한 인생이다. 반대로 어떤 상황에서도 이미 대답이 준비되어 있는 사람은 미래가 열려있는 사람이다. 활짝 열린 미래냐, 꽉막힌 미래냐는 현재 상황조건에 있지 않고, 미래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느냐에 있다. 인생의 문제는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답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희망이 있느냐 없느냐도 문제유무가 아니라 답의 유무에 있다. 근본적으로 인생문제는 생사 화복의 문제다. 생사화복의 문제의 원인은 하나님에 대한 범죄 때문이다. 죄의 해결에 대한 답이 있어야만 한다. 누구나 이 근본적인 답 이 해결되어야 한다. 여기서부터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확실한 원칙(기준) -- 문제에 대한 확실한 답은 확실한 기준과 원칙에서 나온다. 확실한 공식(원리)을 알수 있으면 답을 알 수 있다. 공식 이 확실치 않으면 확실한 답은 어렵다.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온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있다. 생존대책을 세우기 전에 신앙을 지 키기 위한 원칙과 기준을 먼저 세웠다.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 하리라 하고'(단1:8) 왕의 특별 대 우하는 배려를 거절하는 결과가 어떤가를 잘 알면서 왕의 명령보다 더 절대적인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는 결정을 스스로 재확인하는 것 이다. 세상사람은 수단과 방법을 불문하고 결과적인 생사화복이 중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결과에 앞서 과정이 중요하다. 하나 님의 사람은 자신의 생사화복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하나님의 원칙과 기준이다. 모든 상황에서 나 자신의 흥망성쇠보다 하나님께 서 기뻐하시는 뜻에 합당한가를 중요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원칙과 기준에 의해 사는 사람과 사람의 원칙과 기준에 의해 사는 사람이 있다. 진리를 삶의 기준으로 하는 사람과 비진리를 삶의 기준으로 하는 사람이 있다.

확실한 능력 -- 느부갓네살 왕은 권력의 힘과 무력의 힘을 확신하고 다니엘 세친구에게 우상에게 굴복할 것을 명령한다. 풀무불의 위력 과 왕의 권력의 힘을 과연 누가 이길 수 있겠는가? 바벨론 제국의 힘 앞에 세계가 무릎을 꿇었다. 그래서 다니엘과 세 친구도 포로 신세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조국과 세계를 굴복시킨 바벨론 왕 앞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것을 태우고도 남는 불의 위력 을 겁내지 않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 불의 위력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바벨론 왕의 위력이 막강하다 해도 인위적인 힘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힘은 천하무적의 힘이다. 문제는 이 힘의 강력성이 어느 정도냐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 이 얼마나 확고하냐에 있다. 하나님의 힘의 크기가 문제가 아니라 나의 믿음의 크기가 문제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불확실한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무능하게 만드는 믿음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불확실한 것이 아니라 나의 믿음이 불확실한 것이다. 불구덩이 앞에서 전혀 떨지 않는 다니엘 세 친구의 믿음은 정말 멋지다. 이것처럼 멋진 인생은 없다.

확실한 목적 -- '만일 그럴것이면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와의 손에서도 건 져내시리다.'라고 확고부동한 믿음을 보여준 세 친구는 계속해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죽음에서 건져 주실 것을 확신하지만 죽음을 모면하기 위해서 우상에게 굴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는 것이다. 삶의 목적이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목숨을 위해 사느냐 목숨이상의 것을 위해 사느냐의 문제가 있다. 구원받은 삶은 삶의 목적에서 다르다. 구원 전 에는 목숨을 위해 살았지만 구원 후에는 목숨 이상의 것을 위해 산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산다. 진정한 성공은 목숨 이상의 것을 위해 사는 것을 말한다. 목숨 이하의 것을 위해 살면 성공해도 실패한 것이다. 삶의 목적이 육신적인 것이라면 사람과 짐승 의 차이가 없다.
진짜인생, 가짜인생 -- 구원은 평생에 대한 평가에 의해 결정되는 확률(Score)의 문제가 아니다. 구원은 일생을 살고 끝에 가서 천국인지 지옥인 지 확실해지고 확인되는 것이 아니다. 현재 시점에서 확인이 되는 것이다. 지금 확인 안되는 구원을 어떻게 믿겠는가? 마지막에 가서 확인된다면 천국갈 줄 알았던 사람이 지옥가게 될때 어떻게 할 것인가? 구원은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것이 아니다. '나를 믿는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여행할 때 도착지점을 가봐야 아는가? 출발할 때 아는가? 출발할 때 이미 도착지를 확실히 알고 출발하는 것이다.  GATE에서 도착지가 확인된다. 출발지에서 정확하지 않았다면 도착지가  정확할 수가 없다. 천국갈지 지옥갈지 불확 실한 사람은 틀림없이 지옥간다.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확실치 않은 사람은 불신자와 다를바가 없다. 교회에 나오면 무조건 천국가 는 것이 아니다. 예수 안에 있어야 천국간다. '네가 내 안에 내가 네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러면 이루리라'(요15:7)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삶은 진짜가 아니다.지금 확인 안 되는 구원은 가짜다.지금 확인되어야 진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