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데로 가서 ⑥

Aug 24, 2008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님
구절: 
눅 5:1-11

예수님의 초점, 사람의 초점 -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고기를 잡기 위해 깊은 데로 가라고 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전능하신 예수님이 구태여 깊은 데를 지시하시는 이유를 깨달아야 합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말씀에서 예수님의 초점과 사람의 초점이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얕은 곳에서도 고기를 잡히게 하실 수 있습니다. 장소와 환경에 구애받지 않으시는 분이 깊은 데를 지시하셨을 때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필요한 이유가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입장에서 어렵고 힘든 곳으로 가도록 하시는 주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문제가 쉽게 해결될 때도 있지만 어렵게 해결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렵게 해결되는 이유도 우리를 위해서 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환경적 깊은 곳, 능력적 깊은 곳 - 예수님의 지시는 누구에게나 천편일률적으로 같은 환경의 깊이를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 따라 더 깊은 곳을 요구하실 수도 있고, 더 얕은 곳을 요구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연단은 환경적 깊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능력적 깊이에 있습니다. 사람마다 능력의 한계가 다른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다른 깊이를 요구하시지만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는데, 각자의 능력의 한계까지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적인 목적에 의한 깊은 곳은 인간적 한계에 부딪히는 깊이를 말합니다. 인간적 한계의 깊이가 결국은 자기 스스로를 부인하게 되는 깊이이고, 자기를 부인하는 깊이가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는 깊이가 됩니다. 형식적 구원이 아닌 실질적 구원은 분명한 자기 부인이 이루어지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시인하고, 영접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적인 가능성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비로소 구세주를 향해 마음을 열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깊이, 축복의 깊이 - 구원의 깊이와 축복의 깊이의 다른 점은 구원의 깊이는 깊이의 차이에 의미를 두기보다 깊이의 한계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하면 축복의 깊이는 깊이까지의 거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깊은 곳이든 얕은 곳이든 한계에 부딪히는 깊은 지점이 예수님을 만나는 구원의 문제라고 하면, 구원이후 예수님의 지시에 의해 함께 도전하는 다양한 깊이는 다양한 축복과 형통을 나타냅니다. 적은수고의 대가와 많은 수고의 대가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가까운 곳과 먼 곳, 얕은 곳과 깊은 곳에 대한 수고의 차이는 대가의 차이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충성과 순종을 위해 적게 희생한 사람과 많이 희생한 사람에 대한 상급과 축복이 결코 같을 수가 없습니다. 비용이 적게 드는 가까운 바다는 고기가 많지 않지만, 비용이 많이 드는 먼 바다에는 크고 많은 고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평하게 백배로 축복하셔도 희생(순종)한 정도에 따라 천배, 만 배의 다른 수확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더 멀리, 더 깊이 - 하나님은 환경과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제한 없이 축복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환경과 상황에 대하여 능력에 한계를 가졌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깊은 곳 가본 사람만 갈수 있으며, 갈수 있는 사람도 하루아침에 갈수 있게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단계와 과정을 초월하여 단 한 번에 깊은 곳을 가실 수 있지만, 사람은 많은 과정을 단계적으로 도전하는 훈련을 통해서만 갈 수 있습니다. 인간이 가진 이러한 제약에 대하여 각자가 얼마나 끊임없이 도전하고 연습하느냐가 성공의 크기를 결정하게 됩니다. 도전하는 사람이나 안하는 사람이나, 열심 있는 사람이나 게으른 사람이나 결과가 똑같다면 하나님은 불공평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각자의 연습량에 따라 더 멀리 갈수 있는 인생, 더 깊이 갈수 있는 인생으로 결정됩니다.

고기잡이의 두 가지 관계 - 고기잡이를 위해서 필수적인 두 가지 관계가 있습니다. 멀리가야 하는 수평적 관계가 있고, 깊이 내려가야 하는 수직적 관계가 있습니다. 두 가지 관계가 성공할 때 고기잡이는 성공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필연적인 두 가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수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있고, 수평적으로 사람과의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관계가 성공적이어야 하고, 인간관계가 성공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관계로 인하여 인간관계가 실패하고, 인간관계로 인하여 하나님관계가 실패하는 것은 올바른 신앙자세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인간관계 가운데 축복으로 나타나고, 인간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관계가 영광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이 결국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요,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