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완성①
방주의 시간적 완성(믿음의 현재성) - 하나님께서 이미 예고 하셨던 홍수가 노아 나이 육백세 되던 해 이월십칠일날 발생합니다. 방주는 홍수전에 준비 되어야 합니다. 믿음은 죽기 전에 준비 되어야 합니다. 이미 하나님의 홍수 계획은 확정되어 있었습니다. 어떠한 어려움이나 방해가 있어도 방주는 하나님이 예정하신 기한 내에 완성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홍수가 발생하는 날에 이미 방주가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방주를 준비 못한 이유가 방주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죽음 전에 믿음이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을 준비 못한 이유가 믿음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홍수를 대비해서는 오직 방주가 필요하며, 마지막 심판을 대비해서는 오직 믿음이 필요합니다. 생명의 생명성이 현재성에 있는 것과 같이 믿음의 생명성도 현재에 있습니다. 믿음이 현재 확인될 때 과거의 믿음이 인정되고, 미래의 믿음도 인정될 수 있습니다. 지금 확인되고 입증되는 믿음만 살아있는 믿음이며, 지금 확인되는 하나님만이 살아있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은혜의 생명성도 현재성에 있습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의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고후6:2)이로다, 지금 구원이 확인 되어야 하고 지금 은혜가 확인되어야 합니다. 영생은 영원히 미래적이기도 하지만 영원히 현재적인데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언제나 현재 시점에서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이 내안에서 확인되어야 합니다.
방주의 규모적 완성(믿음의 크기) - 방주의 준비에 있어 하나님이 예정하신 시간 내에 준비 되어야 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일이요,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대상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크기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방주의 크기는 사람과 짐승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여야 하고, 믿음의 크기는 문제를 감당할 수 있는 크기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어떤 문제 보다 크신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사람마다 하나님의 size가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크기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나의 믿음의 크기 때문입니다. 결국 작은 믿음에는 작은 하나님으로, 큰 믿음에는 크신 하나님으로 체험되어 집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방주의 크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크기의 방주는 크기에 맞는 비용이 필요합니다. 크기 만큼의 비용지불을 위해 희생과 순종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방주의 규모와 필요한 비용이 노아의 전 재산을 동원해도 불가능한 규모였음에도 노아는 자신의 전부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일부 아닌 전부를 맡기는 것이요, 하나님의 구원은 일부를 구원하는 불완전 구원이 아니라 전부를 구원하는 완전한 구원입니다.
방주의 성능적 완성(믿음의 강도) - 방주가 완성되는 마지막 과정이 있습니다. 역청으로 안팎을 빈틈없이 칠하는 과정입니다. 물샐 틈 없는 철저한 마감처리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방주는 부서지지 않아야 하고 물이 새지 말아야 합니다. 방주가 있어야 할 곳은 바다입니다. 바다에는 반드시 풍랑이 있습니다. 방주는 풍랑을 부딪쳐 이겨야만 합니다. 풍랑에 부딪혔을 때 파손되어서도 안되고, 균열이 생겨도 안됩니다. 풍랑의 존재는 배(방주)의 견고성을 확인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시련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성도들의 믿음의 견고성을 제고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시련 없는 믿음은 온실속의 꽃과 같습니다. 작은 시련에도 힘없이 쓰러지는 믿음으로는 승리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믿음의 견고함은 방주의 견고함과 같습니다. 강한 믿음은 강한 연단에 의해 만들어 집니다. 문제는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 크냐, 작으냐가 아니라 내 믿음이 강하냐, 약하냐의 문제입니다. 미래를 대비한 지혜로운 자세는 문제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도전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피하는 안일한 자세는 승리를 피하여 패배를 추구하는 어리석은 자세입니다. 지금 시련을 이겨내면 승리의 미래가 다가오고, 고난 앞에 무릎 꿇으면 패배의 미래가 다가옵니다. 누구에게나 언제나 문제가 있습니다. 결론은 문제가 부서지느냐, 내가 부서지느냐에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 앞에 문제는 부서지기 위해 존재합니다. 믿음을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