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청을 칠하라 I
역청을 칠하라(창6:14)
틈의 결과 -- 방주는 바다에 있어야 한다. 배가 있어야 할 곳은 육지가 아니라 바다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은 주어진 임무를 위해 있어야 할 곳이 정해져 있다. 홍수 가운데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방주는 바다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교회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죽음도 슬픔도 고통도 없는 천국이 아니라 죄악의 홍수가 범람하는 이 세상이다. 하나님의 방주 명령의 첫마디에서 중요한 두 가지 지시가 있다. 잣나무로 만들고 반드시 안팎을 역청으로 칠하라는 것이다. 모든 과정이 완벽해도 마지막 역청을 칠하지 않으면 모든 과정의 완벽함이 헛수고가 된다. 방주의 침몰의 원인이 되는 침수는 틈새의 크기가 크냐 작으냐가 아니라 틈새가 있느냐 없느냐 에 달려있다. 작은 틈은 천천히 침몰하고 큰 틈은 빨리 침몰하게 하는 차이가 있을뿐 크든지 작든지 침몰은 마찬가지다. 틈새가 발생하는 원인이 실수일수도 고의적일수도 있으나 발생원인을 정당화해도 침몰이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다.
틈의 원인 -- (행위의 불완전성) 훌륭한 재목이라해도 재목의 성능을 결정하는 것은 사용하는 사람의 기술과 실력이다. 용도에 맞추어 다듬어진 재목들을 정밀하게 연결하는 작업을 마친 후에 최종적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공정이 틈을 막는 작업이다. 마지막 틈을 막는 공정이 필수적인 이유는 100% 완벽한 재목 가공이 불가능하고 100% 완벽한 조립 작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틈을 얼마나 최소화할 수 있느냐와의 씨름이다. 틈을 완전히 없앨수 없는 근본 원인이 인간의 불완전성 때문이다.(존재의 불완전성)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죄인의 행위는 아무리 완벽해도 죄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존재 의 변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행위의 변화가 가능하다. 존재적인 구원이 이루어져야 행위의 구원이 이루어진다. 먼저 복된 존재가 되어야 행위가 복된 행동이 되는 것이다.
틈의 상태 -- 하나님의 일이 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착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일에 충실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문제가 없고 당연히 기뻐하실 것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일에 대한 기본 자세는 성실과 충성이다. 그것이 다가 아니라 일의 원인이 되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떤 상태에 있느냐는 것이다. 그야말로 죽도록 충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른다'고 하시는 경우가 있다. (마7:21-23) 모든 상황 속에서 항상 점검해야 할 일이 있다. 일에 앞서 하나님 관계를 확인하는 것이다. 하 나님께서 중요시하시는 것은 내가 하고 일보다 나 자신이다. 역청을 발라야 할 틈의 정체가 무엇인가? 하나님과 인간 관계에 틈(간격)이 생긴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이 분리상태가 죄이다. 하나님관계가 파괴된 인간은 삶 전체가 파괴된 것이다. 방주의 일부의 균열이 전체의 침몰의 원인이 되는 것과 같다. 하나님과 인간관계의 균열(죄)이 인류전체를 침몰시킨다.
틈의 대책 -- 역청의 원래 뜻은 '몸값, 속전, 희생제물'이다. 그리고 칠하라의 뜻 역시'속죄, 화해, 덮다'이다. 하나님은 방주사건 속에서도 정확하게 인류 구원의 비밀을 숨겨 놓으셨다. 방주의 재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가 흘리신 보혈의 속죄능력을 예고하셨다.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에게 짐승의 가죽을 입히시고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하셔서 죄를 덮어주신 구원의 비밀이 이미 반복해서 계시되었다. 방주 건조 작업이 아무리 완벽했어도 틈은 반드시 있다. 역청을 바르는 작업을 결코 생략할 수가 없다. 인간이 아 무리 선하고 의롭게 살아도 죄가 없거나 없앨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의인은 하나도 없다. 십자가 보혈을 덮지 않고는 죄를 해결할 방도가 없다. 역청을 바르라고 지시하시는 것은 틈이 있음을 지적하시는 것이다. 예수를 믿으라는 것은 죄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시는 것이다. 그 죄를 해결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틈을 만드는 자, 틈을 막는 자--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 문제로 아담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균열을 만든 자가 있다. 마귀이다. 같은 선악과 를 가지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밀착시킬수도 있고, 분리시킬수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강요하시지 않고 선택의 자유를 주셨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가지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선택을 할수도 있고 지키지 않는 선택을 할수도 있다. 주신 자유를 가지고 역청을 칠할수도 있고, 역청을 칠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수도 있고 불순종할 수도 있다. 하나님을 떠날수도 있고 하나님과 밀착된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깝게 하도록 영향을 주는 예수님이 있고, 그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마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