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깨우는 광야의 소리
시대를 깨우는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를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서부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을 연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황무지나 사막을 배경으로 정의를 외치는 한 명의 총잡이가 다른 악당의 무리를 물리치는 그런 장면을 상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저 또한 그런 장면을 많이 상상하며 본문의 세례 요한의 외침을 생각해 볼 때가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읽은 바와 같이 세례 요한의 외침은 그저 한 의로운 사람의 울부짖음이 아니라 세대를 깨우는 소리요, 광야와 같은 세대를 깨우는 선지자의 선포요, 길을 잃고 방황하는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애통하는 사랑의 외침이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바로 메시야 예수의 길을 준비하는 메시지이며 또 그리스도 안에서 회개를 통한 죄 사함과 구원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특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메시지는 암흑기 즉 침묵기의 오랜 세월동안 단절돼 있던 하나님과 사람들의 사이의 회복을 위한 선지자의 선포입니다. 이 메시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이 암흑기의 배경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큰 회개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요한은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마지막 구약 선지자였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에서 500년 동안은 한명의 선지자도 나타나지 않은 영적인 암흑기였습니다. 왜 그 시기가 암흑기인지는 많은 이유들이 있을 수 있으나 말라기서를 근거로 볼 때 마음이 담기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 및 신앙과 삶이 일치하지 않음으로 나타난 삶의 범죄가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허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그의 백성을 잊어버리지 않으시고 엘리야를 보내어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 돌리시겠다고 말라기서 끝부분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 세례 요한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엘리야라고, 모태에서부터 성령이 충만한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헤롯의 통치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세상으로 향해 있는 것을 보고 애통해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바로 세례요한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바로 하나님께서 침묵하신 이 시기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너무나 고독한 시기인 것을 안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또는 배척한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잘 살아보기 위해 노력하며 오히려 하나님이 없어도 된다고 하며 인간의 능력을 앞세운 시기였을 것입니다. 실제로 역사를 보면 그 암흑기 동안 중동지방을 무대로 세계로 세력을 뻗어나간 페르시아 제국이 강성하던 시기였고 중국에서는 많은 지식과 사람의 지혜를 초월하는 공자 같은 학자도 나왔던 시기였으며, 시민을 주인으로 하는 새로운 정책을 소개하는 로마제국 등이 등장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이 암흑기가 인간이 가장 발달한 때라 말하며 기독교가 이야기하는 암흑기에 대해 반발하며 나설 때가 있습니다. 허나 우리는 이때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야 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들에게 반문하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훌륭한 사람들과 나라들의 업적이 있었지만 그 페르시아 제국, 로마 제국, 지금은 어디 있는가, 그리고 그 훌륭하다는 공자는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 한때의 제국이요 사람인 것입니다. 그들의 성공도, 지식도 그들을 죽음과 죄의 문제에서 해결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죄와 구원의 문제에 대해 회개와 천국의 소망을 선포한 세례 요한의 메세지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된 것입니다.
그럼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광야는 어떤 것일까요? 그 광야는 그저 지역적인 광야뿐만 아니라 오히려 시대를 그렇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중동지방의 광야를 보면 거의 사막과 돌산들이 같이 섞여 있는 지역이라서 낮에는 무척 덥고, 밤에는 추워서 수풀을 찾아보기 힘든 삭막한 곳입니다. 그러다보니 때론 사막에서나 볼 수 있는 신기루 현상을 이 광야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신기루라 함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지면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멀리 있는 사물을 비추어 보이게 하여 마치 가까이 있는 것처럼 착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 세상의 사람의 야망과 욕심은 이런 신기루 현상을 보이게 합니다. 성공과 나름대로의 진리를 추구하며 노력하고 달려가지만 막상 가보면 때론 허무하고 또 더 많은 것들을 얻어야 한다는 욕심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제국주의나 학문과 철학의 발달이 사람에게 때론 신기루의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이 세상을 삭막한 광야, 신기루가 있는 광야라 일컫는 것입니다. 바로 그 때에 세례 요한은 그런 광야에서 외치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가 외쳤던 것처럼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단절시켜 영혼을 혼돈케 하고 영혼을 궁핍케 하는 이 광야와 같은 삶에서 승리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복음으로 이 광야와 같은 시대를 깨우는 것이 우리 새소망교회의 사명인줄로 믿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명에서 만족을 찾고 이 사명에서 삶의 목적을 발견하는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