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이어가 필요한 이유 ①

Oct 16, 2022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
구절: 
막 6:35-44

 

오병이어가 필요한 이유 (막6:35-44)

오병이어를 요구한 예수님의 명령 –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한 갈등은 이해가 불가능한 말씀, 해결 불가능한 말씀, 조건에 부적합한 말씀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중요한 전제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명령은 이미 그 말씀과 명령 안에 해답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해가 불가능해도 말씀대로 순종하고 해결이 불가능해도 말씀대로 믿으면 되고 조건이 부적합해도 말씀대로 행동하면 확인된다. 

때가 저물어 가매 –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었던 현장 상황의 표현이다. 그 사건이 있었던 상황은 시간적으로 해가 저무는 상황, 장소는 아무것도 없는 빈들(광야) 이었다. 해지는 상황은 기회가 상실되는 상황, 빈들은 조건이 상실된 상황이다. 

해 저무는 빈 들판 – (원인성) 인생이 해 저무는 빈 들판이 된 것은 에덴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모든 것이 풍성한 무한한 축복과 무한한 생명의 삶이 불순종으로 인하여 축복과 생명이 박탈된 빈 들판의 인생으로 전락한 것이다. 축복의 환경이 저주의 환경으로 생명의 시간이 죽음의 시간으로 바뀐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 있든지 이 운명을 벗어날 사람이 없다. 이것이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구원뿐이다. 

해 저무는 빈 들판 – (연단성) 40년 광야는 말씀 순종과 생존 해결의 함수 관계를 뼈저리게 체험하는 훈련의 현장이었다. 말씀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를 확인하며 순종을 훈련하는 과정이 광야 40년의 기간이었다. 죄성이 잠재하는 인간은 끊임없는 불순종의 본능적 작동을 제어하는 연단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말할 수 없는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셨다는 말씀은 그것을 증명한다. (히5:8-9)

때가 저물어는 가매 (종말)  - 4가지 종말. 시대적인 인류의 종말이 다가온다. 인류의 시작이래 필연적인 역사적 종말이 다가온다. 개인적 인생의 종말이 있다. 출생한 모든 인생은 필연적인 종말이 다가온다. 하루의 종말이 있다. 주어졌던 하루라는 기회가 끝나는 기회적 종말이 있다. 상황적 종말이 있다. 무엇인가 가능한 조건이 주어졌던 상황이 끝나가는 종말이 있다. 조건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 종료 시점이 오는 것이다. 

두 가지 종말(끝) – 불가항력적으로 다가오는 종말(끝)을 거부하거나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중요한 것은 준비한 사람과 준비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시작된 모든 인생에게 있어 놓칠 수 없는 중요한 것이 있다. 끝을 준비하는 것이다. 유한한 시간에 끝을 준비하는 것이 무한한 시간을 위한 준비라는 사실이다. 영원한 기쁨이 될 수 있고 영원한 고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끝이 오기전 현실의 상황이 어떤 상황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준비가 되고 있느냐에 있다. 

제자들의 대책 –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먹게 하소서. 누가 누구를 책임질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제자들이 무리를 보내자는 것은 당연하다. 모든 환경을 총망라하여 각자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가능하지 않다. 인생은 각자 책임질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결과는 불가능하다. 

예수님의 대책 –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은 보내는 것이 아니라 불러서 양식을 주라고 하셨다. 양식을 주라는 말씀 속에는 우리에게 대책을 세우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님이 대책이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모든 명령은 그 속에 답이 있고 대책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제자와 무리의 차이 – 인생의 광야에서 제자와 무리, 모세와 백성들이 있다. 그 중에 제자와 모세의 존재 의미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존재 의미가 생명보다 중요한 것이 짐승과 인간의 차이다. 제자의 존재 의미는 무리들의 양식 해결에 있다고 주님의 명령이 증명한다. 세상 사람은 나의 양식도 남의 양식도 해결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나의 양식도 남의 양식도 해결할 수 있다. 

제자와 무리의 차이 – 단 한가지 절대적인 차이가 있다. 모든 문제 해결의 가능성 여부는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 하나님의 자녀이며 제자인 사람과 하나님과 무관한 사람이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제자들의 방법, 예수님의 방법 – 인간적 방법이냐 하나님의 방법이냐의 차이가 문제 해결이 가능하냐 불가능하냐를 결정한다. 불가능하다는 이유는 문제의 규모 때문이라는 것이 사람의 이유이다. 아니다. 문제는 문제의 규모가 아니라 방법에 있다. 인간의 방법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불가능이 없다. 문제가 아무리 커도 하나님의 방법으로 얼마든지 해결된다. 문제는 문제가 아니라 해결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