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문(계3:7-11)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이 - 예수그리스도는 인류구원의 열쇠를 가지고 이 땅에 오신 구원의 왕이십니다. 왕(다윗)의 열쇠는 국가의 운명의 열쇠가 됩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망라한 모든 사람이 왕의 열쇠의 영향 하에 있게 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손에 의하여 인류 한 사람 한 사람의 미래가 열리고 닫힙니다. 예수님과 관계없다고 말하는 모든 불신자도 예외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결국 예수님이 가지신 열쇠에 의해 닫혀진 인생을 사는 사람과 열려진 인생을 사는 사람으로 나뉠 뿐입니다. 인생의문은 사람 스스로의 능력에 의하여 열고 닫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 의해 열고 닫히는 것입니다. 최종적인 순간에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출발시점에서 이미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적은능력 - 빌라델비아교회를 향하여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자가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이유는 네가 적은 능력으로 내말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사람의 능력은 상대적으로 문제 앞에서, 절대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적은 능력입니다. 유한한 능력의 존재로써 무한한 불가능성에 노출되어있는 인생이야말로 절대적으로 불행한 존재인 것입니다. 적은 능력의 존재라는 사실에는 누구나 예외가 없지만, 단 한 가지 예외의 길이 있습니다. 유한한 적은 능력으로 무한한 불가능에 직접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적은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게 됩니다. 적은 인간의 능력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때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전능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내말을 지키며(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 지켰다는 것은 간직의 의미와 실천(준행)의 의미를 가집니다. 말씀의 간직은 단순보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원칙과 기준으로 확립된 상태를 말합니다. 말씀지킴의 또 다른 의미는 확립된 원칙과 기준을 삶의 현장에서 실행에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준행여부는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배반여부를 가름하게 됩니다. 말씀의 간직을 위해 먼저 수용해야 합니다. 수용의 단계에서의 문제는 이해가 먼저냐 수용이 먼저냐의 문제입니다. 이해가 전제되면 말씀수용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말씀은 먼저 수용할 때 믿어지고 믿어진 후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먼저 무조건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인내의 말씀과 시험의 때 -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신앙생활에는 두 가지 영역이 있습니다. 영적인 영역과 육적인 영역, 말씀의 영역과 생활의 영역이 있습니다. 영적영역을 관리해야 하고, 육적영역을 관리해야 합니다. 영적영역관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나 자신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생활 속에서 직면하는 모든 상황은 내가 직접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관리하십니다. 장차 다가오는 마지막 환난의 때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의 때입니다. 오직 예수님에 의해서만 보호될 수 있습니다. 보호에 대한 약속은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인내로 지키는 사람에게 주어진 약속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은 모든 환경에서 성도를 지켜주십니다.
굳게 잡으라 -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시대에 가지고 있는 면류관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면류관에 대한 사수는 승리의 사수를 말합니다. 일회적인 승리, 일회적인 성공은 진정한 승리도 성공도 아닙니다. 현재적으로 지켜지고 있을 때 참된 승리요 생명적인 승리입니다. 과거에 머문 승리는 추억일 뿐이지 지금 살아있는 승리도, 살아있는 능력도 아닙니다. 지금 존재하고 있는 승리만이 승리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으로 쓰임 받는 사람이 현재적으로 면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 이유는 기둥은 언제나 그 역할이 현재적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생명이 현재적이어야 하는 것처럼 사명감당하는 성도의 영적 승리는 현재적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