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함정①

Sep 04, 2022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마7:1-6

 

자기 함정(착각) (마7:1-6)

미혹을 주의 하라- 종말 시대에 대한 경고에서 가장 먼저 하시는 경고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마24:4-5) 미혹은 속이다, 길을 잃게 하다. 빗나가게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마귀가 믿는 자들을 미혹하는 방법은 속여서 길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그 중요한 방법 중에 하나가 남을 비판하게 만드는 것이다. 비판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를 속이는 함정이 되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 

비판을 주의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 – 하나님 관계와 인간 관계 파괴를 가져온다. 비판은 하나님 권위에 대한 월권 내지 대적 행위가 된다. 비판 행위는 유일한 입법자와 재판자이신 하나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월권 행위이기 때문이다.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다. 비판을 많이 할수록 많이 비판 받는 입장이 되고 그런 상황은 많은 사람과의 관계가 파괴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비판을 주의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 – 비판은 문제의 해결의 경우가 될수도 반대로 문제 발생의 원인이 될수도 있다. 남을 비판하는 것으로 인하여 남의 비판을 받게 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된다. 반면에 남을 비판하기 보다 자신의 단점과 결점을 확인하고 파악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된다. 비판이 누구를 향하는가에 따라 문제를 만들기도 하고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는 것이다. 

안되는 사람과 되는 사람의 차이 – 안되는 사람은 안되는 이유가 있고 되는 사람은 되는 이유가 있다. 비판하는 문제도 안되는 이유가 될 수 있고 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안되는 사람의 경우는 남의 눈에 티는 보면서 자신의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남의 문제는 잘 보면서 나의 문제는 보지 못하기 때문에 남의 잘못은 잘 보면서 나의 잘못은 보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안되는 인생을 살게 된다. 

안되는 사람과 되는 사람의 차이 – 되는 사람은 남의 눈의 티보다 나의 눈의 들보를 보고 제거하려 하고 남의 문제보다 나의 문제를 파악하여 대책을 강구하고 남의 잘못보다 나의 잘못을 고치는 데에 집중한다. 남을 고치려 하기 전에 먼저 나를 고치고 남을 판단하기에 앞서 나를 파악하여 부지런히 개선하고 향상 시키는 노력을 계속할 때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착각과 무지 – 착각은 자기를 기만하는 함정이 된다. 남의 단점과 결점을 지적하고 비판하다 보면 나는 단점이 없고 결점이 없는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남의 잘못을 지적하다 보면 나는 잘못이 없고 잘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남의 틀린 것을 지적하다 보면 나는 당연히 옳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남의 죄를 지적하다 보면 나는 죄 없는 의로운 사람으로 착각하게 된다. 18명이 죽은 실로암 망대 붕괴 사고 소식을 말하는 제자들의 심리가 그랬다. 

착각과 무지 – 남의 티를 지적하는 사람이 모르는 것이 있다.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남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이 모르는 것이 있다. 자신의 잘못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남을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이 모르는 것이 있다. 내가 틀린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남의 티를 지적할수록 자신의 들보를 못보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티, 잘못, 틀린 것에 대하여 무지한 상태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비판은 외식하는 자의 특징 – 마23장에서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신랄하게 책망하신다. 심지어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고 하셨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남을 비판하는 일에 철저했다. 예수님을 향해서도 시종일관 비판했다. 외식은 위선자, 사칭하는자, 불신앙자의 뜻을 가지고 있다. 종교 지도자였던 그들은 불신앙자, 믿지 않는 자들이었다. 철저히 거짓 영의 수족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개에게 거룩한 것을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말라 – 개와 돼지에게 거룩한 것과 진주를 주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가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가치를 아느냐 모르느냐는 인간과 짐승의 차이를 말하고 영적 가치를 아느냐 모르느냐는 육적인 사람과 영적인 사람의 차이를 증명한다. 구원은 육적인 사람이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땅의 사람이 하늘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땅에 속한 사람과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나뉜다. 

영이 열렸는가 닫혔는가 – 말씀을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영적 시각, 청각 장애자가 있다. 영적 장애 상태는 악한 영의 방해 때문이다. ‘복음이 가리운 것은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이세상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고후4:3-4) 일생 일대 최대 사건은 복음이 들리느냐 들리지 않느냐의 문제다. 말씀에 인생의 생사화복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