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편에 설 것인가?

Feb 27, 2022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왕상 11:36-40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왕상18:36-40)

국가 위기와 신앙 위기 -- 3년의 기근은 아합 왕이 통치하는 이스라엘의 국가 경제에 파탄을 가져왔다. 기근 재앙의 원인은 국가 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신앙의 실패에서 왔다. 신앙의 위기는 여호와 하나님을 배격하고 바알 신을 섬기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선지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고 우상 숭배로 인한 영적 타락이 가속화 되어 급기야는 엘리야 선지자 혼자 남는 상황에 도달하게 되었다. 

신앙 위기는 신앙 대상의 변경 – 엘리야가 아합왕과 바알 종교 지도자에게 도전하는 내용은 누가 진짜 신이냐는 것이다. 여호와가 하나님이냐 바알이 하나님이냐는 것이다. 우상 숭배로 인한 타락이 하나님의 진노의 원인이 되어 기근 재앙이 초래된 것이다. 신앙 타락의 핵심은 믿음의 대상이 바뀌는 것이다. 십계명의 핵심이 우상 숭배 배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이유가 그것이다. 선악과 사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뱀의 말을 받아 들인 것이 죄의 시작이 된 것이다. 

여호와 편에 선 사람, 바알 편에 선 사람, 머뭇 머뭇하는 사람 – 신앙의 세 부류가 있다. 여호와 하나님 편에 서있는 사람이 있고 바알 편에 서있는 사람이 있고 중간에서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사람이 있다. 숫자적 규모로 보면 중간에서 이쪽 저쪽 눈치 보는 부류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이 다수일 경우가 많다. 다수를 차지하는 부류의 사람들의 성향이 모든 집단의 주류를 이룬다는 현상의 위험성이 있다. 

인본주의(다수)와 신본주의(소수) – 중간에서 머뭇 거리는 부류가 종말 시대의 특징을 상징하고 있다. 종말 시대의 신앙은 형식적이고 종교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기독교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계3:20은 말세 교회의 특징을 말해주고 있다. 예수님이 문 밖에 계시는 교회가 말세 교회라는 것이다. 예수 없는 교회, 예수 없는 교인이 주류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교회이며 교인이라고 생각하고 구원받았다고 착각하고 있는 시대가 말세이다.

세가지 혼란과 세가지 증거 – <여호와의 하나님 되심> 엘리야 기도의 세가지 내용이 종말 시대의 영적 기준 세가지의 혼란의 핵심이며 확실한 신앙의 증거가 된다. 바알 숭배가 주류 종교(국교)가 되고 여호와 하나님 신앙이 군소 이단 종교 집단으로 매도 당하는 현실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유일한 신임을 증거하고 증명하기 위해 엘리야가 도전한 사건이 갈멜산 사건이다.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 하나님 되심을 증명해 주기를 간구했다. 신앙의 대상에 대한 혼란의 문제가 있다. 

세가지 혼란과 세가지 증거 -- <내가 주의 종이 됨> 신앙 대상(神)의 혼란에 이어 두번째 혼란은 정체성 혼란이다. 주의 종, 주의 자녀로서의 Identity가 분명해야 한다. 종말 시대의 특징이 정체성 혼란이다. 영적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으면 육신적 정체성은 의미가 없다. 정체성의 혼란은 소속의 혼란을 초래한다. 주의 종이라는 정체성의 증명을 보여주어야 하는 의무가 그리스도인에게 있다. 그것이 빛과 소금의 역할이다. 

세가지 혼란과 세가지 증거 -- <내가 주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 주의 종과 주의 자녀의 현실의 삶에서 매일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 삶의 기본 원칙과 모든 일 처리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대로라는 것이다. 일상 생활에서 분명히 비교되는 것이 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원칙과 기준이 그 사람의 전부를 말해준다. 처음부터 끝까지 상황과 환경에 관계없이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이다. 그것이 증거이며 증명이다. 

두 부류의 인생 – <확실한 인생, 불확실한 인생> 갈멜산에 모인 사람을 세 부류로 분류할 수 있고 다시 두 부류로 분류할 수 있다. 확실한 인생과 불확실한 인생으로 분류된다. 여호와 하나님 편에 서있는 사람과 바알 편에 서있는 사람은 소속이 확실한 사람이고 이쪽도 저쪽도 아닌 머뭇거리는 군중은 불확실한 인생이다. 불확실한 인생에게 확실한 것이 있다. 불행이 확실하고 실패가 확실하고 멸망이 확실한 인생이라는 것이다. 

두 강대 세력의 경쟁 – 인류 역사는 두 강대 세력간의 긴장의 연속이다. 세력 확장으로 인한 불가피한 충돌이 약소국가에게 자기 수하에 소속될 것을 강요하는 상황이 계속 된다는 것이다. 시대마다 어느 세력의 편에 서야 하는가가 국가 생존의 최대 숙제였다. 성경의 분명한 지적은 어느 강대 세력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날 수많은 선지자들이 위정자들에게 전달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그것이었다. 

인생의 결정적 문제 – 어느 편에 서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양자 택일의 문제가 된다. 양자는 하나님과 다른 신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 자신이다. 하나님의 선택을 따르느냐 나의 선택을 따르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의 입장에서 결정하느냐 하나님의 입장에서 결정하느냐. 이것은 신앙 생활 시작부터 마칠 때까지 지속되는 문제이다. 여호수아서의 결론은 나와 내집은 여호와를 섬기리라(수24:15)이며 사사기의 결론은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21:25) 하나님의 기준이냐 나의 기준이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