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데로 가서⑤ (깊은 곳, 얕은 곳)

Aug 17, 2008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님
구절: 
눅 5:1-11

깊은 곳 얕은 곳 - 하나님의 능력으로라면 구태여 깊은 곳이 아닌 얕은 곳에서도 얼마든지 고기를 잡을 수 있는데 깊은 곳으로 가라고 하실 때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깊은 곳으로 가야하는 이유가 예수님자신 때문입니까? 나(시몬) 때문입니까? 고기잡이에는 두 가지 상식이 필요합니다. 고기를 알아야하고, 바다를 알아야합니다. 바다를 아는 것이 고기보다 더 중요합니다. 고기는 산에 있지 않고 바다에 있기 때문입니다. 업종을 잘 알아야하지만 시장 환경을 잘 알아야합니다. 바다(환경)를 알고자 할 때 보이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중요합니다. 사람도 겉보다 속이 더 중요하고, 환경도 겉보다 속을 알아야 합니다. 고기는 바다 표면에 있지 않고, 깊은 곳에 있습니다. 구원은 눈에 보이는 육적인 것보다 영적인 면이 더 중요합니다. 믿음의 결국은 영혼구원입니다.

깊은 곳으로의 출발 - 출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목표설정 여부입니다. 목적이 출발의 원인이며 이유입니다. 목표에의 성공적인 도착여부는 속도보다 방향에 있습니다. 목표에 일치된 방향이냐 아니냐가 성공여부를 결정합니다. 결정된 방향을 보면 도착하기 전에 이미 성공과 실패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방향을 결정할 때 누구의 판단에 의하여 결정하느냐에 따라 방향이 정확할 수도, 부정확할 수도 있습니다. 깊은 데로의 지시는 시몬(베드로)의 생각이 아니라, 예수님의 뜻에 의해서입니다. 인생길은 남이 아닌 내가 가는 길이지만 나의 판단보다 하나님의 판단이 더 정확합니다. 사람의 계획보다 하나님의 계획이 완전합니다. 인생은 사람이 계획한 길을 가는 사람과 하나님이 계획하신 길을 가는 사람, 두부류로 나뉩니다. 실패를 향하여 가고자 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성공을 향하여 가고자 한다면 자기 판단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깊은 곳으로의 진행 - 출발이후 도착까지는 반드시 시간이 소요됩니다. 정해진 목적지까지는 정해진 시간소요가 필연적입니다. 거리와 시간은 비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안에는 시간과 기간에 대한 계획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계획을 사람의 생각대로 바꿀 수가 없습니다. 빠른 길은 방향이나 갈등을 최소화하는 길 뿐입니다. 요셉을 하나님의 목적에 이르게 하기위해 13년이 계획되어 있었고, 모세를 바로 앞에 세우기 위해 40년이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는 인간의 시간표에 의하지 않고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릅니다. 시간을 빠르게, 늦게 또는 길게 짧게 할 수 없습니다. 성공까지에는 필요한 만큼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적은 성공에는 적은시간, 큰 성공에는 많은 시간이 투자되어야 합니다. 가까운 바다는 시간은 짧지만 고기가 적습니다. 먼 바다는 시간은 길지만 고기가 많습니다.

깊은 곳에 도착1 - 출발한 후 소정의 시간을 지나 목표지점에 도착했습니다. 목적한 지점에 도착했으면, 깊은 데로 내려가야 합니다. 도착에는 형식적 도착과 실제적 도착이 있습니다. 깊은 지점에의 도착이 평면적(수평적)인 것이냐, 입체적(수직적)인 것이냐가 확인되어야 합니다. 바다에 온 것과 바다를 아는 것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오랜 시간을 바다에 있었다해도 바다위에만 있었다면 바다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연단도 연단의 길이에 연단의 깊이가 더해져야 비로소 온전한 연단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도 천국복음을 선포하며 가르치시는 말씀사역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친히 인간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죄의 결과인 사망의 깊이까지 내려가시고, 죽음의 자리에서 부활하심으로 구원을 실제로 완성하신 것입니다.

깊은 곳에 도착2 - 예수님이 구원의 주이심이 변화산에서 증명된 것이 아니라 무덤에서 증명된 것과 같이 예수님을 만나는 지점은 바다위에서가 아니라 바다 밑 깊은 그곳에서입니다. 고기가 잡히는 지점은 바다의 가장 깊은 곳으로 인간의 가능성이 끝나는 지점이요, 하나님의 가능성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지점은 인간적 생명이 끝나는 사망의 깊은 곳, 인간적 희망이 끝나는 절망의 깊은 곳, 인간적 능력이 끝나는 불가능의 깊은 곳입니다. 바다위에서 지식으로 아는 혼적인 예수가 아니라 바다 밑에서 지식을 초월한 영적인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이론적인 예수가 아니라 영적으로 육적으로 전인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고기가 잡힌 깊은 그곳에서 두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죄인인 나를 발견하게 되고, 구세주이신 예수를 발견하게 됩니다. 100% 불가능한 존재인 나를 발견하는 그 자리에서만 100% 전능하신 예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