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품군
Dec 27, 2015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마20:1~7
마지막 품꾼(마20:1-7)
품꾼과 부르심 -- 포도원(집주인) 주인은 '하나님', 품꾼은 '성도', 포도원은 '교회'이다. 하나님의 교회에 나오는 것은 각자의 결정에 의한 것 같으나 실상은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부르시지 않으면 하나님께로 올자가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도 이 세상을 떠나는 것도 인간의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결정에 의한 것이다. 구원받는 것도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약속이 있다. 품꾼들에게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약속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 약속을 하셨다. 구원의 약속과 축복의 약속이다. 믿음의 계약에 의해 구원이 주어지고 순종의 계약에 의해 축복이 주어진다. 선택권이 배제된 노예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의 제시에 대하여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에 의한 계약이다. 이러한 기회를 주신 자체가 은혜이다.
시간의 약속 -- 포도원에 들어오고 나가는 시간이 각자 자율에 맡겨진것이 아니다. 주인의 지시에 의해서 오고 가야 하는 것이다. 비단 포도원뿐만 아니라 인생 자체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오고 가게 되는 것이다. 이세상에 태어나는 것도 이 세상을 떠나는 것도 인간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형통한 삶의 기본적인 자세는 하나님의 시간을 알고 지키느냐에 있다. 성경 속의 모든 사건을 보면 언제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은 시간적 순종부터 가능해야 한다. 시간은 나의 것이 아니라 주인의 것이다. 적어도 포도원에 들어온 이후로는 나의 시간이 아니다. 주어진 시간이 흘러갔다고 해서 일한 것은 아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감당했을 때 일한 댓가가 주어지는 것이다.
장소의 약속 -- 시간 약속과 함께 중요한 것은 장소의 약속이다. 지정된 장소가 있다. 주어진 일을 감당하려면 주어진 장소에 가야 한다. 장소를 벗어나면 시간도 일도 무의미해진다. 인정받는 일과 인정받지 못하는 일의 중요한 기준은 그때 그곳에서 해야할 일을 했느냐에 있다. 위치를 지키지 아니하면 존재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다. 일에 대한 인정여부도 중요하지만 존재 자체에 대하여 인정받지 못한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의 결정적 잘못은 위치를 벗어난 것이었다. 그것은 사단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던 천사가 자기 자리를 떠나 하나님의 위치와 견줄려고 했던 것이 타락의 동기였다. 모든 타락은 위치를 벗어나는 데서 시작된다. 주어진 위치를 알고 지켜야 한다. 위치를 지키는 것은 자기 존재의 존립을 결정하는 것이다. 자기 위치를 지키지 아니하면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사명의 약속 -- 포도원에 들어오면 주어지는 일이 있다. 각자에게 맡겨진 일이 무엇인가를 파악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를 연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맡은일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의식이다. 일반 피조물과 사람이 다른점은 삶의 목적에 있다. 다른 피조물은 생존과 연명이 삶의 목적이지만 사람은 연명이 아닌 사명을 위해 살고 사명으로 인하여 삶의 보람을 느낀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다. 육신의 목숨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살도록 하신 것은 우리에게 더없는 축복인 것이다. 일의 종류가 좋아하는 일일 수도 있고 싫어하는 일일 수도 있다. 사명은 상황에 의해 변경되는 것도 아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일군은 하나님의 보호와 공급의 보장된 복된 삶이다.
보상의 약속 -- 포도원에 들어갈때 주인은 품꾼들에게 하루 품삯을 약속했다. 인생을 살면서 겪는 가장 큰 실망은 사람의 배신이다. 그러나 그 실망은 오히려 하나님을 향하게 하는 이정표가 될수 있다. 하나님은 심는대로 거두게 하시고 심은 만큼 거두게 하신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철저한 보상이 모든 성도의 위로와 기쁨이 되며 선악간에 심판하심이 모든 다툼을 정리하신다. 세상이 공평치 못한 이유가 있다. 악한 영의 훼방이 있지만 본래 사람이 불완전하다는 데 원인이 있다. 누구의 기준에 의한 삶을 사느냐가 중요해진다. 사람마다 자기가 옳다는 생각을 하지만 하나님의 판단이 절대 진리임을 알고 그분의 뜻대로 할때 실망하지 않게 된다. 믿음에는 구원의 보상이 있고, 순종에는 축복의 보상이 있고 기도에는 응답의 보상이 있다.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은 참새 한마리도 챙기신다.
두가지 기회 -- 예수님의 결론은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는 것이다. 주어진 일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자세에 대한 평가다. 먼저 온자는 주인의 처사를 악하게 보았다. 나중 온자를 먼저 온 자신과 동일하게 대우한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차별있게 삯을 지불해야 하는데 차별없이 동일하게 지불한 것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주인에게 불평하는 것이다. 주인이 당초 약속대로 이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온자는 그것을 자기 기준에 의해 틀렸다고 보는 것이다. 자신의 공로를 과소평가한다는 자신의 왜곡된 시각 때문에 결국 그는 그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 버렸다. 나중 된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나중에 왔으나 주인의 삯을 받아들고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단 한 시간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치 품삯을 받은 것이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