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산자를 죽은자 가운데서 찾느냐(눅24:1-6)

Mar 23, 2008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님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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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한 향품 - 탄생하신 예수님께 동방 박사들이 세 가지 예물을 드린 것처럼, 여인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면서 향품을 준비했습니다. 사망의 냄새가 진동하는 무덤에 향품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생명 있는 존재와 생명 없는 존재의 차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발생하는 냄새에서 다릅니다. 고후 2장에서처럼 사망의 냄새가 나는 사람과 생명의 냄새가 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죽은 예수가 아닌 살아 있는 예수가 함께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살아있는 예수를 믿는 사람은 같은 사건 앞에서도 부활을 준비하고, 죽은 예수를 믿는 사람은 장례식을 준비합니다. 같은 문제 앞에서 준비 내용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근심하는 여인들 - 예수님 무덤에 갔을 때 무덤 문이 닫혀져 있지 않고, 열려 있었고, 있어야 할 시체가 없었습니다. 눈앞에 나타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상황이 잘못된 것인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잘못된 것인가? 상황을 이해 못하는 (깨닫지 못하는)내가 잘못된 것인가?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인가?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이 잘못된 것인가? 예수님을 이해 못하는(깨닫지 못하는)내가 잘못된 것인가? 우리가 이해 못하고 근심 속에 빠지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 죽어있기 때문입니다. 불가능한 문제는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잡혀 있고, 내가 불가능하면 예수님도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문제입니다. 문제는 예수님을 무덤에서 나오셨으나 내가 무덤 속에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 인생은 태어나서 세상을 떠날 때 까지 찾는 것이 운명처럼 되어 있습니다. 누구를 찾으러 무덤에 갔습니까? 예수님은 무덤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시체였다면 무덤에 계셨을 것입니다. 죽은 예수를 찾는 것인가? 산 예수를 찾는 것인가? 자신의 생각에 정해진 예수를 찾기 쉽습니다. 사람마다 자신의 가치관과 선입견에 의한 이미지의 하나님을 추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님의 이미지는 이미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 스스로 나타내신 하나님이 참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내 생각을 초월하여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여기에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 하나님은 무소부재 하십니다. 계시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무덤 안에 갇혀 계신분이 아닙니다. 불신앙이라는 무덤, 불순종의 무덤, 의심의 무덤, 두려움의 무덤에는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막힌 환경을 열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닫혀있는 것이요, 하나님이 축복 못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순종치 않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의심하기 때문이지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계시고 전능하십니다. 결코 예수님은 죽음 안에, 절망, 패배, 저주 안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람들은 일시적인 시련과 연단은 있을 수 있으나 결코 죽음 안에 절망과 실패 안에 갇혀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 하신 것을 기억하라 - 상황이 절망적이냐 희망적이냐 보다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느냐, 죽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객관적으로 상황 가운데 어떻게 존재하고 계시느냐보다, 내 안에 어떻게 존재하고 계시느냐가 중요합니다. 환경 가운데 계셔도 내 안에 계시지 아니하면, 안 계신 것과 같은 결과가 나타납니다. 내 안에 계실 때 내 밖에도 계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내안에 계심은 그의 말씀이 내안에 계신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내 안에 말씀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기억에 남아있는 예수님이 아니라, 그 분이, 그의 말씀이 내 안에서 역사하고 계셔야 합니다.