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같은 교회
방주같은 교회(창6:13-22)
과거의 말씀과 미래의 말씀 -- 시제를 기준으로 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과거에 관한 말씀과 미래에 관한 말씀으로 나눌 수 있다. 오늘 방주에 관한 말씀은 미래에 대한 말씀이다. 미래를 위해 사는 존재는 사람뿐이다. 미래는 유한한 미래가 있고 영원한 미래가 있다. 사람 이 미래를 위해 살지만 유한한 미래를 위해 사는 사람과 영원한 미래를 위해 사는 사람이 있다. 미래를 사는 인간이 가진 딜레마가 있다. 미래가 인간의 소관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현재도 그렇고 삶 전체도 그렇다. 육신만을 사는 삶은 유한한 미래를 사는 사람이며 영혼을 위해 사는 삶은 영원한 미래를 사는 사람이다. 문제는 육신만을 위해 살든 영혼을 위해 살든 인간은 영원한 미래를 살게 된다는 것이다. 육신의 유한한 시간이 끝나면 영혼의 영원한 시간이 시작된다. 천국에서 아니면 지옥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
미래에 대한 준비 -- 미래를 위해 산다면 당연히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무엇을 준비하는가를 보면 어떤 미래를 준비하는가를 알 수 있다. 육신적인 것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고, 영적인 것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 육신적인 것을 준비하는 사람은 유한한 미래를 준비하 는 사람이며 영적인 것을 준비하는 사람은 영원한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다. 홍수의 경고를 받고 방주를 준비하는 노아는 유한한 미래 를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홍수 이후의 영원한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다. 말씀대로 영원한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미래를 보장하실 뿐만 아니라 현재를 축복하시어 미래의 준비를 형통케 하신다. 미래를 주관 하시는 하나님께서 현재 주어진 사명을 감 당하는 사람에게 축복으로 보증하신다.
끝의 원인 -- 끝날이 다가 왔음을 미리 알수 있는 사람이 있고 가르쳐 주시지 않는 사람이 있다. 끝날은 심판의 날이다. 심판이 있게 되는 원인은 무엇인가? 본문에 '강포가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이르렀다'고 말씀하신다. '강포'의 원어적 의미는 '찢다'이다. 죄의 본질이 '찢는 것'이다.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찢은 것이 죄의 시작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찢고 말씀에 대한 순종을 찢으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찢은 것이 인간에게 사망을 안겨준 것이 죄의 본질이다. '끝'의 원어적 의미는 '잘라내다'이다. 강포가 인간이 한 일이라면 끝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찢은 인간을 하나님의 생명에서 잘라내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잘라내고 하나님의 은혜에서 잘라내고 하나님의 축복에서 잘라내어 지옥으로 던지시는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끝의 결과 -- 홍수는 심판을 의미한다. 심판의 특성은 부분적이지 않고 전면적이며, 불가항력적이며 예외가 없다는 것이다. 본문의 하나님의 지적은 노아와 그 가족(8명)외에는 한사람도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방주 안에 들어감을 허락받은 자 외에는 단 하나라도 예외없이 완전히 멸망한다는 것이다. 방주 밖에 있는 자는 완전 멸망이며 방주 안에 있는 자는 완전 구원(보호)이다. 하나님의 심판도 절대적이며 하나님의 구원도 절대적이다. 하나님께서 실수로 천국 대상자와 지옥 대상자를 혼동하시는 일은 절대 불가능한 것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은 자에 대한 심판이 절대적이라면 믿은자에 대한 구원도 절대적이다. 방주의 크기는 노아 가족외에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의 대표가 승선하고도 남는 크기였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전세계적이라는 의미이다.
홍수(심판)의 시작 시점 -- 방주가 완성된 후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노아의 가족과 각 생물의 대표가 방주 안으로 들어간다. 다 들어간 것 을 확인하신 하나님은 방주의 문을 친히 닫으신다. 부자가 지옥에서 천국에 있는 나사로를 향해서 물 한방울만이라도 혀를 적셔 달라고 사정할때 그리로 갈수도 올수도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장면이 눅16:36에 나온다. 하나님께서 방주의 문을 닫으신후 나올수도 들어갈 수도 없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천국의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권한이 없는 것이다. 홍수의 시작 시점은 방주문이 닫힌 후였다. 방주문이 닫히기 전에 홍수가 시작되었다면 노아 가족외에 더 많은 사람이 들어갔을 지도 모른다. 방주 안에 들어간 사람은 홍수를 보고 들어간 것이 아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은 천국을 보고 들어간 사람이 아니다. 단지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들어간 사람이다.
홍수(심판) 이 후 -- 타락의 극치에 도달한 시대 상황이 심판의 시점이다. 타락의 극치 상황은 믿음의 극치를 증명해주는 상황이 된다. 타락의 끝이 끝까지 지켜진 믿음을 증명하게 된다. 그 끝이 홍수가 쏟아지는 시점이 된다. 홍수는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한 자를 명 확하게 구별한다. 영원한 천국의 삶과 영원한 지옥의 삶을 구분한다. 유한한 시간에 방주를 위해서 살았던 사람은 영원한 천국의 삶으로 옮겨지고 유한한 시간에 방주와는 상관없는 삶을 산 사람은 영원한 고통의 지옥의 삶으로 옮겨진다. 방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증거가 된다. 우리를 향해서는 하나님의 확고한 구원의 증거가 되고, 하나님을 향해서는 우리의 확실한 믿음의 증거가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교회가 바로 이와같은 증거이다. 교회가 구원과 믿음의 현실적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